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선禪 밖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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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선禪 밖의 선
  • 박재현
  • 승인 2017.09.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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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이은영

만해를 되살리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너무 가상하다. 이런 노력은 주로 문단을 중심으로 꾸준히 지속되어 왔던 것 같다. 문단의 주목도에 비해서 그동안 불교계에서 만해에게 보낸 관심의 정도를 생각해 보면 좀 남사스러울 지경이다. 오죽하면 만해를 ‘스님’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선생’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의논하는 일까지 벌어져야 했을까.

만해를 기리는 행사 중에서도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것이 만해축전이 아닐까 싶다. 이 행사는 재단법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등에서 주최하는데, 인제군 일원에서 며칠을 두고 대규모로 진행된다. 이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단과 관련된 이들이다. 행사 중에 만해대상 수상자는 특히 주목을 끄는데, 올해 제21회 수상자는 시리아 내전 현장에서 지난 3년간 8만 명을 구조한 구호 단체 ‘하얀 헬멧’이었다. 또 지난 2015년에는 신영복 선생이 수상했는데, 공교롭게도 수상하고 반년 정도 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재단법인 선학원에서도 매년 6월경에 만해를 기리는 추모다례재를 열고 있다. 만해의 생애에서 선학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은 때문인지, 매년 행사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는 듯하다. 이 행사의 성격은 만해를 추모하고 기리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상이다. 또 어쨌든 법리상 조계종과는 별개의 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인지라, 불교계 전체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 행사에는 만해의 유일한 혈육인 한영숙 여사가 매년 참석하고 있어 주목을 끄는데, 여사가 1934년생이니 만해는 겨우 열 살을 넘긴 딸내미를 남겨놓고 세상을 뜬 것이 된다.

얼마 전에 나는 만해통일문학축전이라는 행사에 다녀왔다. 올해가 제3회 행사라고 하니, 아직 많이 알려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행사명에 ‘통일’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이 행사 역시도 참여자들의 상당수가 문단 관계자였지만, 애초에 만해의 정치 사회적 의미를 좀 더 부각하고 싶어 ‘통일’이라는 말을 포함시킨 눈치였다. 이 행사는 원로라고 불릴 만한 연세 높은 어르신들이 겨우겨우 어렵게 끌어왔던 것 같다. 대표자인 백발의 노신사는 중앙과 지방 정부의 관계부처를 발이 부르트도록 드나들며 협조를 끌어낸 사실을 무용담처럼 들려줬다.

만해에 관해서는 학술적 연구성과 외에도 다양한 저작물이 많다. 영상물로 제작된 것도 적지 않고, 학창시절에는 수업시간에도 배웠다. 이런 여러 경로를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해에 대해 보거나 들었으니, 그는 역사 속의 여러 인물들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와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묘한 것은, 만해는 어쩌면 그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도 없는 어중간한 인물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만해의 간과된 모습 가운데 하나는 선사禪師로서의 만해인 것 같다. 선을 주제로 한 만해의 글을 보면 어떤 선지식과 견주어 봐도 손색이 없다. 선에 대한 그의 안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이 바로 선외선禪外禪, 즉 ‘선 밖의 선’이다. 선의 바깥에서 선을 도모하면서, 그는 참담하고 막막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테고, 그때부터 그는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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