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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방랑기] 전북 완주 위봉사“비구, 비구니도 다 분별이라. 그 짐을 벗어야 강을 건너지.”
사진 : 최배문

들의 끝이 노랗다. 벼 끝도, 감 끝도 노랗고, 대추 끝은 붉다. 밤은 익어 벌어지고, 은행잎은 가에만 둥글게 물들었다. 저것이 감인지, 밤인지, 대추인지, 그것은 봐야 안다. 눈길이 맨 먼저 닿는 곳은 끝이다. 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가 사물의 윤곽을 잡아준다. 제주도가 풍덩 빠져버릴 만한 거대한 호수 한가운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다인지, 호수인지, 강인지 알 수 없다. 가를 봐야 안다. 사물의 테두리, 끝부분, 가장자리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바닷가를 봐야 바다를 알고, 호숫가를 봐야 호수를 알고, 강가를 봐야 강을 안다. 눈길이 사물의 가에 닿아야 안다. 가 닿음,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은, ‘깨달음’의 어원을 ‘가닿음’으로 설명한다. 우리의 눈길이 잔의 끝에 가 닿을 때, 아 저것이 잔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깨달음은 대오견성도 깨달음이지만, 저것이 산봉우리이고, 무지개고, 이 사람이 나를 낳아준 어머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도 깨달음이다. 위봉사 가는 길에 아름다운 터널을 이룬 벚나무 고목의 잎이 지고, 들의 끝이 노랗게 변하는 것에 눈길이 가 닿아,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고 나는 깨달았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이다. 가운데도 없고, 가생이도 없으니, 가 닿을 데가 없다. 그런 것은 위봉사 스님한테 물어봐야 한다.

 

이광이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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