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란 무엇인가, 간화선은 쉬운 수행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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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란 무엇인가, 간화선은 쉬운 수행법인가?
  • 유윤정
  • 승인 2017.06.2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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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간화선 국제 학술대회 참관기
제5회 간화선 국제학술대회 ‘세계 속의 선불교 Seon Buddhism : New Scholarly Perspectives’

세계 속의 선불교는 어떠한가를 알아보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불교학술원 종학연구소(소장 종호 스님)와 동국대학교 국제 선센터(센터장 수불 스님)가 공동 주최한 제 5회 간화선 국제학술대회 세계 속의 선불교 Seon Buddhism : New Scholarly Perspectives’627일 동국대학교 중강당에서 개막했다.

이번 간화선 국제학술대회는 627일 제1회 수불학술상 시상식을 시작으로 627~28, 동국대학교에서 양일간 학술대회를 열고, 이후 인제 백담사에서 국내외 수행자들과 함께 75일까지 56일 동안 실참 수행을 이어나간다. 실참 기간 동안 수불 스님이 간화선 집중 수행을 직접 지도하고, 석종사 혜국 스님과 봉암사 적명 스님이 점검하고 대담할 예정이다.

수불 스님의 화두란 무엇인가라는 기조 강연으로 시작한 학술대회는 제1회 수불학술상 수상자인 김성욱(콜롬비아대학교), 박재현(동명대학교), 김성은(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 정운 스님(동국대학교) 등의 국내 학자들이 연구 발표를 했다.

이어 제 2세션으로 호주의 로버트 셔(호주국립대학교), 인도의 라트네시 쿠마르(인도사회연구원), 대만의 구오싱 스님(캘리포니아 대학)이 각각 영어로 간화선에 대한 연구 발표를 이어나갔으며, 로버트 버스웰(UCLA)이 좌장으로서 논평하고 종합토론을 진행했다. 10시부터 시작한 학술대회는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지만, 청중들은 실시간 영어 통역기를 귀에 걸고서 학술발표를 경청했다. 27일 동국대학교 중강당에서 열린 학술대회 현장 중 일부를 옮긴다.

제 1회 수불학술상 수상자 / 왼쪽부터 박재현, 김성욱, 수불 스님, 정운 스님, 김성운

 

화두란 무엇인가

학술대회는 수불 스님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그 막을 올렸다. 수불 스님은 화두란 무엇인가라는 강연으로 화두를 정의하고, 간화선의 수단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화두 참선을 독려했다.

수불스님

수불 스님은 화두란 진리에 접근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수승한 방법이며 화두는 짧은 시간에 깨닫도록 장치된 수단이라 정의했다. 그렇기에 화두는 짧고, 빠르게, 한 번에 들어서 타파할 수 있어야 하며, 활구가 제대로 들리면 일주일 이내에 화두가 타파된다.”고 전했다.

수불 스님은 사구死句가 아닌 활구活句를 들고 의심을 끌고 가면 상근기는 3, 중근기는 5, 하근기는 7일이면 화두가 타파된다. 화두는 한 번 붙잡아 7일을 넘기지 않도록 하고, 화두를 들고 일주일을 넘겼으면 선지식을 만나 또 다시 화두 의심을 결택 받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참구 방법을 말했다. 또한 일주일 만에 타파할 수 있도록 참 의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천길 우물 속에 빠진 사람이 살아나오기 애쓰는 것처럼 공부하고, 그런 상태에 들 수 있는 원인을 제공받을 수 있는 선지식의 도움을 얻으라고 조언했다.

이어 스님은 사탕처럼 물고 하는 염화두念話頭는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이 참의심인 줄 알며 천년만년 앉아있지만, 사실 한 번 들어서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어야 참의심이다.”라며, 화두는 빨리 깨닫도록 장치된 수단이기에 “‘화두 들고 의심하다 죽어야지, 다음 생에도 수행하는 모습으로 거듭난다.’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일이라고 경책했다.

이어지는 기조강연에서 수불 스님은 화두 의심을 결택했으면, 용맹스러운 기운이 뿜어져 나와야 한다.”어떤 경계도 물리치려는 분기탱천한 용맹심으로 활구 공부를 해도 부족하다. 넋 나간 사람처럼 혹은 이뭣고를 반복하면서 사구를 들고 마냥 앉아만 있다면, 공부가 될 까닭이 있겠는가. 화두를 아무리 오래 들었어도 사구라면 공부하는 학인이라 할 수 없다고 일침 했다.

수불 스님은 화두는 의심을 깨트리기 위해 제시된 방편이다. 방편을 오래 들고 있을 이유가 없다. 화두를 오래 드는 것이 장한 일이 아니라, 올바르게 들어서 쉽고 빠르게 타파하는 것이 장한 일이다.”라고 기조 강연을 통해 참 의심에 들도록 활구 화두를 참구하기를 독려했다.

 

간화선은 쉬운 수행법인가?

일반적으로 간화선은 상근기를 위한 수행법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있다. 또한 많은 간화선 수행자들도 간화선 수행이 쉽지 않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간화선은 누구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쉽게 닦을 수 있는 수행이 아닌 것인가? 간화선은 다양한 근기의 사람들이 접근하기에 적절한 수행인가?

김성욱 교수(콜롬비아대)

콜롬비아대학교 김성욱 교수는 이 문제에 천착했다. 그리고 간화선은 쉬운 수행법인가? - 간화선과 근기의 관계 그리고 간화선 대중화의 문제라는 주제로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많은 수행자들은 간화선을 중근기 또는 하근기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상근기자를 위한 수행으로 여긴다.”, 중국과 한국 간화선사들의 간화선과 근기에 대한 시각을 고찰해 간화선 수행의 대중화라는 이슈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대혜 종고(1089-1163), 고봉 원묘(1238-1295), 보조 지눌(1158-1210), 태고 보우(1301-1382), 서산 휴정(1520-1604), 백파 긍선(1767-1852)과 같은 저명한 선사들이 근기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간화선 수행을 방해하는 자신들의 하열한 근기를 한탄하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지도하였는지를 살폈다.

발표에 따르면 대혜 종고 선사는 간화선이 불교의 가장 효과적인 수행법이라 믿으며 온 마음을 다해 간화선을 닦으면 누구든 10일이면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또한 대혜 종고 선사가 사대부들과 나눈 편지 중에서는 사대부 관리들의 근기가 하열하기 보다는 아주 예리하여 그것이 오히려 간화선을 참구하는데 지적 장애를 야기한다고 진단했다. 덧붙여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상근기를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했으며, 나아가 간화선은 상근기자 보다는 중근기 또는 하근기자를 위한 수행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 밖에도 김 교수는 여섯 선사들의 간화선 수행관을 살폈다. 사례에 따르면 대혜 선사를 제외한 선사들은 간화선이 근기의 차이에 따라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으나, 대혜, 고봉, 태고, 백파는 모든 사람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수행으로서 간화선을 권했다. 지눌과 휴정은 간화선 수행을 상근기의 사람들에게 한정했다.

또 하나의 살필 점은, 선사들의 제자들이 자신이 중근기나 하근기이기 때문에 간화선 수행에 진전이 없다고 한탄하면, 선사들은 제자들의 근기에 따라 다른 방식의 간화선 수행방식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태고와 백파는 하근기의 제자에게 간화선 수행방식을 정토교의 수행이나 다른 신앙적 수행에 적용할 것을 권했다. 대혜와 고봉은 간화선 수행의 어려움을 풀 해결책으로서 의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선사들의 예를 통해 의심 그 자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성공적인 간화선 수행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임을 말했다. 김 교수는 선사들의 가르침에 따라, “현대의 수행자들은 정토교와 결합된 간화선 수행이든 전통적 또는 비전통적 화두 참구이든, 자신의 근기나 개성에 맞는 방식으로 간화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의단이 생기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 되고, 간화선 수행이 더 힘들지 않게 될 것이며 이런 수행은 모든 근기의 사람들이 쉽게 닦을 수 있는 간화선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발표했다.

 

화두는 타파되는가?

박재현 교수(동명대)

화두를 얻다, 화두를 들다, 화두를 깨다. 선불교를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말들입니다. 그 말들이 어떻게 머릿속으로 연관되는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간화선의 깨침 체험 및 수행과 관련해서 가장 핵심적인 용어로 판단되는, 화두를 얻다’, ‘들다’, ‘깨다를 구체적으로 고찰해보려 합니다.”

현재 월간 불광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을 연재하고 있기도 한 동명대학교 박재현 교수는 화두는 타파되는가-간화선 수행 용어의 은유성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박 교수는 화두 수행 용어에 내포된 은유성을 살피며 얻다’, 존재론적 은유 들다’, 지향적 은유 깨다’, 구조적 은유로 나누어 그 용어를 살폈다.

박 교수는 얻다라는 표현에서 화두가 존재론적으로 은유화 되어, 화두는 어떤 으로 존재화 되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박 교수는 “‘들다라는 용어에는 아래에서 위로라는 공간(장소) 은유가 내포되어 있다. 드는 것은 손의 기능이기 때문에 손에 넣다라는 은유성도 있다. 거화 의례를 통해 화두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것이라는 이미지도 형성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화두를 드는 사람은 높은 위치, 화두를 받는 사람은 낮은 위치라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화두를 들다라는 표현은 수행 참여자의 의식 속에서 수직적 공간을 구성하며, 화두를 받들어야할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스마트폰을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똑같이 던져줬을 때 아이들은 금세 사용하지만 어른들은 익숙해지는 데 한참 걸린다. 이유는 아이들은 기계가 고장 날 것을 겁내지 않기 때문이다. 받든다는 것이란 의식적 구성으로, 화두를 아들이 사준 비싼 스마트폰처럼 받들고 모셔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화두 참구에 대한 의견을 전했다.

또한 박 교수는 깨다라는 표현을 분석하며 구조적 은유를 해석했다. 박 교수는 화두를 깬다는 상투어는 화두타파의 우리말 표현이다. 모든 선이해를 걷어내고 화두타파라는 네 글자 한자어만 놓고 보면 화두가 타파’, ‘화두로 타파’, ‘화두를 타파로 독해할 수 있다. 그러나 화두타파는 화두를 타파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며 화두를 깨다라는 말에서 <화두(관문)-타파(통과)-깨침(보상)>이라는 구조적 은유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논문과 관련된 내용은 월간 불광20176월호, 7월호 연재분에서 쉽게 풀어 쓰여 있다.

 

20176월호(512) 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 ‘화두는 타파되는가바로가기

http://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76

 

이뭣고는 무엇인고

동국대학교 명준 스님은 선종언어인 是甚摩이뭣고화두가 서로의 번역어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오류와 오류의 근원, 이로 인한 문제점들을 거론했다. 명준 스님은 선종언어인 是甚摩이뭣고화두의 관계 정립에 대한 고찰이라는 연구를 발표했다.

명준 스님은 “‘是甚摩는 현대 중국어에서도 일반적인 의문사로서 사용되고 있다. 선어록에도 단순한 의문사로 사용되어 등장하나, 한국선에서는 是甚摩이뭣고를 서로의 번역어로 인식해 是甚摩이뭣고혹은 이것이 무엇인가로 번역해 사용하고 있다.”고 오류를 밝혔다. 그러면서 선어록의 是甚摩해석에 대해서는 是甚摩자체로는 화두로서의 역할을 한 적이 없으며, 단순한 의문문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뭣고화두의 연원과 이뭣고화두 드는 법에 대해서는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혹은 一物을 참구하는 종류의 화두를 간단히 줄여서 사용하는 화두이다, 라고 명시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명준 스님은 논문을 통해 “‘이뭣고라는 어구 자체만으로는 화두의 성립이 불가하며, 다만 이뭣고에 해당하는 전제 화두가 선행되어야 화두로서의 이뭣고가 성립된다.”고 했다. 이뭣고화두는 ’ + ‘뭣고이며 에 해당하는 선행 문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명준 스님은 끝으로 이렇게 잘못된 해석을 하는 주요인은 선어록의 원전언어 습득이 선행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현대 중국어의 모체가 되는 당송백화체인 구어체로 이뤄진 어록 형태의 선어록을 제대로 해독하자면 중국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필수일 것이라고 원전언어 습득의 중요성을 전했다.

 

현대 인도에 간화선이 전파될 수 있을까?

이 외에도 김성은 박사는 구름 속에서의 시회(詩會)-간화선이 조선 지식인들의 시 문화에 끼친 영향을 영어로 발표하며, 간화선이 사대부나 문인들이 즐겨 나누던 수창(酬唱)에 미친 영향을 살폈다. 로버트 셔(Robert Shaw) 교수는 선과 정토법문에 대한 허운대사의 사상과 수행법을 고찰했으며, 라뜨네쉬 쿠마르(Ratnesh Kumar) 연구원은 ()의 의미, 그 뿌리와 주요 원리를 발표하며 한국에서는 선, 일본에서는 젠(Zen), 중국에서는 챤(Chan) 이라고 번역되는 말의 기원은 흔히 범어의 명상이라는 뜻이 담긴 단어 ‘Dhyana’와 관련 있다고 한다. 그러나 ‘Dhyana’ 보다는 알다, 이해하다, 진리를 깨닫다는 의미의 빨리어의 ‘Jhana’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하고 선의 근원을 밝혔다. 구오싱 스님(Ven. Guo Xing)굉지정각의 구송(求頌)에 담긴 교육학적 기능에서 굉지의 시를 분석하며 그의 핵심 가르침을 파악하고, 넓은 문화적정치적 업적을 논했다.

학술대회는 로버트 버스웰 교수의 논평 및 종합토론으로 마무리 되었다. 종합토론 중 간화선을 현대 인도에 전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중적이 될 수 있겠는가?”라는 로버트 버스웰의 질문에 라뜨네쉬 쿠마르 연구원은 가능성이 있다. 선불교는 부처님께서 가르쳤던 초기 불교와 비슷하다. 오히려 좀 더 부처님 가르침에 가깝다고 본다. 의례나 경전을 먼저 믿기보다 스스로를 믿는다. 불자, 비불자 모두 섭수 가능하다고 본다.”고 견해를 밝혔다.

버스웰 교수는 박재현 교수에게 “‘화두를 깬다는 것의 과정을 생각할 때, 화두는 이해로 가는 관문으로 여겨진다. 스승의 선 대담을 이해하고 돌파한다는 것은 우리가 화두로서 의심을 돌파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깬다는 것인가? 설명해 달라.”고 질문했다. 박 교수는 흔히 화두를 깨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화두는 깨는 대상이 아니다. 방법이다. 화두를 가지고 의심을 깨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화두와 공안의 차이에 대한 질문에, “공안은 쉽게 말하자면 시험 문제. 문제은행이 공안집이라면 문제가 공안이다. 문제은행에는 수십만 개의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몇 개의 문제뿐이다. 우리에게 문제가 주어지고 그 문제가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 냈을 때 화두라 이름붙일 수 있다. 다만 이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화두를 깬다는 것에는 관문을 깬다는 이미지가 생긴다. 그 이미지에는 저걸 깨면 무엇이 생기지? 무엇을 얻을 수 있지?’ 하는 의식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 해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왼쪽부터 구오싱 스님, 라뜨네쉬 쿠마르, 로버트 셔, 로버트 버스웰, 김성욱, 박재현
라뜨네쉬 쿠마르(Ratnesh Kumar) 연구원
로버트 셔(Robert Shaw) 교수
구오싱 스님(Ven. Guo X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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