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화두를 어찌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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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화두를 어찌 들까
  • 박재현
  • 승인 2017.07.0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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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이은영

내가 중하게 여기는 것과 남이 중하게 여기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남의 선생 노릇을 오래 하다 보면 이 당연한 이치를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내가 중히 여기는 걸 남이 그렇게 여기지 않으면, 왜 이걸 모르냐고 왜 눈여겨보지 않느냐고 윽박지르고 가르치려 든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아무리 곱게 풀어서 변명해도 결국에는 뭔가를 억지로 하게 만드는 일이다. 정말 꼭 필요한 것인지, 혹시 안 해도 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묻기 시작하면 남의 선생 노릇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선생은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가르칠 일도 배울 일도 없이, 들꽃처럼 그냥 저마다 피어났다가 또 사라지면, 오죽이나 좋을까. 날이 더우면 해를 피해 새벽이나 저녁나절에 잠시 몸을 좀 뒤척여 보고, 추워지면 황토 빛이 스며들어 발그레한 해남 호박고구마나 구워 먹으며 겨울을 나면 그만인데. 그렇게 가르칠 일도 배울 일도 없이, 누군가 훅 불어 흩어진 민들레 홀씨처럼 둥둥 떠다니다가, 어느 땅바닥 한 귀퉁이에 마른 육신을 묻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뭔가를 애써 도모하는 것은 거북하고, 힘겨운 일이다. 익숙했던 것을 새삼 되돌아보는 일이 힘겹고, 낯선 것을 대적해야 하는 일은 더 힘겹다. 힘겨움은 어떻게든 견뎌낸다고 치자. 왜 그런 일을 감수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또 무엇을 도모할 수 있는지 전혀 공감하고 있지 못하다면, 상황은 너무 난감해진다. 교육이, 배우는 일이 힘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교육현장에서 제자는 나머지가 되기 십상이고, 스승은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선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육 방법이 화두다. 화두를 가지고 참선 수행하는 것을 두고 흔히 ‘화두를 든다.’고 표현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화두를 ‘(붙)잡다’, ‘놓(치)다’ 등의 표현도 쓴다. 선은 화두를 들고 한다는데, 화두를 든다는 게 어찌 하는 것일까. 또 막 억지로 들라 하면 들리는 것일까. 사실 이런 질문은 잘 하지 않는다. 질문하면 혼날 것 같아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화두를 든다.’고 너무 자연스럽게 말한다. ‘화두를 든다’는 표현은 여름에 덥다는 소리나 겨울에 춥다는 소리만큼이나 선에서는 인이 박힌 표현이다.

그런데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간단치가 않다. ‘들다’라는 우리말은 표현은 다양하게 쓰인다. 의미 범주가 상당히 넓다. 얼른 생각해 봐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거나 들어오거나 하는 것”을 ‘들다’라고 표현한다. 또 “날이 날카로워 물건이 잘 베어지는 것”도 ‘들다’라고 표현한다. 또 “비나 눈이 그치고 날이 좋아지는 것”도 ‘들다’로 쓴다. 그리고 “의식이 회복되거나 어떤 생각이나 느낌 따위가 일어나는 것”도 ‘들다’로 표현한다. “생각이 든다.”가 대표적인 용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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