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여성인권상담소. 여성의 인권과 성폭력을 다루는 곳이다. 교계 단체로는 유일하다. 교계 단체라고 부르기에는 그 활동성이 안팎을 넘나든다. 성평등불교연대, 에코젠더학교, 중구지역 성평등 마을 사업 등 불교계 안과 밖으로 활동 영역이 넓다. 나무. 여러 뜻을 담고 있다. 쉼과 그늘을 주는 나무(木)처럼 여성에게 쉼과 그늘을 주겠다는 의미가 있고, 나(我)가 없다(無)는 뜻이기도 하며, ‘귀의’를 뜻하는 나무南無를 말하기도 한다. 2009년 2월에 개소한 상담소를 이끌고 있는 이가 김영란 소장이다. 연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성폭력 피해 여성을 돕는 일에 몰두해왔다. 90년대 말 (사)정토회 인연으로 불교를 배우기 시작했고, 참여불교재가연대에서 도반들과 함께 불교 공부를 이어갔다. 주변의 활동가들과 함께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공부를 하면서 티베트 수행자 용수 스님을 만나 지금까지 티베트 명상 수행을 하고 있다.
| 젠더를 알고 젠더감수성을 높여라
- 나무여성인권상담소를 왜 열었는가요?
“이 상담소를 여는 데 기여한 분이 불교환경연대 한주영 선생과 종교와 젠더연구소 옥복연 선생입니다. 제가 불교 밖에서 활동할 때 이 두 분이 ‘불교 안에 여성폭력 상담소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분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남은 생애는 부처님 법 안에서 부처님 법을 더 알리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 상담소가 여성의 인권과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한편으로 중구 지역사회 활동도 하고, 에코젠더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상담소가 중구 지역에 있기 때문에 지역 마을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성 평등 메신저’는 성 평등 문화와 폭력없는 문화를 위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오프라인, 단톡방 등에서 성 평등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에코젠더학교는 상담소에서 애착을 갖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차별이나 폭력이 성별에서 나오는 것일 뿐 아니라, 너와 나의 차별에서 나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차별이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성별 차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차별, 연기법을 받아들이는 강좌와 성차별을 주제로 프로그램이 구성됩니다.”
- 불교계에서 ‘젠더gender’란 용어는 많이 낯선 단어입니다. 젠더는 무엇인가요?
“젠더는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우리 불교계도 이젠 알아야 합니다.(웃음) 아들은 튼튼하고 씩씩해야 하고, 딸은 예쁘고 아름답게 자라야 한다, 이런 것이 젠더입니다. 사회적으로 습득된 성 역할이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고정된 성 역할, 젠더를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언제든지 툭툭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젠더감수성을 높여야 합니다.”
- ‘젠더감수성’란 말도 낯설게 다가옵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 고정관념을 나도 모르게 행사하는 것은 아닌지, 이것을 계속 조심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젠더감수성을 높이는 겁니다.”
- 개인 스스로 젠더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 혹은 성 역할 고정관념을 어떻게 점검할 수 있을까요?
“본인이 ‘남자는 이래야 돼’, ‘여자는 이래야 돼’, 이런 말을 어느 정도 쓰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또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고, 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 불교계 안과 불교계 밖을 젠더감수성 지수로 비교할 때 어떠한가요?
“사회는 공공기관의 경우 말 한마디에도 처분이 내려질 정도로 아주 엄격합니다. 불교 안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없어서가 아니라, 숨어 있습니다. 중요한 차이점은 사회에서는 문제가 있으면 드러내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불교계에서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문제를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 제가 교계에서 수많은 (성폭력) 상담을 받아도 내담자가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교계에서 개별적 상담과 면담을 하면서 들은 사건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이고, 아주 암담한 사건들이 많습니다.”
- 성폭력 상담활동을 하는 분들은 타인의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공감력을 향상시키지만, 자신의 고통에는 힘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우리 활동가들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기도 하고, 왜 이런 고통스런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는가, 하는 사회적 구조 때문에 고통스럽고, 그럼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기에 거기서 오는 무력감 때문에 고통스럽죠. 또 조직 안에서 요구하는 활동가의 역량이 있는데, 거기에 매몰되어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력이 없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가벼워지고, 즐겁고, 너무 많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명상에서 이야기하듯이 몸이 쉬듯이 마음도 쉬어야 합니다.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못 쉬고 있습니다.”
| 연민으로 고통을 차분히 바라보라
-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스러우면 고통을 잘 바라보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고통이 오면 고통을 회피하거나, 욕을 하거나, 감정을 쏟아냅니다. 고통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을 잘 못합니다. 활동가들도 고통을 분노로 표현하고, 슬픔도 분노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감정을 잘 바라보려면 자기와 감정을 띄어놓고, 거리를 두어 객관화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런 작업을 조금만 해도 ‘아, 되는구나.’ 하는 작은 경험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힘이 됩니다. 근데 여태까지 이런 이야기를 잘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활동가들은 늘 사명감과 비판의식, 이런 것만 강조합니다. 나의 감정을 오롯이 봐야 합니다. 나도 고통스러운 인간이고, 이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하고,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나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고통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명상이 그런 힘을 줄 수 있습니다.”
- 소장님은 명상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나요?
“‘어떻게 명상을 해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 상담소 이름이 ‘나무’인데, ‘나가 없다.’란 뜻이 있습니다. 제가 아직 공성空性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저는 불교의 가장 큰 가치가 ‘공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불교를 제대로 못 만났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뭔가 집착하고 있는 것, 일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이 문제들이 절대적이고, 그 고통이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그것으로부터 가벼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언제든지 조건과 상황이 바뀌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 상태에서 명상을 해야 합니다.”
- 말씀하신 공성과 무아無我를 성폭력 상담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까요?
“성폭력 피해 여성을 상담하면 완전한 회복이 안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는 더럽혀졌다, 비난받아 마땅해, 그래도 내 잘못은 있어.’ 이렇게 자책하고, 뭔가 순수하지 못한 존재가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가 없다’는 것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나’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겁니다. 저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이 ‘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 ‘나’ 때문에 내가 계속 고통스러웠고,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 성폭력 상담을 오랫동안 하셨는데, 불교의 가치관을 갖고 상담했을 때와 그 전의 상담이 어떻게 다른가요?
“질문이 중요합니다. 내담자가 자책감을 가질 때, ‘그 자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당위적으로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자책감을 언제부터 갖게 되었는지, 그 생각이 누군가로부터 전해졌는지, 그것을 나도 모르게 받아들인 ‘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성폭력을 당했을 때, 그 ‘나’들이 작동해서 ‘너는 비난받아 마땅해.’라고 나를 괴롭히는 겁니다. 사실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나’입니다. 그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을 텐데 내가 그 ‘나’를 받아들인 것이죠.”
- 나와 ‘만들어진 나’를 분리해야 하는데, 깊이 관찰하지 않으면 쉽지 않겠습니다.
“나와 ‘나는 비난받아 마땅해.’라는 이 문제를 하나라고 생각할 때 나는 무거워집니다. 여기서 가벼워지려면 ‘나는 비난받아 마땅해.’라는 생각을 누가 일으켰는지 자꾸 객관화하는 것입니다. 나와 ‘규정된 나’를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내담자에게 도대체 그 ‘나’가 누구죠? 하고 계속 물으면 내담자 스스로 조금씩 찾아냅니다.”
| 고통은 ‘만들어진 나’로부터 나온다
- 소장님은 이러한 상담방식이 불교의 가치를 담고 있다고 보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강 속에서는 강을 보지 못하잖아요. 분노에 빠져있을 때, 분노를 볼 수 없고, 분노에서 빠져나올 때 분노를 볼 수 있고, 분노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객관화하면 고통이 가벼워집니다.”
- ‘고통이 가벼워진다.’ 좋은 인식입니다. 내담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약간의 통찰을 얻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쓰던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거기에 ‘그랬어요? 정말 그래요?’ 하고 계속 물으면 내담자는 ‘그런가?’ 하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유의 방식을 제기하면 자기 통찰을 얻는 계기가 됩니다.”
교단 안에서 ‘젠더감수성’을 알 수 있는 상징적 모습이 있다. 올해 어느 비구스님이 여직원 성추행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비구스님 측에서 내놓은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손 만졌다고 성추행?” 키스한 것도 아니고, 성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고, 겨우 손잡은 것인데 성추행인가, 라는 반응인 것이다. 김영란 소장은 이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매우 더러운 기분이 들 수도, 불쾌할 수도, 역겨울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똑같은 행위여도 어떤 ‘관계’냐에 따라 그 불쾌감은 훨씬 커지기도 합니다. 어떤 관계인가? 관계의 문제입니다.”
- 교단 내에 ‘젠더감수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개의 여성 불자들에게 요구하기에는 어려운 일입니다. 조계종 종헌 종법에 비구, 비구니의 차별이 우선 없어야 합니다. 제도가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어야 하고, 그것에 기대어 성차별 사례가 일어났을 때 여성들이 문제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런 문제들이 모여야만 제도 내 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사찰 내 종무원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제도를 만들고, 교육을 확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종단이 가해자들을 일벌백계一罰百戒하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합니다.”
- 소장님께서 보기에 오늘 교단의 법과 제도에서 가장 성차별 요소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등 주요 장을 비구만 할 수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종회의원도 10명만 비구니스님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헌법소원을 해도 됩니다. 현 종단의 법과 제도의 틀에서는 적지 않은 비구니스님들이 복종적 태도를 취하기 십상입니다. 종회의원 한자리 얻으려고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엄격한 관계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 밖에 조계종단 내 법과 제도의 성차별이 알려지면 굉장히 놀랄 것이라고 봅니다.”
- 교단 내 법과 제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비구니스님들 스스로 교단 내 성차별 요소를 없애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는 않을까요.
“비구니스님들 스스로 젠더감수성이 낮지는 않습니다.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너무 없기 때문에 의식의 확산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종단의 법과 제도 내에 예를 들면 ‘성평등위원회’ 등의 다양한 채널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비구니스님들 중 어른스님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교단 내 비구와 비구니의 성차별 외에 출가와 재가의 차별 요소가 있는데, 이를 함께 봐야 합니다. 결국 사부대중이 평등하게 종단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 310만 원의 보시와 72만 원의 잔고
- 페이스북에 고마운 사람들에게 후원금을 보냈다고 썼습니다. 근데, 그 금액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310만 원을 보내고, 잔고가 72만 원. 생활이 여유롭지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금액을 후원하시죠?
“제가 몇 년 전부터 보시를 많이 합니다. 제가 버는 돈의 대부분을 보시합니다.(웃음)”
- 왜죠?
“제가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면서 보시바라밀을 많이 배웠습니다. 일상으로 보시하기도 하고, 아주 큰 금액을 보시하기도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달라이 라마 존자님도 거지에게 보시할 때 마치 가진 것을 나누어주듯이 하지 말고, 최대한 공경하면서 보시하라고 하십니다. 제 나름대로는 보시가 소유욕과 집착을 끊는 데 중요하구나, 또 보시를 통해서 수행자들이 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이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무주상보시라고 하지만, 바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늙어서 돈이 없어 수행하기 어려울 때 지금 보시했던 공덕으로 누군가의 보시로 제가 수행할 수 있길 바랍니다.(웃음)”
- 보시의 충동이 마구 일어납니다.(웃음)
“보시란 것이 한번 하게 되면, 50만 원, 100만 원이 아무렇지도 않아요.”
- 그렇게 보시를 많이 하면 생계비를 어떻게 유지하나요?
“신기한 것은 그렇게 보시하면 강의가 많이 들어옵니다. 제 수입의 주 수입원이 강의인데, 보시한 만큼 돈이 들어옵니다.(웃음) ‘보시하려는데 돈 좀 안 들어오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런 것을 페이스북에 알리는 것이 ‘좀 자랑질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 글을 보고 누군가는 보시의 마음을 내겠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최근 소장님은 ‘조계종 적폐청산 촛불법회’에서 사회를 보기도 하셨습니다. 평소 ‘분노’를 경계했던 분이기에 여쭈어봅니다. 우리 교단에서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에게 분노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자비로운 분노’라는 표현도 하지만, 결국은 분노이거든요. 적의가 있는 분노가 보입니다. 불교계 내부에서 서로에게 분노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분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말 분노할 만한 일들이 있어요. 분노하지 말라가 아니라, 분노하고 있음을 빨리 알고, 분노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분노를 표출해서 다른 사람들과 분노로 연결되어 공동의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 다툼의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분노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분노해야죠. 그 분노는 자연스러운 분노입니다.”
- 자연스러운 분노가 있고, 자연스럽지 않은 분노가 있나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분노가 있어요. 예를 들면 인간을 잔인하게 하는 행위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또 그 분노를 정당화하고 지속시키는 분노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행자가 지녀야 할 마음은 아닙니다. 부당한 것을 보고, 무관심하고 분노하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연민심이 있으면 분노할 상황에서 분노가 일어납니다.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 이후에도 연민심을 가져가야 합니다. 일어난 분노를 더 키우면 안 되는 것입니다.”
| 어떻게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 불자이면서 여성으로서 소장님께 불교의 가치 중 가장 강렬했던 가치는 무엇인가요?
“보리심菩提心입니다. 제가 주로 많이 만나는 사람들은 힘들고 고통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과 만나면서 ‘아, 힘들어.’ 이런 것이 아니라, ‘아,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이것이 늘 제 삶의 화두입니다. 그 마음이 저는 보리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고통이 나의 고통과 연관되어 있고, 제가 연민심으로 고통에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훨씬 가벼워집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 사람의 고통이 내가 고통스러운 이유가 되기도 하고, 내가 좀 가벼워지면 이 사람에게도 그 기운이 전달됩니다. 내가 어떻게 사는가의 모습이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전달되는구나, 그래서 내가 좀 더 가볍고, 행복하게 살아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 페이스북에 이런 말을 쓰셨습니다. “‘네 맘 다 알아.’ 인간의 고통이란 지문처럼 다 다르다. 아는 척 할 수는 있겠지만 알 수는 없다. 그러니 가까이 가되 거리를 유지하라. 막 들어오지 마세요.” 어떤 의미인가요?
“내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번 벗어나 봤기 때문에 ‘아, 너 아직 그 고통의 자리에 있어? 에이, 나와. 네 맘 다 알아.’ 그 고통의 과정을 밟아야 할 사람에게는 폭력까지는 아니겠지만,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이죠.”
- 소장님께서는 수많은 분들을 만나왔는데, 존경하는 분들이 있다면 어떤 분들일까요.
“너무 많아요. 꼭 사람이어야 하나요? 저는 아침이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이슬도 존경스럽고요.(웃음)”
- 사람에 한정해서 말씀해주시죠.(웃음)
“달라이 라마 존자님, 샤카티진 존자님, 밍규르 린포체님을 많이 존경합니다.”
인터뷰 이틀 전 아침에 김영란 소장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어떤 여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스님으로부터 성 피해를 받았는데,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느냐는 전화였다. 저녁에 그 여성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두렵고 힘들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전화 받지 않은 것으로 해달라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분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시길….” 김영란 소장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