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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함께 한 식물 그리고 동물] 사라수와 멧돼지

| 사라수娑羅樹

스승께서는 마지막 길에서도 숲에 머물길 원하셨다. 아난다의 부축을 받아가며 가고자 했던 곳은 쿠시나가라. 그곳에는 말라Malla 족이 소유하고 있었던 사라수 숲이 있었다. 스승은 그 숲에 이르러 두 사라수가 나란히 서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아난다에게 당신의 겉옷을 접어 머리에 고이게 했다. 머리는 북쪽으로 두고 오른쪽으로 누운 채 다리를 나란히 포개었다. 몸에 지병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춘다의 공양물이 그 지병을 더 깊어지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스승은 두 사라수 사이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들고자 했다. 

하지만, 스승은 왜 열반의 자리로 사라수 아래를 택했던 것일까. 스승은 눈을 감고 오래전 사라수 숲의 기적들을 회상했을지 모른다. 한번은 어떤 원숭이가 스승의 발우를 훔쳐 사라수 위로 달아나는가 싶더니 사라수의 꿀을 가져와 스승에게 바친 적이 있었다. 스승은 그때 꿀을 드시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더니 원숭이는 꿀 속에 빠진 벌레를 골라내 다시 드렸다. 그래도 스승은 꿀을 드시지 않았다.

다시 원숭이는 꿀에 물을 타서 드렸고 스승은 그제야 꿀을 드셨다. 스승과 원숭이는 모두 기뻐했다. 또 언젠가는 스승이 사라수 밑에 앉아계실 때 모든 나무들의 그림자는 낮 시간이 지나 다른 자리로 이동했지만 오직 스승이 앉은 사라수의 그림자만은 스승의 머리 위에서 떠나지 않고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런 사소한 사라수의 추억이 아니라면, 비사부불毘舍浮佛의 깨달음을 회상했을지도 모른다. 과거칠불過去七佛 가운데 한 분이셨던 비사부불이 이 사라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하지 않던가. 어떤 기록에는 무우수無憂樹가 아니라 바로 이 나무 밑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했다고도 말한다. 처음 마야부인이 사라수 가지를 휘어 잡고(śālaban.jika) 자신을 낳았던 그 나무 밑으로 돌아왔다는 것일까.  

이러한 사라수의 추억들이 열반을 앞둔 스승의 기억 속에 있었을까. 사라수 아래에서 열반에 들고자 한 이유를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어도, 스승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속에 사라수에 대해 인상적인 말을 남긴다. 

사진 : 심재관

“선남자야, 이러한 인연으로 내가 이 한 쌍의 사라나무(娑羅雙樹)사이에서 크게 사자후하는 것이니, 사자후라고 함은 대열반을 일컫는 것이다. 선남자야, 동쪽에 서 있는 한 쌍(의 사라나무)은 변화하지 않고 늘 같은 상태로 있음을 의미하며, 북쪽에 있는 한 쌍(의 사라수)은 부정함이 없고 깨끗함을 의미한다. 선남자야, 중생들은 쌍으로 선 나무를 위하여 사라숲을 수호하며, 다른 이가 그 가지와 잎도 가져가지 못하게 하며, 찍거나 파괴하지 못하게 한다. 나도 그와 같아서, 네 가지 법을 위하여 제자들에게 부처의 법을 수호하라고 명한다…. 이 네 그루의 쌍수는 사천왕의 역할을 하니, 나는 사천왕으로 하여금 나의 법을 수호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속에서 열반에 든다.”

스승의 이 말은 양쪽에 늘어선 두 쌍의 사라수가 마치 사천왕과 같이 불법의 수호를 의미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사라수는 불법을 보호하는 강력한 버팀목의 이미지를 갖는다. 실제로 사라수가 불교 이전부터 건축물이나 기반시설 등에 자주 사용되었던 매우 강한 나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전의 표현 속에 그려진 사라수가 결코 낯선 것은 아니다.   

사라수의 원래 명칭은 쌀라Śāla이며, 사라수娑羅樹는 이것을 음사한 것이다. 지금 인도나 네팔에서는 단순히 “쌀”이라 부른다. 학명은 쇼레아 로부스타Shorea robusta인데 뒤에 붙은 로부스타는 강하다는 뜻이다. 단단하고 곧게 자라는 특징 때문에 사라수는 옛날에도 대부분 건축자재와 가구재로 쓰였다. 특히 북인도와 네팔에서 종교건축물의 기둥과 문틀은 대부분 이 사라수를 이용했다. 이 목재의 쓰임은 인도보다 네팔에서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건물의 하중을 잘 견딜 뿐 아니라 굽거나 잘 부러지지 않는 나무이기 때문에 건물의 구조목으로 주로 쓰기도 하고, 외부의 습기나 추위에도 변형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둥과 문틀 등으로 많이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파탈리뿌뜨라와 같은 옛 인도 도시 건설에서 보듯이, 도시의 방책防柵이나 연못과 같은 도시의 기반시설을 만들 때에는 물에 잘 견디는 사라수가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이러한 단서들은 이 나무가 보통나무들처럼 누구나 손쉽게 베어내 사용할 수 있는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고대 인도에서도 이 나무는 숲을 관리하는 자를 별도로 두어 사라수를 기르고 보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 나무의 희소성 때문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나무였기 때문에 관리하고 식재를 하던 나무였다. 

특히 사라수 숲에 대한 관리는 여러 번 불경 속에서 등장한다. 언젠가 아직 불법에 귀의하기 전이었던 목건련目健蓮은 스승이 말한 수행정진의 길을 사라수 키우는 일에 빗대어 스승에게 공감을 표시한 적이 있다. 

  • “고타마시여, 잘 알았습니다. 마치 매우 좋은 땅에 사라娑羅 숲이 있고 그 사라 숲을 지키는 사람이 부지런해서 게으름이 없이 스스로 힘껏 사라나무의 뿌리가 때로 손상될까 지켜보고 비료를 그 속에 뿌리고 물을 주는데, 만약 모자라는 것은 흙을 채워 주고 주변의 풀을 뽑아 버리며, 또 넝쿨이 감고 올라가면 굽어지고 곧게 자라지 못하는 폐단이 있으므로 넝쿨도 뽑아 줍니다. 그는 또 막 새로 자라나서 긴 것은 수시로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며 물을 잘 대 줍니다…. 그와 같이 좋은 땅의 사라나무 숲이 나중에는 매우 무성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도 이 경전이 성립할 당시에 이미 사라수는 사람이 식재해 관리해야 할 정도로 유용하고 값어치 있는 나무였을 것이다. 지금도 이 나무가 주로 인도 동북부나 네팔 남부 지역에서 자생하고는 있지만, 국가가 벌채를 통제하고 있는 반면 수요는 넘쳐 가격은 매년 치솟고 있다. 네팔에서는 가장 값지고 고급스러운 가구재가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사라수는 뿌리와 껍질, 꽃까지 모두 버릴 것이 없는 나무다. 껍질을 끓인 진액으로 약을 만들고, 나뭇잎은 일회용 그릇을 만들어 쓰거나 인도의 싸구려 담배인 비디bīd.ī를 싸는 데 쓰기도 한다. 

스승께서 오래전 말했듯이, 비록 당신이 마지막으로 몸을 뉘였던 사라쌍수의 그 나무가 아니더라도, 지금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나무가 되어버렸다. 


|   멧돼지

스승께서는 춘다에게 공양을 받으신 후에, 남겨진 음식이 있다면 구덩이를 파서 모두 묻어버리라고 말씀하셨다. 직감적으로 음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신 것이다. 아니면, 여래이신 당신만이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이었음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춘다가 스승에게 공양했던 이 마지막 음식이 돼지고기였다는 주장이 있다. 후대에 이러한 해석은 한때 금지되기도 했지만, 이 음식이 어떤 방식으로든 돼지 혹은 멧돼지와 관계가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는 없다. 돼지고기를 공양물로 올릴 수 있었는가는 의심할 일이 아니다. 당대의 불교승려들에게 돼지고기(sūkara mam.sa)가 허용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며, 매우 희소하지만, 부처님도 이것을 받아 드신 적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전에서 춘다가 올린 이 음식을 ‘수까라맛다바sūkaramaddava’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이 어떤 음식이었는가는 사실 학자들도 정확히 모른다. 말 그대로 하면 ‘부드러운(maddava) - 돼지(sūkara)’란 뜻이다. 이것은 생후 1년 전후의 어린 멧돼지이거나, 돼지고기를 부드럽게 익힌 어떤 음식이었을 수도 있다. 또는, 돼지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식자재를 이용한 음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대의 『대반열반경』이나 『법구경』의 주석서에서 승려들은 이것을 돼지고기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썼다는 것은 당시에 승려에게도 돼지고기 공양이 가능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만일 결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는 경우라면 주석서의 작가가 그렇게 해석을 달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돼지였다는 가정을 해본다면, 질기지 않고 기름기가 있는 멧돼지 고기로 볼 수도 있다. 

그 당시에 또 다른 해석도 있었는데, 멧돼지가 땅을 뒤집었을 때 나오는 죽순竹筍이라거나 멧돼지가 헤집어 놓은 곳에서 자라는 버섯의 한 종류라는 주장도 있었다. 후대의 해석들을 더 덧붙이면, 우유와 쌀로 끓인 죽의 한 종류라는 설명까지도 있다. 이러한 고대의 주석에 의지한 현대학자들의 해석도 과거의 주석서에 나타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 : 심재관

현재의 사정과 달리, 고대 인도에서 멧돼지는 고기와 지방을 제공해주는 주요 식량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멧돼지를 집에서 기른 것은 아니다. 개와 멧돼지 등이 인간과 공존을 하지만 인도에서 이들을 가축으로 기르지 않는 대부분의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다. 이 동물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잉여 음식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모자란 것이다. 게다가 자이나교나 불교 등에 의해서 불살생이 강조되고 채식이 이념적으로 확산되면서 멧돼지 소비는 더 줄어들었고 이슬람의 유입으로 멧돼지는 더욱 터부시되었다. 돼지나 멧돼지가 더럽다는 인식도 여기에 한몫을 했다. 인분人糞을 게걸스럽게 먹는 돼지나 개의 습성이 오염과 순수의 관념을 따지는 고대 인도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는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현재는 아직 비폭력의 이념과 육식에 대한 계급적 위계 의식, 돼지를 비위생적으로 보는 인식 때문에 그렇게 돼지 소비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산층과 젊은 세대에 의해 축산농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한국의 관광객이 인도의 소도시나 시골에 가면 인간을 피하지 않는 이 천덕스러운 멧돼지들에게 꽤 흥미를 느낄 것이다. 마치 골목길의 개처럼 무심하게 자신을 지나칠 것인데, 그러한 무심함은 멧돼지뿐만 아니라 인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지구상에서 동물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이렇게 정반대인 것이 때로는 낯설고 당혹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실로 인도는 동물과의 공존을 실험해볼 수 있는 지구상에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심재관
동국대학교에서 고대 인도의 의례와 신화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를 마쳤으며,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인도의 뿌라나 문헌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필사본과 금석문 연구를 포함해 인도 건축과 미술에도 관심을 확장하고 있으며,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파키스탄의 대학과 국제 필사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 뿌네의 반다르카 동양학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저서 및 역서로는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세계의 창조 신화』, 『세계의 영웅 신화』, 『힌두 사원』, 『인도 사본학 개론』 등이 있다. 금강대학교 HK 연구교수, 상지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했으며, 동국대학교와 상지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심재관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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