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如談] 3.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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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如談] 3.계집
  • 이혁재
  • 승인 2017.08.2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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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혁재의 '건강 如談' 3
이혁재 한의사 서울 신천 함소아 한의원 원장

흔히 ‘女’를 ‘계집 녀’라고 부릅니다.‘계집’의 본래 뜻이 ‘사람 중 암컷’이라고 이해되고 있지만, 제 생각에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계집'은 파생된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즉, 계집은 ‘사람 중 암컷‘이란 뜻을 포괄하는 일반적인 뜻이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한자를 보면 단일한 의미의 글자들로 구성된 글자도 많지만, 두세 개의 의미가 묶여 하나의 글자를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럴 경우 여러 의미들의 조합을 낱낱으로 분해하여 원글자의 뜻을 살펴보는 작업을 ‘파자(破字)’라고 합니다. 뭉뚱그려 이해하고 있던 글자들의 경우 ‘파자(破字)’를 하게 되면, 좀더 명확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그런데, 파자는 하나로 합의된 일반적인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글자를 해체한 후 전체를 살펴보는 작업 과정은 차라리 그림을 감상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그림이든 보는 이의 느낌에 따라 조금씩 그 평가가 다른 것처럼, 한자를 파자하는 작업은 자신이 살핀 방식을 느낌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감상을 강요하긴 힘들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파자는 ‘앎’ 보다는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원글자를 해체하는 파자의 과정을 조금 방향을 바꿔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바로 단일의미로 이뤄진 글자에 대한 이해가 어렴풋할 때, 그 글자가 포함된 여러 글자들을 감상하는 가운데 단일의미가 보다 뚜렷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계집 녀(女)’자도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계집을 ‘씨알을 담고 있는 집’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계집을 겨집이라고 했다지요. 칼집이 ‘칼이 담고 있는 집’이고 얼굴(얼골)이 ‘얼을 담고 있는 골’인 것처럼 계집(겨집)은 ‘겨를 담고 있는 집’일 텐데요. 이 겨는 아마도 겨울의 ‘겨’와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겨울은 돌아오는 봄을 맞기 위해 생명의 기운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간직되는 것은 한마디로 씨알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하신 분들께 호된 야단을 맞을지도 모르는 근거 없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오늘은 논리를 위주로 한 지식의 문제보다는 감성을 위주로 한 아름다움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자리이니 널리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하튼 ‘겨’의 뜻이 일반적으로 이해되기 힘들기 때문에 계집을 ‘씨알을 담고 있는 집’이라고 방편 삼는 것입니다. 방편으로 삼은 것이기에 씨알을 ‘고갱이 핵심 정수'란 뜻으로 대치하셔도 상관이 없겠습니다. 혹은 노자가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할 때의 '水'라고 보셔도 되구요. 

이제 '계집 녀'가 들어간 몇몇 글자들을 통해 ‘계집’의 뜻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始(비로소 시), 妙(묘할 묘), 妨(걸리적거릴 방), 如(같을 여), 數(셀 수), 安(편안할 안) 등이 있는데, 이들을 한번 간략하게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 始(처음 시) = 女(계집 녀) + 台(별 태 또는 나 이, 그 외 기뻐하다, 양육하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하늘과 인간이 그 근원이 같으면서 항구(恒久)하기 때문에 항상 대응을 해왔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항(恒)한 것은 바로선 마음(忄)과 천지사이의 해(日)로 대표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생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해가 생한 것을 '성(星)'이라 하니, 이 두 종류의 성은 항구하다는 점에서 서로 통하게 된다는 말씀도 드렸구요. 

‘태 또는 이(台)’는 이런 사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 글자가 발음을 달리하면서 ‘별과 나’를 가리키고 있으니까요. 태성(台星)이란 삼태성(三台星)이라고 불리는데, 하늘에서 이 세상을 주관하는 별이라고 옛 분들은 여겼습니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뇌수(腦髓)와 대응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나'라는 뜻으로 쓰일 때는 ‘뇌수를 가진 나'를 의미합니다. '시(始)'라는 것은 하늘과 사람에게서 뇌수와도 같은 그 근원의 씨알, 즉 처음을 뜻합니다. 그것을 '시(始)'라고 이름 붙였다는 얘기가 되겠죠. 

***2. 妙(묘할 묘)** 

흔히들 '묘하다'라고 말하곤 하지만, 여기서 계집을 ‘사람 중 암컷’으로 본다면 암컷이 적은 게 뭐 그리 묘한 일이겠습니까? 수컷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애통할 묘'가 더 어울리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씨알의 관점에서 보자면 '씨알의 양이 너무 적다'는 것이 됩니다. ‘저리 적은 씨알에서 어떻게 이런 울창한 숲이 이뤄졌을까’, '저리 작은 씨앗에서 어떻게 이런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나왔을꼬'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3. 妨(걸리적거릴 방), 如(같을 여)** 

다 아시다시피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하여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고 각지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둥글다고 더 좋고 모나다고 더 나쁜 것은 아니겠지요. ‘방(方)’은 ‘1.모나다 2.각지다 3.바야흐로...’ 등의 뜻이 있습니다. 

'모나다'는 것은 원만하지 않다는 뜻으로 감정을 집어넣어 해석하기도 하지만, '각지다'는 것은 원래 있는 세상을 자신의 틀에 맞춰 덧붙이고 갈아내고 한다는 뜻이 우선입니다. 경제학의 눈으로 보는 세상, 화학이나 물리학의 눈으로 보는 세상 등이 원래의 세상과 비교할 때, 방(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방법(方法)이라는 것은 ‘어떤 틀에 따라 세상의 이치를 본다’는 뜻이 됩니다. '바야흐로'라는 말은 '별 일이 없는 한 99%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예측 가능하다는 뜻이죠. 따라서 방(方)은 ‘일정한 틀을 가지고 세상을 예측가능하도록 재단한다’는 뜻을 지니게 됩니다. 아울러 동서남북 사방이라고 할 때도 세상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네가지 관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방(妨)과 여(如)는 이러한 동양적인 사유 방식의 산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방(方)이 꼭 나쁜 뜻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네모와 비교할 때는 한 쪽 방면을 고집한다는 면에서 편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같을 여(如)는 고갱이가 사방을 두루 하고 있으므로 원래의 세상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 되지만, 어느 한 쪽의 생각만을 고집하는 방(妨)은 순조롭지 못한 흐름을 갖게 되므로 ‘걸리적거리다’는 뜻이 됩니다. 

***4. 數(셀 수)** 

수(數)는 우선 밭 전(田)에서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경계를 넘어서는 글자 + 가운데 중(中) + 계집 녀(女) + 무늬 문(文) 이 됩니다. 

수를 서양에서도 '추상성'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동양에서는 그 설명이 자못 서사적입니다. 동서남북으로 그 경계의 밖까지 살피고 상하로도 모두 살핀 후에 그 고갱이를 모아 무늬로 만든 것이 바로 수(數)가 됩니다. 가운데 중(中)자는 평면이라 이렇게 썼지만 입체적으로 보면 네모난 판의 중심을 관통하는 글자입니다. 그러니까 상하로 꿰뚫는 것이죠. 신(神)이란 글자 역시 이런 방식으로 보아야 합니다. '펼 신(申)'은 밭 전(田)에 상하를 꿰뚫는 '丨'이 있는 것입니다. 곧 '펼친다'는 것은 동서남북과 상하, 즉 육합을 모두 가본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神은 '육합이 보인다'는 뜻이죠.

다시 부연하자면 ‘동서남북 상하에 모든 경계를 넘어 다 살펴 본 연후에 그 핵심적인 씨알을 간추려 만들어낸 무늬’가 수(數)라는 것이죠. 

***5. 安(편안할 안)** 

안(安)이란 글자는 어처구니 없는 시대를 맞아 고생하고 있는 글자 중에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집안에 여자가 있어야 편안하다'는 '암탉 슬로건'의 희생양이니까요. 그렇다고 집안에 여자가 없어야 평안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계집’을 ‘인간 중 암컷’으로만 해석하는 편협한 호사가들의 입담때문에 '안(安)'은 여성들로부터 천대받는 수난을 겪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본래 갓머리는 민갓머리와 달리 생명력을 지닌 덮개란 뜻입니다. 예를 들어 家는 생명력이 있으나 冠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생명력을 지닌 덮개 안에 고갱이는 모셔둔 것이 안(安)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는 불안(不安)한 상황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이 없는 교회, 가부좌를 하신 부처가 없는 대웅전을 바라볼 때의 나타나는 느낌이 바로 불안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녀(女)’자가 포함된 몇몇 글자들을 살펴봤습니다. ‘사람 중 암컷’으로만 해석할 때 ‘계집’에 대한 오해를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한의학적으로 ‘계집’은 ‘정(精)을 담는 그릇’에 해당합니다. 봄에 만물을 소생하게 하기 위해 땅이 고이 씨알을 간직하는 것처럼, 사람에게서도 ‘계집’은 남자든 여자든 정을 고이 간직하여 생명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자에게는 난소와 자궁이 남자에게는 고환이 ‘계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아가 내 마음의 불안함을 해소하는 자연스런 마음의 흐름을 간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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