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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삶에서 뽑은 명장면] 당신은 누구십니까?
엘로라석굴 불상 ⓒ불광미디어

얼마 전 ‘비긴 어게인’이란 TV 프로그램에서 가수 윤도현이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런던의 어느 골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았다. 존 레논John Lennon이 작사 작곡한 <Imagine>이란 노래였다. 어린 시절 자주 들었던 노래이다.   

상상해 보아요.
국가가 없는 세상을 … 
죽이거나 죽어야 할 이유가 없고 
종교 역시 없는 세상
… 
상상해 보아요.
소유가 없는 세상을 … 
탐욕도 굶주림도 없고 
인류의 형제애만 있는 세상
…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 하겠죠.
하지만 저는 혼자가 아니랍니다. 

한참을 따라 흥얼거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몽상가夢想家가 아닐까?”

세상은 냉혹하다. 법과 정의를 부르짖고, 도덕과 인륜을 앞세우지만, 우리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세상은 여전히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인간은 나약하다. 자비와 평등을 부르짖고, 타인을 배려하고 용서해야 한다며 맞장구를 치지만, 정작 탐욕과 갈등이 폭풍처럼 몰아닥치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누구 할 것 없이 이기심에 따라 거침없이 폭력을 자행한다. 

요만큼이라도 나이를 먹고, 이런 일 저런 일 제법 겪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엎어지다 보니, 이젠 나도 알겠다. 세상도 인간도 오래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도덕과 인륜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고, 자비와 무욕이 주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남들에게 말한다. 아직 따끔한 맛을 보지 못해서 하는 말이라면 철모르는 소리라 하겠지만 제법 쓴맛을 보고도 이러니, 마냥 철이 없어서 하는 소리는 아니다. 그럼, 뭘까? 아마 나도 몽상가인가 보다.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세상모르는 소리를 하고, 세상모르는 짓을 하고픈 걸 보면, 이건 병에 가깝다. 세상 쓴맛을 더 보고, 이기심의 폭풍에 폐허가 되는 일을 몇 차례 더 겪는다 해도 소위 “정신 차리는 일”이 있으리라곤 그리 기대되지 않으니, 거의 중증 환자에 가깝다. 

어쩌다 이런 지독한 병에 걸렸을까? 가만히 되짚어 보니, 내가 감염된 바이러스의 원천은 아마 붓다였던 것 같다. 

『숫타니파타』 「불을 섬기는 사람, 순다리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언젠가 붓다께서 코살라의 어느 강가 언덕에 머물고 계실 때였다. 
마침 그때 브라만 순다리까가 강변에서 성화聖火를 피워 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제사가 끝나자 그는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신에게 바치고 남은 이 음식을 누구에게 줄까?’
그때 순다리까는 멀지 않은 곳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한 수행자를 발견하였다. 천으로 머리와 몸 전체를 두르고 앉아 있는 그는 붓다였다. 순다리까는 왼손에는 음식을 들고 오른손에는 물그릇을 들고서 붓다에게 다가갔다. 
붓다는 순다리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머리까지 덮었던 천을 벗었다. 이를 본 순다리까는 발길을 멈췄다. 
‘저 사람은 머리를 깎았구나.’
머리를 깎은 자들은 대부분 이교도인 사문沙門이었다. 종족과 출신을 중시하는 브라만에게 종족과 출신을 상관하지 않는 수행자인 사문들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순다리까는 그냥 되돌아가려다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브라만 사제들 가운데에도 간혹 머리를 깎는 사람이 있다. 혹시 모르니 가서 그의 집안을 확인해 보자.’
순다리까는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수행자여, 당신은 어느 계급 출신입니까?” 
그러자 붓다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거룩한 사제도 아니고, 왕족도 아니며
서민도 아니고, 다른 그 무엇도 아닙니다. 
이 세상 어느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깊이 사유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물들지 않는 나는 
낡은 누더기를 걸치고, 머리를 깎은 채
집도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브라만이여
나에게 출신을 묻는 것은 부질없습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가진 것’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또 ‘가진 것’으로 상대를 평가한다. ‘가진 것’, 그것은 유형의 재산이나 친족 등일 수도 있고, 무형의 명예나 경력 등일 수도 있다. ‘가진 것’이 있다면 분명 그것을 ‘가진 자’도 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이 질문은 ‘가진 것’을 묻는 게 아니라 ‘가진 자’에 대해 묻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가진 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일까? ‘가진 것’은 치장하는 장신구와 비슷하다. 그 화려한 빛깔과 문양으로 ‘나’를 ‘너’보다  돋보이게 하려는 수단인 것이다. 또한 ‘가진 것’은 갑옷과 비슷하다. 그 튼튼함을 앞세워 ‘너’가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나’를 지키는 수단인 것이다. 결국 ‘가진 것’만 줄줄이 늘어놓는 까닭은 내가 너보다 잘나고 싶고, 너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기 때문인 것이다. 세상살이에서는 이런 장신구와 갑옷의 우열에 따라 서열을 정하고, 나름 그것을 세상의 질서라며 우쭐대고 또 굽실거리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다들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번쩍번쩍한 갑옷을 걸치려고 기를 쓴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구리갑옷을 황금갑옷이라 우기는 사람도 허다하고, “내가 지금은 양철갑옷이지만 왕년엔 그래도 황금갑옷을 입었던 사람이야.” 하며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즐비하다.

하지만 그러는 그들도 어쩌면 다들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 갑옷 속에 감춰진 ‘너무나도 허약하고 볼품없는 나’를 말이다. 그리고 그 갑옷이 언제든 벗겨질 수 있고, 생각만큼 그리 튼튼하지도 않고, 또 환상처럼 한순간 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알면서도 그러는 건, 아마 솔직하게 드러낼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의 강물을 훌쩍 뛰어넘어, 붓다께 직접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쩌면 붓다께서 이렇게 대답하실 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나에게, 붓다께서는 웃으며 이렇게 덧붙이실지도 모르겠다.

“굳이 말하라면, 허름한 누더기 걸치고 한 끼 얻어먹는 사람이지.”

이런 붓다가 나는 마냥 좋다. 이러면 무시당하기에 십상이고, 바보 취급 당하기 딱 좋을 만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도 따라 그러고 싶다. 

그래서 나는 몽상가다. “이 세상 어느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나”를 꿈꾸고, 어느 누구도 인종이나 계급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꾸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살아가는 나”를 꿈꾸고, 모두가 모든 것을 모두의 것으로 인정하고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고, 뭐라도 하나 있으면 주렁주렁 걸치기 바쁜 세상에서 알몸으로 만날 사람을 찾는 나는, 몽상가다. 

나는 붓다에게서 전염된 이 지독한 병을 치료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소개할 일이 생기면, 나도 이렇게 대답해 볼 요량이다. 

“누구신지?”

“내세울 게 이름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뭘 하시는지?”

“어영부영 밥이나 축내고 그냥저냥 삽니다.”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군종법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 등이 있다.

 

성재헌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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