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벽화이야기] 양산 신흥사 관음삼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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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 양산 신흥사 관음삼존도
  • 강호진
  • 승인 2017.07.0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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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 그리고 페미니즘
양산 신흥사 관음삼존도. 사진 : 최배문

사람마다 내용이 아닌 제목 때문에 잊히지 않는 책이 한두 권쯤은 있을 것이다.

내겐 2001년 국내에 번역된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이란 책 제목이 기억에 남는다. 살다 보면 항상 묻고 싶지만 체면 때문에 차마 묻지 못하는 질문들이 있기 마련이다. 비자발적 교육이나 워크숍에 참여해본 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가장 궁금한 것은 강의의 내용이나 강사의 자질 같은 것이 아니다. 밥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는지, 중간에 몇 번을 쉬는지, 강의를 얼마나 빨리 마쳐줄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이 가장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마경』에 등장하는 붓다의 제자 사리불(사리푸트라)은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는 고담준론의 법담法談이 오가는 와중에도 ‘이제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고 이 많은 보살들이 모였는데 대체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유마 거사는 수행자가 음식 생각이나 한다며 사리불을 타박하지만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는 유마 거사보다 점심메뉴를 고민하는 사리불의 인간적 모습이야말로 더 핍진逼眞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속으론 궁금하지만 선뜻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들은 불교에도 있다. 초심자 가운데는 연기緣起나 공성空性의 의미보다는 승려들은 몇 시에 자는지, 뭘 먹고 사는지, 왜 출가했는지 같은 것들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다. 내게도 이와 비슷한 종류의 의문이 있었는데 관세음보살의 성별에 관한 문제였다. 불전의 관세음보살은 외모나 복색으로 보면 분명 여성인데 희한하게도 수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 ‘서유기’와 같은 중국영화에 등장하는 관음보살은 늘 여성 연기자가 맡는데 티베트 불교에서는 관음을 남성으로 대우하는 것도 이상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묻기도 어려웠다. 흐릿한 대답 뒤에 뒤따르는 ‘대승보살은 무분별의 공성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 존재인데, 기껏 보살의 성별 같은 것에 집착하고 있나 보군’ 같은 점잖은 훈계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관음보살이 최초로 등장하는 경전은 『비화경悲華經』인데, 무념쟁왕의 태자가 승가에 공양한 공덕으로 보장여래에게 내세에는 관세음보살이 되리란 수기를 받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태자가 다음 생에 어떤 성별로 태어나 관세음보살이 되는지에 관해선 알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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