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죽음을 감축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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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죽음을 감축드립니다”
  • 박재현
  • 승인 2017.09.0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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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은영

그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7월 1일이다. 평생 천착해온 죽음과 그는 77년 만에 겨우 상봉했을 것이다. 부고는 그의 부인이 멀리 캐나다에서 한국 문단에 알려 왔다. 죽기 전에, “장례식도 하지 말라, 나를 위해 울지도 슬퍼하지도 말라, 차라리 축하나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소식을 들은 한 시인은 “죽음을 감축드립니다.”라고, 살아남은 자로선 뱉기 힘든 말로 영전에 송사했다.

박상륭 작가의 작품이 불교나 선禪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하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길은 너무 많고 게다가 서로 뒤섞여 있어서, 그가 딛고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딱 찍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그렇지만서도, 그가 살아생전에 죽음의 문제를 천착하며 딛고 있었던 교두보 가운데 하나가 선이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대표작 『죽음의 한 연구』에서 유리를 떠도는 주인공이 선문禪門의 6조 혜능에 모티브를 두었다는 것은 다들 아는 얘기다. 또 무려 4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소설 『칠조어론七祖語論』 역시 책 제목부터 선문 안쪽의 냄새를 풀풀 풍긴다. 문학계까지는 잘 모르겠고, 불교계에서 그의 작품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못했던 것은 두고두고 아픈 패착으로 남을 것이다.

최인호의 『길 없는 길』 이나 김성동의 『만다라』 속으로 뻗어있는 길과는 또 다른 길이 박상륭의 작품 속에 있다. 앞의 두 작가가 어떤 식으로든 한국 불교계에 자양분이 되었던 데 비해서, 박상륭은 눈길조차 받지 못했다. “바위에다 머리통을 찍어”(『소설법』, 현대문학, 2005, 154쪽) 가며 그가 뚫어 놓은 길이 선문의 깊숙한 곳을 향해 있음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라면 한계고 수준이라면 수준이다. 도리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이 그렇다.

모든 죽음은 어쨌거나 다 갑작스럽다. 오랜 병마에 시달려왔던 이의 죽음이나 멀쩡했던 사람의 죽음이나 갑작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 갑작스러움이 남은 사람의 머릿속을 멍하게 한다. 좀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맹렬히 질주하던 삶이 죽음 앞에서, 한순간 멈칫한다. 그리고 지나온 길에 대해 생각하고, ‘나’에 대해 생각하고, 아득하고 막막한 다가올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죽음은 화두가 된다. 이 과정을 제대로 겪어낸 사람에게 죽음은 더 이상 갑작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죽음을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선문에서 죽음을 다루는 전형이 방 거사의 임종 이야기에서 보인다. 방온(龐蘊, ?~808)은 중국 당나라 때 인물이다. 유마 거사와 더불어 동아시아 불교의 특징과 면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재가 수행자다. 내로라하는 이름 높은 선사들도 그를 자주 언급했다.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인데, 그 끝머리에 임종을 맞이하는 방 거사의 모습이 나온다. 

방 거사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고 딸 영조靈照에게 말했다.

- 해가 어디쯤 있는지 보고 한낮이 되거든 알려다오.

영조가 이미 해는 중천에 떴고 게다가 일식까지 있다고 곧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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