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도 트라우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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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도 트라우마가 있었다
  • 이기선
  • 승인 2017.05.2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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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사용설명서> 편집후기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트라우마 사용설명서
 
마크 엡스타인 지음│이성동 옮김 | 불광출판사│344쪽│18,000원
트라우마 사용설명서

인문서 편집자 시절, 집필을 부탁하러 프랑스 현대 철학을 공부한 어느 교수를 만난 자리였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교수는 어느 학술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 세미나에서 불교와 정신분석을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 불교계 학자들이 그건 아니라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는 얘기였다.

얘기 끝에 그는 지나가듯 말했다.

“기회가 된다면 불교를 깊이 공부해보고 싶더군.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것 같아.”

불교와 정신분석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날 이후로 계속 궁금했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분석가이자 명상가인 마크 엡스타인은 『트라우마 사용설명서』에서 붓다의 구도기를 ‘트라우마 수용기’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붓다가 트라우마를 받아들이기까지 마음챙김 명상이 어떤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붓다 같은 성인에게 새겨진 트라우마란 대관절 무엇일까?

저자는‘어머니의 때 이른 죽음’이 붓다의 트라우마라고 말한다. 그 때문에 붓다는 원인 모를 고립감 등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를 감행했다.

출가 후 붓다는 초월 명상이나 고행을 통해 트라우마를 밀어내려고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붓다는 ‘중도’를 발견했을 때, 다시 말해 트라우마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트라우마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밀어내는 대신 받아들이자, 트라우마는 붓다에게 고통 대신 힘을 주었다. 트라우마와 맺는 관계가 바뀌자 본질이 달라진 것이다. 두 번째 화살에 맞지 않는다는 건 ‘상처와 관계를 잘 맺는다는 것’이었다.

이 책과 함께한 두 달 남짓한 시간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지지부 진한 작업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나는, ‘내가 과연 편집자에 적당한 사람인가?’라는 숙명과 같은 질문에 시달렸다. 그런데 그 힘겨운 시간을 통과한 지금,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궁금증도 해결했고,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매듭 가운데 무엇 하나가 풀린 기분도 든다. 책을 만들며 이런 경험을 한다는 것, 이것이 편집자로 사는 즐거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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