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배낭’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일본에서는 낯익은 물건이라 한다. 핵전쟁과 자연재해 등의 위험한 상황에서 삶을 연장시키기 위한 짐 보따리인 셈이다. 그 안에 들어갈 내용물은 대충 이렇다. 최소 3일은 버틸 수 있는 물, 초콜릿, 라면, 즉석 밥, 라디오, 생명 끈, 지도, 칼, 양초, 라이터, 나침반, 랜턴, 신분증, 방수성냥, 통조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핫팩, 고체 연료, 수건, 담요, 호각, 세면도구, 유통 기한이 1년 이상 남은 구급용 비상약과 평소 복용 약, 밴드, 물티슈, 생활코펠, 바람막이 자켓, 오리털 침낭, 가벼운 텐트, 판초 우비, 무전기, 현금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삶의 유효기간도 알 수 없을 터에 약의 유효기간이라니, 유효기간을 따진다면 생존 배낭이라는 이름도 그에 어울리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가 살기 위해 필요했던 것들이 이렇게 많다는 데 우선 놀란다. 엉뚱하게도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출가한 뒤 6년 동안 고행을 한 싯다르타 태자의 배낭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상상해본다.
“나는 하루를 대추 한 알로 보냈으며, 멥쌀 한 알을 먹고도 지냈으며, 하루에 한 끼나 사흘에 한 끼 혹은 보름에 한 끼를 먹었다. 내 볼기는 마치 낙타의 발 같았고, 내 갈비뼈는 마치 오래 묵은 집의 무너진 서까래 같았다. 내 뱃가죽은 등뼈에 들러붙었고, 살갗은 오이가 말라비틀어진 것 같았으며, 손바닥으로 몸을 만지면 온 몸의 털이 뽑혔다.” (『불소행찬』)
아인슈타인은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어떤 무기로 싸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제4차 세계 대전은 사람들이 돌과 막대기로 싸우게 될 것이다.”라고 인류의 종말을 예고했다. 무엇을 넣을지 어디로 숨을지, 마음속으로 생존배낭을 챙기며, 붓다의 말씀 한 권도 넣어본다.
황주리
작가는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이며, 유려한 문체로 『날씨가 너무 좋아요』, 『세월』,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 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그리고 사랑은』 등을 펴냈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관람자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