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병의 평화모니] 하루 짓지 않으면 하루 먹지도 마라 一日不作 一日不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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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의 평화모니] 하루 짓지 않으면 하루 먹지도 마라 一日不作 一日不食
  • 윤구병
  • 승인 2017.09.0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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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철학자

‘백장청규百丈淸規’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백장은 중국 선불교 역사에서 이름난 분이다. 이 말, ‘하루 짓지 않으면 하루 먹지도 마라’, 요즈음 내가 씹고 또 곱씹는 말이다. 말하자면 내 ‘화두’(話頭-말머리)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말이다. 무서운 말이다. 왜냐고? 요새 나는 짓지 않는다. 밥도 짓지 않는다. 비럭질해서 산다. 빌어먹고 산다.

왜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 (왜 사느냐고 묻지 말기 바란다. ‘숨이 붙어 있으니까 목숨 이어간다.’는 들으나 마나 한 말 튀어나오기 십상이니까.) 무얼 먹는가? 밥을 먹는다. 무슨 밥인가? 쌀밥이다. (어렸을 때는 조밥을 먹었는데, 한창 굶주렸던 어릴 적에 줄창 먹어대던 것이라서 이제 신물이 나서 거들떠보기도 싫고, 한때 보리밥을 먹는 게 쌀농사 짓는 시골 사람들이 끼니를 때우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으므로 보릿고개 허덕허덕 넘으면서 풋바숨으로라도 감지덕지 먹고 살았노라는 이야기를 곁들이면 말이 끝없이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인다.) 그 쌀 어디서 났는가? (여러 말이 나올 것 같다. 이를테면 ‘C-8, 내가 쌀가게라도 턴 줄 알아? 내 돈 내고 사서 먹는다, 왜?’ 같은 욕지거리.) 여름지이(농사꾼)가 지은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다. 벼농사 짓는 사람이 있어서 (쌀)밥 먹고, 옷 짓는 사람이 있어서 옷 입고, 집 짓는 사람이 있어서 눈, 비 가리고 산다. 그러니 ‘노동자’, ‘농민’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기초살림’을 맡고 있다. 안 그런가? 그런데 그런 분들에게 살려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이나 느낌 가져본 적이 있는가?

백장이 늙어빠졌을 때 (아마 내 나이쯤 되었겠지.), 함께 ‘울력運力’하던 젊은 것들이 ‘스님, 그만큼 했으면 됐슈. 이제 그만 쉬세유.’ 하는 뜻에서 어느 날 호미를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자 백장, ‘그렁게 이제 먹지도 말라는 거지?’ 웅얼거리면서 밥숟갈 내려놓았다고 한다. (아예 밥숟갈 놓았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말에서 이 말은 죽었다는 말로 쓰이므로) 따져보면 등골에서 식은땀이 흐를 말이다. (덩달아 머릿속에 이런 말이 떠오를 테니까. ‘옷 짓기 싫어? 그러면 벌거벗고 살아.’ ‘집 짓기 싫어? 그러면 하늘을 지붕 삼고 살면 되지.’)

‘살림’(살게 하는 일) 맡겨 놓고 막상 살려 놓으니까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친김에 짓밟기까지 한다? 이게 무슨 짓인가? 이러고도 살기 바라는 게 지나치지 않은가? ‘더불어’, ‘함께’ 살자고? 누가 누구에게 할 말인가? 머리로 짓는다고? 소가 웃을 소리다.

‘짓는다’는 말. 고운 우리말이다. 집 짓고, 옷 짓고, 밥 짓고, 독(질그릇 가운데 하나) 짓고, 웃음 짓고, 떼 짓고, 무리 짓고… . (‘참교육’을 이끄신 분으로 널리 알려진 이오덕 선생이 한때 ‘글짓기’라는 말은 쓴 적이 있다. 그때 이 분을 따르던 이 가운데 누군가가 ‘선생님, 이 말 바꿉시다. 이 말 ‘작문作文’을 옮긴 말이잖아요? ‘작문’은 일본에서 들어온 말인데, 그 말 흉내 내서야 되겠어요? ‘글쓰기’가 맞는 말 같은데….’라고 말했다 한다. 이 말을 옳게 여긴 이오덕 선생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었고, 이제 교과서에서까지 ‘짓기’는 ‘쓰기’로 바뀌었다. 하기야 ‘말’이나 ‘글’에 ‘짓기’가 붙으면 뜨아한 생각이 듬직도 하다. ‘말을 지어낸다’는 ‘없는 말을 꾸며낸다’, ‘거짓말한다’로 ‘글을 짓는다’는 ‘겪어보지 않은 걸 거짓으로 그럴싸하게 글로 꾸며댄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니까.) 백장 선사가 쓴 ‘짓는다’(作)는 말도 고운 뜻으로 쓰인 말이다.

문득 옛일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외수 ‘작가作家’(이 분은 선거 때 박근혜 후보도, 또 누구누구도 찾아갔을 만큼 널리 알려진 이니까 모두 알겠지.)가 우스개 삼아 해준 이야기가 있다. 이 이가 춘천에 살 때 서울 나들이를 하려면 ‘화천검문소’를 거쳐야 했다고 한다. 그곳을 지키던 군인과 주고받았다는 말. ‘누구요?’ ‘글 쓰는 사람이요.’ ‘아하, ‘필경사筆耕士?’ (요즘에 이 말 아는 사람 드물 거다. ‘가리방지’에 철필로 남의 글을 베껴 쓰는 직업이 옛날에는 있었다.) 이 ‘유식’하고 ‘교양’있는 군인이 그른 말을 했거나 딴지를 걸었다고 여기면 안 된다. 본디 글은 ‘짓는’ 것이고, 글씨는 ‘쓰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있지도 않은 일을 제멋대로 꾸며 쓰니까. ‘글짓기’가 나쁜 뜻을 지닌 말로 여겨질 뿐이다. 한때 ‘국민학교’마다 세워졌던 ‘이승복 어린이’의 동상은 어느 기자가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라는 말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글로 바꾸어 ‘소설을 써서’ 생겨난 ‘헤프닝’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지 않은가? (하긴 초등학생이 아무리 일찍부터 ‘의식화 교육’을 받았다 한들 ‘공산당’이 뭐고 ‘자유당’이 뭐고 ‘민주당’이 뭔지를 어찌 제대로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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