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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성격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삶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것"
변광호
의학박사

한국에서 소아과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박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때가 1975년, 30대 초반이었다. 뉴욕의 한의과대 병원에 근무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갔더니 미국인 교수가 나에게 레지던트 과정부터 다시 밟으라고 했다. 한국에서 배운 것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뉴욕 다운스테이트 메디칼 스쿨의 레지던트 과정을 이수하기로 하고 첫 출근하던 날, 지도교수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 환자 가운데 여섯 살 된 남자아이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런데 갑작스럽게 아이의 엄마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당신을 찾아왔다. ‘아들에게 아직 엄마의 죽음을말하지 못했다, 당장 내일이 아내의 장례식인데 아들을 데려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아이에게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사인 당신에게 자문을 구한 것이다. 아이의 주치의로서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소아과 전문의에 의학박사라고 으스대고 뻣뻣하게 앉아 있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의사가 되기 위해 오랜 시간 공부하고 수련해왔지만,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는 몸에 드러난 병을 치료하는 데만 집중해 왔다. 교수가 던진 질문의 요지는 ‘의사는 몸의 병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까지 보고 함께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배운 것은 증상에 따른 원인을 찾고 주사와 약을 처방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기술자일 뿐이었구나, 깊은 자괴감이 들었다.

그 길로 나는 전공을 바꿔 ‘정신신경면역학(psychoneuroimmunology, 마음이 신경계, 내분비계, 면역계에 미치는 영향력 연구)’ 공부를 시작했다. 나에게는 의사로서 큰 전환이었다. 그러면서 지도교수가 던진 질문의 의미와 그 답을 찾아갔다.

여섯 살 아이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 답을 해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 연령대의 아이가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성장 시기별로 차이가 있다. 3~4세 가량의 아이는 죽음을 단지 어디론가 잠시 떠나는 것쯤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자신이 어른들 말을 잘 들으면 엄마가 곧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5~6세 전후는 ‘영원한 이별(permanent separation)’로 인식하여,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8세 정도에 이르러서야 아이들은 죽음을 ‘신체적 소멸’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생명에 대한 개념이 세워지는 것으로, 사람의 몸이 썩으면 흙으로 돌아간다는 구상적 개념(concrete idea)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사춘기가 되면 죽음을 추상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과거 미국인 지도교수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매우 적절치 않았다. ‘네 엄마는 멀리 공부하러 갔으니까 한참 뒤에 올 거야’라는 식으로 답하겠다고 했다. 아이의 정서적 발달을 고려한다면, ‘엄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데려가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입맞춤을 하게 한 뒤 엄마와 잘 이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가족과 함께 슬픔을 견디는 법을 터득하며, 죽음에 대한 자연스러운 긍정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만약 엄마의 죽음을 감추고 쉬쉬한다면, 어른들에 대한 불신, 뭔가 은밀하게 감춰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내적인 상처를 입게 될 확률이 높다. 아이의 불안한 정서는 성장 과정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때 나의 답을 듣고 지도교수는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이해시키려고 애쓰지 마세요.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방식대로 이해합니다. 엄마가 죽었다고 하면 ‘죽는다는 것은 못 돌아오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른들은 사실을 이야기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됩니다.” 즉 어려서부터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는 습관을 지니도록 해줘야, 성인이 된 뒤에도 현실을 견딜 수 있는 힘, 그러니까 건강한 ‘성격’이 다듬어진다는 것이다.

워싱턴주립대 면역학 교수를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나는 우리나라 최초로 ‘스트레스 면역학’, ‘마음면역학’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 왔다. 대학 강단에 설 때마다 학생들에게 내가 미국인 지도교수에게 받았던 질문을 그대로 묻곤 했는데, 내심 ‘마음(Mind)’이 건강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환자의 정서와 마음을 이해하고 관리해주는 의사가 되라’는 뜻이었다.

미국에서 면역학을 전공한 이후 나는 ‘마음’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통합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환자들을 치료해왔다. 증상에 따른 치료와 더불어 마음을 이용하여 생리적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했다. 많은 질환이 잘못된 생활습관이 원인이 되므로, 이를 바꾸기 위해 심리분석, 정신건강 상태 평가, 영양요법, 명상, 운동 등 다양한 치료법을 사용했다.

환자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무엇보다 환자의 성격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알고, 성격과 건강과의 관계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E형 성격’은 그 연구의 결과물이다.

스트레스에 약한 성격 유형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그 연구를 바탕으로 기존에 발표된 성격 유형(A~D형)에서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성격 유형을 ‘E형 성격’으로 명명했다. ‘E형 성격’, ‘E형 인간 닮기’는 자신의 성격유형(A~E형)을 되돌아보고, 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스스로 성격변화를 유도하는 데 있다. 성격을 돌아보고, 아픈 곳을 직시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그래서 조금만 더 행복해지기 위한 과정이다.

어쩌면 인간의 성장과 성숙은 스스로 경험하고 판단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70대를 살고 있는 나, 그리고 노인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수많은 노인 환자를 보면서 ‘삶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침대에 누워 있더라도 하물며 고생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미소 한 번 보일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성장이 아닐까. 고통 속에서도 할 수있는 일이 있고 해낼 수 있다면 말이다.

E형 성격은 순간순간, 언제나, 삶의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우리가 닮아야 할 바람직한 인간 유형이다.

변광호  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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