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갤러리] 어둠 속의 죽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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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갤러리] 어둠 속의 죽비 소리
  • 김우남
  • 승인 2017.05.3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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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죽비 소리

그것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빛이 100% 차단된 상태. 내 손가락을 바로 눈앞에서 흔들어도 움직임은커녕 그 모양과 형태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눈이 무언가를 보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머리가 아플 수 있습니다. 눈을 감으나 뜨나 마찬가지니까 아예 눈을 감으십시오.” 길 안내를 도와주는 로드마스터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어둠 속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둠 속의 대화’는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후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에서 950만 명 이상이 참여한 국제적인 프로젝트다. 완전한 어둠 속 세상에서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이용하여 100분 동안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한 팀에 8명 정원이며, 두세 명씩 짝을 이루어 하얀 지팡이를 짚은 채 로드마스터의 안내를 받아 이동해야 한다. 서울 전시장은 북촌마을, 가회동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는 겨우 서너 발짝을 떼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바로 앞에 있어야 할 동료가 손끝에 잡히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무슨 소리가 들리나요? 어떤 냄새가 나나요?” 새소리와 물소리,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의 결, 크고 작은 나무와 마른 꽃 냄새. 세상의 온갖 보이는 것들에 집중하느라 놓쳐버린 다른 감각들이 명료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비닐봉지 속 물건을 손으로 만져 알아맞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오징어나 말린 채소일 거라고 추측한 것은 마른 당면이었고, 매우 경쾌한 소리를 내는 동그랗고 딱딱한 물체는 바싹 마른 호두였다. 캔 음료를 마시고도 우리는 포도나 석류, 망고처럼 전혀 다른 맛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리 달지도 시지도 않은 맛이었다. 그러자 어쩌면 우리가 음식을 맛보기 전에 모양이나 색깔 혹은 적힌 글씨를 먼저 보고 우리가 갖고 있는 맛의 기억에 의지해서 어떤 맛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싶었다. 본래의 맛이 아닌 개개인이 형상화시킨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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