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새겨진 백제의 꿈, 바람이 불면 되살아 나는
개암사 가는 길에 윤구병 선생이 동행했다. 이 책의 뒤쪽에서 평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농부철학자. 변산에 터를 잡고 공동체를 일군 지 20년이 넘었다. 동네 터줏대감에게 가는 길에 인사드렸더니, 대뜸 배낭 하나 둘러메고 따라나섰다.
“개암사 간 지도 오래됐고 같이 갑시다.”
“저야 좋지만, 바쁘지 않으세요?”
“나는 열반이 가까워서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지. 노인이 바쁘면 제때 떠날 수가 없어요.”
변산 공동체에서 개암사까지는 약 30km, 가는 길에 밤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사월에 벚꽃 필 때, 유월에 밤꽃 필 때, 검은 머리에 곰발 나듯 짙은 초록의 숲이 희끗희끗하다.
“밤꽃이 왜 밤꽃인 줄 알아?”
“밭매던 여자가 호미 던지고 떠난다는 밤꽃 아닙니까? 꽃이라고 하기에는 이쁘지도 않고 서숙같이 늘어지는데, 저것을 향기라고 해야 할지, 냄새라고 해야 할지….”
“남자한테는 냄새지만, 여자한테는 향기라. 밤을 유혹하니까 밤꽃이지. 근데 호미 던지고 떠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어? 혼자 사는 내 집은 찾아주지도 않고.”
월간불광 과월호는 로그인 후 전체(2021년 이후 특집기사 제외)열람 하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