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 고창 선운사 기우동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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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 고창 선운사 기우동자도
  • 강호진
  • 승인 2017.09.2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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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소설을 읽으러 도서관에 갔다
사진 : 최배문

오래전 프랑스를 여행하다 파리의 노천카페에 앉아있는 소설가 윤대녕을 본 적이 있다. 그가 이상문학상을 받은 다음 해였다. 수상집 표지에 박힌 해쓱한 이상李箱의 사진과 쏙 빼닮은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자 그는 쑥스러운 듯 일어나 내 손을 받아주었다. 하얗고 작고 부드럽고 가냘픈 손이었다. 막상 악수를 하고 나니 어색해져 나는 가던 길을 갔고, 그는 다시 동료 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짧고 사소한 스침이었지만 내겐 기억할 만한 만남이었다. 당시 나는 문학과 작가를 동경하던 청년이었고, 그는 내 세상의 스타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러나 이후 20년이란 시간은 내 삶에서 그를 지워내기에 충분한 세월이었다. 

여름이 막 손톱을 드러낼 즈음 고창 선운사에 벽화를 보러 갔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휘감은 영산전에서 소 그림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불현듯 소설 제목 하나가 망각의 안개를 헤치고 툭 튀어나왔다.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 집에 돌아와 윤대녕의 소설집 『은어낚시통신』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잦은 이사로 분실했는지,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 못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 소설을 다시 읽은 것은 여름이 끝날 무렵이었다. 학교도서관에는 책이 없었다. 다섯 권의 소장도서 가운데 한 권은 분실, 나머지 네 권은 대출 중. 예약대기자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학부수업 교재로 쓰는 모양이었다. 하릴없이 도서관 컴퓨터 검색창에 ‘윤대녕’을 치자 학위와 학술지를 포함해 100여 개가 넘는 논문목록이 쏟아졌다. 그가 정녕 한국문학계의 대가로 우뚝 선 것인지, 취업이 불가능해진 인문학 전공자들이 죄 대학원으로 도피한 탓인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그랬다. 나는 최초로 그 글이 실린 『문예중앙』을 찾아 1993년 가을호를 펼쳤다.   

“십우도는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을 뜻하는 그림이에요. 불교에서는 사람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해요. 십우는 심우尋牛, 즉 소를 찾아 나선다로 시작해요. 다음엔 견적見跡, 소의 자취를 보았다는 뜻예요. 견우見牛, 소를 보았다는 뜻이구요, 득우得牛, 소를 얻구요, 그 다음은 목우牧牛, 소를 길러요. 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요…. 피리를 불며 흰 소를 타고 산에서 내려오는 그림이죠.”

아비의 죽음 후 출가해 사미니계를 받고 집에 들렀다가 양모養母가 내지른 “이년아, 여기가 네 법당이야!” 한마디에 환속한 ‘금영今映’. 금영은 소설의 화자인 ‘나’에게 청평사 극락보전에 그려진 십우도를 설명해준다. 금영이 십우도와 소에 집착을 하는 덴 이유가 있다. 금영의 생모는 금영이 다섯 살 때 소양강에 투신한다. 어머니에 대해 묻는 금영에게 아비는 “네 애미는 소가 되어 물속으로 갔다. 그뿐이다!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라. 누구나 먼 것이 있어야만 산다.”라고 말하며 죽는다. 이후 금영은 소의 흔적을 찾아 청평사 주변을 떠돈다. 십우도에 대한 금영의 나머지 설명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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