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교 지탱해온 단가제도에 균열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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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교 지탱해온 단가제도에 균열이 생겼다
  • 유권준
  • 승인 2017.08.14 18: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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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종 견성원 주지 하시모토 스님 단가제도 스스로 폐지

편집자 주

일본불교를 규정하는 개념을 꼽으라면 생활불교나 종파불교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일본 불교를 지배하는 개념은 단가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불교를 이해하는 데 단가제도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가제도는 일본인 모두가 사찰에서 장례와 제사를 치르도록 강제한 제도다. 단가제도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17세기초 유럽의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가 급속히 확산되자 이를 막기 위해 생겨난 제도다. 주민들의 종교를 확인하기 위해 모든 주민이 사찰에 소속되어 있음을 전제로 사찰로부터 자신은 기독교인이 아님을 증명서를 발급받게 한 것이 바로 단가제도의 시작이다. 단가제도가 생기면서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사찰이 여러가지 의례(장례, 제사 등)를 독점하면서 경제적 대가를 받기 시작한 것이 단가제도다. 자연스럽에 일본인들의 종교는 불교로 집중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가제도는 일본 사찰의 안정적 수입을 확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수행과 포교의 역동성을 잃어버리는 폐해를 가져오기도 했다. 즉 막부의 하급관청화되며 주민을 통제하는 수단화되어버린 측면이 있다. 최근에 와서는 고령화, 1인가족의 폭발적 증가, 여성지위 신장 등의 이유로 단가제도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적 상황속에서 단가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지역사회에서 포교와 수행을 통해 사찰의 역할을 제고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견성원 하시모토 스님이 대표적 사례다.

단가제도를 폐지한 조동종 견성암 주지 하시모토 스님 / 사진 출처 = AERA dot.

일본불교의 재정적 근본이 되어온 단가제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일본의 시사잡지 <AREA>는 최근호에서 <단가제도 폐지로 4배 수익얻는 사찰로 논란>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인구 고령화와 가족제도 해체, 1인가족의 급속한 확산등으로 인해 단가제도가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 언급한 것은 사이타마현의 조동종 산하 견성원의 하시모토 히데키 스님의 이야기다.

하시모토 스님은 “자본주의 경제의 자유경쟁속에서 사찰의 시간은 멈추어버렸고, 스님들도 타락했다”고 주장한다. 하시모토 스님이 주지로 있는 견성원은 400년이상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스님은 23대를 이어 주지직을 수행하고 있다. 고마자와 대학과 대학원을 수료하고, 조동종 본산 영평사에서 3년간 수행했다.

그는 25살때 견성원 부주지로 부임했다. 당시 그의 월급은 10만엔.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장례식을 할때 스님을 중개해주는 파견업체에 등록해 장례식 집전 아르바이트도 했다. 42살에 주지가 되어 개혁에 나섰다. 2011년 4월 단가 대표들이 모이는 이사회에서 단가제도 폐지를 선언했다. 하시모토 스님은 “사찰이란 본래 사람들의 사상이나 신조, 종교관에 따라 자유롭게 사찰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단가제도”라며 단가대표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의 단가제도 폐지선언에 단가대표들은 “절을 부술 생각이냐”며 반발했다. 연회비와 관리비도 받지 않고 어떻게 사찰을 운영하겠느냐는 현실적인 지적이었다.

하시모토 스님은 단가대표들을 1년여간 설득해 2012년 6월 마침내 종교나 종파, 국적을 초월한 누구에게나 열린 ‘모두의 사찰’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400개 가까이 있던 단가와의 관계를 일단 백지화 하고 ‘수연회(随縁会)라는 조직으로 바꾸었다. 명칭도 ‘단가’에서 ‘신도’로 변경했다. 그러면서 법요와 제사를 지낼때 내던 시주금을 절반으로 낮추었다. 애매하게 매겨지던 비용을 정액화 해 이전에 50만엔 이상 받던 시주금을 20만엔에서 25만엔으로 내렸다.

유골을 우편으로 접수하는 ‘송골(送骨)서비스’도 아마존 재팬에 가입해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전통파괴에 전일본불교회가 담화를 발표하고 “비즈니스를 하는 스님에게 의심과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주변 사찰에서도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하시모토 스님이 내건 목표에 찬성의 목소리를 전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시모토 스님이 운영하는 견성원의 신도는 단가제도 폐지이전보다 2배가 늘었다. 현재는 800여명에 이른다. 스님은 사찰의 회계도 공개했다.

2014년도에 9980만엔이었던 사찰 수입은 2016년도에 1억 2816만엔으로 늘었다. 단가제도 폐지이전 3천만엔에 불과했던 수입이 4배이상 늘어난 것이다. 수입원이 가장 많이 늘어난 부분은 합동납골시설에 조상의 유골을 모시는 ‘영대공양(永代供養)’으로 각지에서 매년 200건 이상의 요청이 들어온다.

장례와 제사의 건수도 단가제도 폐지 이전보다 2배에서 5배가 늘었다. 장례는 1년에 35건, 제사는 300건을 거행한다. 사찰에 근무하는 직원 10명과 하시모토 스님은 모두 월급을 받는다. 스님의 월급은 50만엔이다.

하시모토 스님은 일본의 거품경제 시기에 토지가격이 오르고, 보시금액이 늘어 고급차를 타고, 심지어 도박을 하는 스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견성원은 사찰 회계를 공개하고, 사찰내의 계율을 더욱 엄격히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건 최소한의 계율에는<골프와 낚시 하지 말기>, <도박하지 않기>, <고급차를 타지 않기> 등이 포함됐다.

하시모토 스님은 “아직 개혁은 5부능선”이라며 “앞으로는 사찰의 M&A(통폐합) 뿐만 아니라 지주회사 설립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다. 단가제도에 얽매여 장례만 치르는 곳이 되어 버린 사찰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되, 불교의 가르침을 넓히는 방향으로 변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시모토 스님은 “일본불교가 장례나 제사와 같이 사후의 관계에만 지나치게 집중해왔다”며 “부처님이 가르친 불교는 사찰과의 인연을 통해 일관되게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이었다”고 강조했다.

니카타 시의 7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일련종의 묘광사도 개혁을 진행중이다. 주인공은 53대 주지 오가와(64) 스님. 오가와 스님은 “가족이 해체되면서 단가제도가 사라져 간다. 전통적인 가족제도에 묶여있는 장례와 장묘제도는 특히 여성에게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오가와 스님은 1989년부터 회원제로 영구히 조상의 납골묘를 모시는 집단합묘 <안은묘>를 만들었다. 처음 시도한 1차 안은묘 108구회은 4년만에 매진됐다. 그후 3기를 더 만들었는데 이 역시 12년만에 모두 매진됐다. 묘광사의 회원도 전국에 900명이 넘는다. 묘광사는 연 4회 회보를 발행하고 매년 8월 유족이나 회원이 모이는 추석행사를 열어 합동법회를 갖고, 젊은이들과 <죽음에 관한 세미나>도 개최한다.

 

* 출처 :  일본 잡지 AREA  https://headlines.yahoo.co.jp/article?a=20170802-00000057-sasahi-so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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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2017-08-14 21:14:32
일본승려도 돈에 미쳤구나
월10만엔이 적다고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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