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담소하고 진실한 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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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담소하고 진실한 삶의 지혜
  • 이기선
  • 승인 2017.09.0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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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통과 | 범일 글·사진 | 248쪽 | 15,000원 | 불광출판사
통과 통과 범일 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통과통과
범일 글·사진 | 248쪽
15,000원 | 불광출판사

산사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담소淡素하고 진실한 삶의 지혜

글. 이기선

살아가면서 점점 지혜로워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 둘은 어쩌면 일상을 살피는 관심의 폭과 깊이의 작은 간격 때문에 그렇게 갈라진 건 아닐까.

공작선인장 꽃이 피었습니다. 선인장 몸집이 너무 커서 방에 두기 부담스러워하던 차였습니다. 그런 제 의중을 눈치챘는지 꽃이 말하길, “저 이렇게 예쁘거든요. 몸뚱이 조금 큰 거 가지고 뭐라 하지 마세요!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범일, 미안해하면서 “아, 예…()…()…()….”

양평 서종사 범일 스님에게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관심’이었다. 스님은 일상의 작은 일 하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비 오는 날 풀을 뽑다가 가뭄 끝에 살만해지니 사정없이 뽑히는 풀의 신세를 떠올리고, 코스모스 꽃잎이 바람이 이끄는 대로 떨어지는 모습에서 인연 따라 순하게 흐르는 자세를 숙고하고, 가만히 있는 거미를 보며 고요히 지내는 삶의 이로움을 깨우친다.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찬 이에게는 이런 성찰이 들어올 수 없다. 마음을 비우고, 여관 주인처럼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환대하는 이만이 지혜라는 방문객을 들여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스님이 보여주는 ‘소탈함’ 역시 인상적이었다. 남을 가르치는 입장이니 격식을 차릴 만도 한데, 스님은 자신이 방귀 뀌고 또 남이 뀐 방귀 냄새를 맡으면서 서로 스승이 된 사연이나, 다이어트하다가 포기하고 떡과 과자를 실컷 먹은 이야기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 드러낸다. 이런 솔직함이 친한 이웃 같은 편안함을 주고, 그 편안함 속에서 말씀 하나하나가 가슴으로 스미듯 들어와 삶 속에서 그런 깨우침의 순간들을 보는 눈을 틔운다.

『통과통과: 예측불허 삶을 건너는 여유』는 스님이 8년 동안 써온 1,500여 편에서 정선한 105편의 글과 46컷의 사진을 정갈하게 엮어 만든 에세이 모음이다. 웬만큼 힘든 일도 다 ‘조아질라고’ 일어난 것이니 맘에 두지 않고 ‘통과’시켜버리는 스님의 여유가 계곡물에 발을 담근 것 같은 시원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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