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화중연화소식(華中蓮華消息)은 경봉 스님과 당대의 선지식이신 용성, 제산, 한암, 효봉 스님들께서 나눈 간찰(簡札)입니다. 수행과 깨달음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나눈 법담이 오늘 족적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 귀한 자료들은 경봉 스님의 시자 스님이었던 명정 스님께서 흔쾌히 내주셨고 여기에 풀이와 주(註)까지도 달아주셨습니다.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惠翰이 오자 마침 스님께 가는 人便이 있는데 그 사람이 서서 재촉하기에 대략 사연만 적고 세속에서 하는 인사 말은 줄입니다.
편지의 말씀대로 胸襟 두 글자가 돌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말씀은 하시는 것이 당연하고 정답습니다.
그러나 증거가 있기 때문에 괜찮으니 그대로 쓰십시오.
고시古詩에 쇄락하고 확 트인 흉금이 명월 청풍 같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 암두巖頭1)와 설봉雪峰2) 두 큰스님이 鼇山에 갔다가 눈에 길이 막혔을 적의 이야기입니다.
설봉은 매일 좌선을 하고 암두는 계속 잠만 잤는데 설봉이 "사형이여 일어나시오."
암두가 일어나서 묻기를
"왜 그러시오?"
설봉이 말하기를
"금생에 편하게 지내지 마십시오. 文邃와 함께 행각하면서 도처에서 그에게 누를 끼치고 오늘 사형과 함께 여기에 와보니 또 잠만 자는군요."
암두가 할喝을 하면서 말하기를
"잠이나 자시오."
설봉이 스스로 가슴을 치면서 말하되
"나는 실로 편안치가 않습니다."
암두가 이르기를
"만약 그렇다면 그대의 견해를 낱낱이 말하라. 옳은 곳은 그대와 함께 증명해 주고 옳지 못한 곳은 그대와 함께 다듬어 주리라."
설봉이 말하되
"내가 처음 鹽官3)에게 갔다가 염관이 色과 空의 이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들어갈 곳을 깨달았소이다."
하니 암두가 말하되
"이로부터 30년 뒤에 행여라도 잘못 이야기하지 말라."
"또 洞山4)의 悟道偈의 '바야흐로 如如에 계합하리라'라는 구절로 인해서 들어갈 곳을 깨달았소이다."
하니 암두가 말하되
"그렇게 알아서는 자기의 구제도 철저하지 못하리라."하였다.
설봉이 말하되
"나중에 德山5) 에게 한 방망이 맞고 활연히 통밑이 빠지는 것 같았소이다."
하니 암두가 할을 하면서 말하되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문으로 좇아 들어오는 것은 집안의 보배가 아니니라." 하였다.
설봉이 말하기를
"다음날 어찌해야 옳습니까?"
암두가 말하기를
"다음날 큰 교법을 퍼뜨리고자 한다면 일일이 자기의 가슴에서 흘러나와야 나와 더불어 하늘과 땅을 덮으리라."
설봉이 이 말 끝에 크게 깨달았다 합니다.
이러한 緣起들이 증명이 되는 것이오니 이 흉금이 능히 넓기로는 천지를 포용하며 세밀하게는 가는 티끌 속에 들어가서 가히 생각할 수 없는 큰 해탈경계를 具備한 것이오니 양지하소서. 말이 길어져서 이만 줄이오니 다만 형께서 내내 만안하시기 빕니다.
더 말슴드리지 않습니다.
음9월 초2일
弟 漢岩 重遠 답장 올림
追信: 오라고 하신 말씀은 말할 수 없이 기쁘오나 오는 가을까지는 이곳에 있기로 작정하였사오니 그리 아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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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巖頭(828∼887)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 法名은 全豁, 德山宣鑑 의 法嗣. 靑原下 5世
2)雪峰(823∼908)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 法名은 義存 德山宣鑑의 法 嗣. 靑原下 5 世
3)鹽官(? ∼842)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 法名은 齊安. 馬祖道一의 法嗣. 南岳下 2世
4)洞山(805∼869)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 조동종의 開祖. 法名은 良 介. 雲岩의 法을 이었다. 靑原下 4世
5)德山(782∼865) 중국 당나라 때의 스님. 法名은 宣鑑, 龍潭崇信의 法 嗣. 靑原下 4世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신은영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