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물속의 달과 운수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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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물속의 달과 운수납자
  • 서재영
  • 승인 2017.09.2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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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수월도량淸淨水月道場! 뜻 보여주신 지효스님과 광덕스님
지효 스님(1909-1989) ⓒ불광미디어

|    물속의 달

청정수월도량淸淨水月道場! 이는 조석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축원문의 한 구절로 ‘물속에 비친 달 같은 도량’이라는 뜻이다. 사찰의 주소 뒤에 관용구처럼 따라붙는 구절이기도 하다. 수많은 시주들과 대중들의 노력으로 일군 거룩한 도량이 물속의 달이라니 이게 무슨 뜻일까? 굳이 의미를 따져보자면 두 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첫째는 기원자가 머물고 있는 장소를 불전에 고하는 것이다. 물론 대상은 부처님을 향하고 있지만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환기하는 것에 가깝다. 자신이 서 있는 처소를 진리의 공간으로 긍정하고, 보살행을 펼칠 무대로 긍정하는 의례인 셈이다. 둘째는 자신이 서 있는 장소가 실체 없는 것임을 환기하는 것이다. 날마다 물속의 달이라고 되뇌며 자신이 머무는 공간이 집착할 것이 못됨을 각인하는 것이다. 첫째가 실천의 장소에 대한 긍정이라면 둘째는 대상에 대한 집착의 부정인 것이다.

결국 수월도량의 요지는 지금 머물고 있는 장소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일생을 돌아보면 한곳에 머물지 않는, 길 위의 삶이었다. 길 위에서 태어나셨고, 진리를 찾아 길을 갔으며, 깨침을 얻은 뒤에는 진리를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는 순간까지 그렇게 길 위에 계셨고, 수행자들의 삶 역시 이와 같은 유행遊行의 삶이었다.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은 우기雨期에는 정사精舍에서 안거를 했지만 비가 그치면 다시 길을 떠났다. 자연히 머무는 장소에 집착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수행자를 운수납자雲水衲子라고 불렀다. 창공에서 떠가는 한 점 구름처럼, 쉼 없이 흘러가는 냇물처럼 머물지 않고 떠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출가자에게 장소는 정착할 곳이 아니라, 끝없이 버리고 떠나야 할 곳이다.

무엇이든 손때가 묻으면 애착이 가기 마련이고, 한곳에 오래 머물면 그곳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무주심無住心’을 강조한다. 그 무엇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도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스님들은 매일 조석으로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장소를 수월도량이라고 환기했다. 일렁이는 물속에 비친 허상과 같은 것일 뿐 의지하고 집착할 대상이 아님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주문처럼 되풀이하는 이 내용은 자신에게는 집착을 끊는 자기 암시가 되고 다른 수행자들에게는 경책의 의미가 되었다. 

|    두 명의 선지식

그러나 한국불교의 현실을 돌아보면 수월도량이라는 주문은 그야말로 의례적 구두선에 불과함을 느끼게 된다. 목하 한국불교는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두 진영으로 갈라져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겉으로는 각자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태의 발단은 이명박 정부 시절 봉은사 주지 교체를 둘러싼 갈등이 시초였음을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면 출가자 역시 물질적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한 범부일 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 불과 40여 년 전 두 분 큰스님들의 행적을 보면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작년 여름 광덕 큰스님의 전법행에 대한 구술사를 녹취하기 위해 창원 성주사로 흥교 스님을 찾아뵈었다. 동산 대종사의 제자였던 흥교 스님은 은사스님께서 입적하신 이후 20대 젊은 나이 때부터 광덕 스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분이다. 필자는 흥교 스님으로부터 봉은사에 얽힌 소설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광덕 스님과 지효 스님이었다. 두 스님은 모두 근·현대 한국불교의 대선지식이었던 동산 스님의 제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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