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 스카이점프, 슈라마나, Not the old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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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스카이점프, 슈라마나, Not the old way
  • 김천
  • 승인 2017.08.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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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쩍 멘토(Mento)란 말을 자주 본다. 대개 삶의 길잡이란 뜻으로 쓰는 이 말의 출전은 호머의 서사시 오딧세이에서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오딧세이의 친구 멘토의 모습으로 나타나 방황을 그치게 한데서 유래했다.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이 말이 최근 두루 쓰이는 데는 젊음의 불안이 커져가는 세태와 무관치 않다. 청춘은 길을 잃고 세상은 어지러우며 고난은 깊어간다.

멘토에게는 반드시 그를 따르는 멘티(Mentee)가 있다. 멘티가 닥친 현실은 방황과 회의와 미로이다. 꿈을 포기하고 처음 길을 나설 때의 목적을 상실해버렸다. 멘토는 그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와 쓰러진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고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나서게 한다. 신의 권능으로 마법처럼 문제를 해결하여 등을 떠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갇혀있는 용기를 일깨우고 다시 길을 찾도록 영감을 주는 존재이다.

또한 대학가 곳곳에서 멘토 초청 강연회를 자주 본다. 대개 성공한 사업가이거나 정치인, 종교인 등이 멘토로 등장하여 무기력한 젊음을 질책하고 더 큰 목표를 정하며 자기를 계발하라고 훌륭한 말씀을 베푼다. 어떤 이는 젊음의 방황과 아픔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그 여린 정서를 토닥인다. 이런 멘토류의 책들이 백만 부 이상 팔려나가고 방송을 넘어 전국 순회 콘서트로 퍼져가는 것을 보면 젊은이들이 아프긴 아픈 모양이다.

그러나 오딧세이의 친구이자 길잡이가 된 멘토는 귀한 신분이 아니었다. 그는 노예였다. 그럼에도 지혜를 갖고 있었고, 늘 곁에서 함께 지내며 그의 생각과 꿈과 절망을 이해하고 있다.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며 힘을 내면 할 수 있다는 공허한 속삭임을 던지는 그런 존재가 결코 아니다. 나와 함께 번민하며 곁을 지켜 깊은 신뢰를 주는 이가 바로 진정한 멘토이다. 그러므로 멘토는 스승과는 분명히 다르다.

최근 이벤트 중에 멘토의 의미를 확실히 보여주는 이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외계인 사건으로 기억하는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웰의 황량한 땅에서 인간의 무모한 도전이 있었다. 36킬로미터의 고도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려 자유낙하 하겠다는 이 무식한 계획은 지난 2005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이다. 도전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모험가 펠릭스 바움가르트너, 첨단과학 장비와 막대한 경비는 한 음료수회사에서 지원했다. 지난 7년 동안 도전자는 이 계획을 위해 체력단련과 고공 낙하 훈련뿐 아니라 필요한 자격증까지 모두 갖췄다. 도전은 아주 단순하다. 첨단 캡슐을 타고 헬륨풍선에 매달려 3시간 동안 올라 가 고도 3만6천 미터, 우주와 성층권의 경계에 이르면 문을 열고 뛰어내려 음속을 돌파하고 수 분간의 자유낙하를 거친 후 1500미터 상공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성공한다면 바움가르트너는 세계기록 4개를 갈아치우고 또 다른 미지의 영역에 발을 내딛게 될 것이다.

도전 당일 전 세계 1억 명 이상이 인터넷을 통해 현장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섯 시간 이상 기다림 끝에 결국 기상 악화로 낙하는 연기되고 말았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아무도 그 도전을 실패했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왜 이 돈도 되지 않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사람들은 열광할까. 그것은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길이기 때문이다. 중계방송 내내 바움가르트너와 교차해 한 명의 노년이 줄곧 화면을 채웠다. 그에 대한 소개는 단 한 줄. 멘토, 조셉 키팅거. 그는 1960년 고도 31,333미터에서 뛰어내린 기록의 보유자이다. 나이 80을 바라보는 연륜에도 그는 대기시간 내내 묵묵히 지켜보고 조언하고 조용히 도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멘토라는 단 한마디의 호칭은 그럴 때 빛나고 값진 것이다.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길잡이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나이든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절대시하여 젊음을 예단하고 훈수를 둔다. 어쩌면 당연한 말만을 내뱉고, 공허한 충고를 남발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주장은 기득권과 고정관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세상에 범람하는 멘토들에도 불구하고 혼란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가짜 멘토가 제시한 성공과 통념의 가치를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은 없고 답답한 옛길은 경쟁자들로 가득하다.

인류가 걸어온 위대한 족적은 과거를 답습하지 않은 결과이다. 앞 사람만 따라간다면 우리는 같은 장소를 맴돌 뿐이다.

붓다는 집을 나서며 “나는 이제 사문(沙門, śramaṇa)이 되려한다.”고 했다. 사문이란 특정한 종교에 소속된 특정 신분의 지칭이 아니다. ‘과거의 관습에 얽매지 않은’ 자유로운 수행자의 무리를 슈라마나, 사문이라 한다. 과거에서 벗어났기에 그들은 신(神)의 속박에서 놓여났고, 의식과 제사를 통한 성취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며, 생명은 평등하게 고귀하며, 구원은 결국 자신의 행위(Karma)에 달려있음을 깨달았다. 신라의 위대한 정신 원효(元曉)는 구도자로서 자신을 표현할 때, 늘 해동 사문(海東沙門)으로 썼다. 얽매이지 않은 자각 때문에 그의 정신이 걸어간 여정은 위대한 것이다.  멘토란 결국 앞서 새로운 길을 걸었고, 그 길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벗들에게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북돋우는 이다. 싸구려 성공과 마취된 감정을 통해 현실을 왜곡하고 세상의 가치가 모두인 냥 떠드는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들리고 힘들고 외롭더라도, 새로운 길을 걷겠다는 마음을 일깨우는 한, 벗을 위해 멘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길을 찾는 멘티가 될 수 있다. 두려워하지 말고 기꺼이 새로운 길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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