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병의 평화모니] 남전의 고양이와 조주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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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의 평화모니] 남전의 고양이와 조주의 개
  • 윤구병
  • 승인 2017.08.0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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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선문답’이라는 말이 있다. ‘화두’나 ‘공안’이라는 말도 있다. 불교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두 번쯤 들었음 직한 낱말들이다. ‘화두’ 가운데 ‘남전의 고양이’는 꽤 널리 알려져 있다. 요즘 사람들 입맛(口味)에 맞게 제목을 달자면 ‘남전 스님의 고양이 새끼 살해사건’이라고 해야겠지. (그렇다고 엽기 추리소설쯤으로 여기지는 말기 바란다.)

이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눈길을 끌 만하다. 절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죽이지 마라.’(不殺生) 부처님 말씀이다. 그런데 중국 선불교 역사에서 이름을 떨친 중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 천하의 ‘한가운데 나라’(中國)라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니, 또 중 가운데 가장 중다운 이로 이름난 ‘남전 대선사’가 저지른 짓이니 요즘 같으면 온 세상이 떠들썩했음 직한 사건이다.

전말(앞뒤)은 이렇다.(전해진 이야기에 따른다.) 절집에 두 패거리가 있었다. 동쪽 패거리(동당)와 서쪽 패거리(서당). 두 패거리 사이에 입씨름이 벌어졌다. (요즘 말로 하면 ‘유물론’ 대 ‘유심론’, ‘창조론’ 대 ‘진화론’ 사이의 논쟁이라고 할까?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입에 거품을 물고 싸우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그 절집 ‘왕초’인 남전의 귀에 들어갔다. 잔뜩 약이 오른(?) 남전이 한 손에는 고양이 새끼 목덜미를 움켜쥐고, 다른 손에는 식칼(절집이니 ‘일본도’나 ‘잭나이프’ 따위 사람을 베거나 찌르는 ‘살생용’ 칼은 없었겠지.)을 들고 나섰다.

‘어서 일러라. 제대로 이르면 이 고양이 살려 둘 테고 잘못 이르면 죽이리라.’ 아무도 이르는 놈이 없었다. 모두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래서 애먼 고양이 새끼만 죽었다. 이것이 이른바 ‘남전의 고양이’다. 끔찍한 사건이다. 그래서 남전이 한 짓을 두둔하려는 사람들 가운데는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아니고….’라는 군말을 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그 자리에 조주는 끼지 않았다.

일 보러 나갔다가 뒤늦게 돌아온 조주에게 남전은 그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털어놓는다. ‘이래저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네.’ (참고삼아 말하자면 조주는 남전이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나이 스물이 되기 전에 남전 밑에 들어와서 마흔 해가 넘게 남전을 모시고 살았다. 속가俗家 항렬로 따지자면 ‘피붙이’나 다름없었고, 주고받은 이야기(선문답)를 주워 모아 얽어보면 ‘사제지간’이라기보다는 길동무(道伴)에 가까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말을 들은 조주는 아무 말 없이 신발(미투리나 짚신이었겠지. 띠풀이나 볏짚으로 삼은.)을 벗어 머리에 이고 돌아선다. 그 모습을 본 남전이 중얼중얼. 

‘그 자리에 자네가 있었더라면 그 고양이 새끼 살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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