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참좋은우리절 주지 회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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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참좋은우리절 주지 회일스님
  • 유윤정
  • 승인 2017.05.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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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공덕功德은 얼마나 됩니까 "

제 공덕功德은 얼마나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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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유명한 달마 스님과 양무제의 일화를 얘기 하려고 합니다. 이 일화에는 선불교禪佛敎의 핵심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달마 스님은 인도의 왕자로 태어나서 출가하여 스님이 된 분이에요. BC 520년경에 달마 스님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법을 전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에서 선불교가 태동하게 되지요. 이때 달마 스님이 중국으로 건너와서 보니 중국 불자들이 기복祈福, 즉 복을 구하는 데 머물러 있더라는 겁니다. 이 시대의 불자들도 마찬가지죠. 대부분이 복을 구하는 데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 이야기를 잘 듣고 되새기길 부탁합니다. 
 
|          극락행 티켓은 따 놓은 당상입니까?
당시 중국 불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처님께 복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을 잘 짓는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양무제였지요. 양무제는 남조 양나라의 초대 황제입니다. 양무제가 인도에서 큰스님이 오셨다니까 친히 문무 대신들을 전부 거느리고 달마 스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곤 큰스님을 앞에다 모셔두고는 기쁜 마음에 자기자랑을 하는 겁니다.
 
“달마 스님, 제가 황제가 되어서 많은 절을 짓고 경전을 출판하고 불교를 이렇게 크게 중흥시켰습니다. 제 공덕功德이 얼마나 됩니까?” 양무제는 아마도 이런 대답을 기대했을 겁니다. “양무제여, 그대의 공덕은 어마어마해서 극락행 티켓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니 많은 분들이 웃으십니다. 하지만 웃을 이야기가 아닙니다. 양무제를 비웃지만 돌이켜보면 여러분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무슨 이야기냐 싶죠. 복 이야기를 해야 불사佛事를 하지, 복 이야기가 빠지면 불사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 보시를 하려면 깨끗이 아무 생각 없이 상相을 내지 말고 보시를 해야 합니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즉 걸림 없이 탁 내고 거기에 그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가르침을 알면서도 사실은 그냥 달달달 떨면서 “아이고, 스님 삼십만 원짜리 등을 달면 복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만 원짜리하고 좀 차이가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공덕이 얼마나 되냐고 양무제가 물으니 달마 스님께서 답을 하기를 “공덕이 없다.”고 합니다. 그냥 공덕이 없다고만 말씀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그것은 인천人天의 복을 받는 유루有漏의 원인이 됩니다. 형상을 따르는 그림자 같아서 실체가 아닙니다. 그러니 일체 공덕이 없습니다.”
 
유루복有漏福은 새는 복입니다. 다함이 있는 복, 한계가 있는 복, 떨어지는 복이란 말입니다. 인천人天은 사람 세상과 하늘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달마 스님이 한 말은 곧, 그대가 복을 무수히 지어 인천의 복을 받아서 사람으로 태어나 부귀영화를 누리고, 혹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 복은 모두 다함이 있고 한계가 있는 ‘유루복’이라는 의미입니다. 설혹 복을 많이 지어서 하늘세계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 복이 다하면 하늘세계에서 떨어지게 돼 있단 말이에요. 결국에는 말짱 도루묵이에요. 유루복은 소멸하는 복이기 때문에 궁극적인 행복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          오른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달마 스님이 왜 공덕이 없다고 했을까요. 그 복은 유루복, 소멸적인 복이기에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실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도통 실체가 없는 겁니다. 모든 현상이란 과거 백 년 전에도 실체가 없고 앞으로 백 년 후에도 실체가 없습니다. 나도 실체가 없는 고로 상대도 실체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 얻을 것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연연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실체가 없는데 뭐 그것에 연연할 것이 있느냐는 얘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 선법문禪法問을 듣고, ‘야! 지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이것이 선불교에 갇히는 길입니다. 양무제는 복을 떼거지로 지어서 유루복이라도 받을 텐데 여러분들은 근기根機도 안되면서 ‘지을 것도 없다’고 태만하게 산다면 이것은 더 큰 문제예요. 달마 스님의 말은 복을 짓되, 중생을 제도하되, 상相이 없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는 거예요.
 
“공덕이 없습니다, 형상을 따르는 그림자 같아서 실체가 아닙니다.” 이렇게 달마 스님이 답을 하니 양무제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묻습니다. “스님, 그럼 어떤 것이 진실한 공덕입니까?” 달마 스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청정한 지혜는 본래 텅 비어 고요함이라, 이 법은 세상 법으로는 구할 수가 없습니다.” 
 
청정한 지혜, 즉 참된 공덕입니다. 이는 본래 텅 비고 고요함이니 세상 법으로는 구하지 못하는 것이라 이야기했어요. 세상법이라고 하는 것은 복을 구하는 법이에요. 복을 구하는 법으로는 청정한 지혜, 본래 텅 비고 고요한 이치를 얻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양무제가 다시 묻습니다. “스님, 그렇다면 어떤 것이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 스님의 답변이 기가 막힙니다. “성스러운 진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성스러운 진리다.”라고 입 밖으로 내버리면 이미 성스러운 것에서 벗어나버린 겁니다. 한 생각이 일어나서 한 생각에 갇혀버리면 이미 성스러움에서 벗어난 거예요. 그런데 성스러운 진리라는 것은 있다고 해도 틀리고, 없다고 해도 틀린 이야기입니다. 
 
불법佛法이란 무엇이냐. 여러분이 만일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천 길 낭떠러지에 삐죽 나와 있는 나뭇가지를 입에 악물고 매달려 있어요. 입을 벌리기만 하면 뚝 떨어져 죽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한 스님이 질문을 하는데 “답을 안 하면 내가 너를 죽일 것이다.”라고 합니다. 대답을 하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것이고 대답을 안 하면 스님한테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 본래 마음자리에 답이 있습니다.
 
|          오직 모를 뿐
양무제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양무제도 근기가 그만큼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니 달마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지요. 콧김을 씩씩대면서 달마 스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달마 스님께서 뭐라고 했을까요. “모르오.”
 
이 모른다는 대답은 다른 분들의 일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육조六祖 혜능 스님을 아실 겁니다. 혜능 스님이 달마 스님 이후로 선불교를 크게 중흥시키죠. 육조 혜능 스님이 오조五祖 홍인 스님한테 법을 이어받았어요. 혜능 스님이 홍인 스님에게 법을 이어받은 것은 굉장한 화제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한 스님이 혜능 스님한테 물어봤어요. “혜능 스님, 어떻게 해서 홍인 스님한테 법을 이어받을 수 있었습니까? 비책이 뭡니까? 어떤 이유로 홍인 스님이 당신을 인정하셨습니까?” 혜능 스님이 뭐라고 하셨을까요. “내가 불법을 몰라서 법을 이어받았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진리를 몰라서, 법을 몰라서 이어받았다. 숭산 스님께도 비슷한 일화가 있지요. 누가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라 물으니 “오직 모를 뿐.”이라 대답했단 말이에요.
 
모든 사람이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이건 진리다.’ ‘이건 진리가 아니다.’라고 전부 시비를 가릴 때, 불교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입 밖에 나오면 진리가 아니다. 성스러운 것에도 갇히지 마라. 극락에도 갇히지 말고 정토에도 갇히지 마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이것이 선불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러한 가르침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정진해서 선禪의 궁극적 경지를 체득하고 일체 유루복을 떠나 무루복無漏福을 얻고 영원한 대자유를 얻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대자유를 얻는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 성불하십시오.                                                            
 
회일스님
전주 참좋은우리절 주지. 1988년 태공월주 스님을 은사로 금산사에서 득도했다. 1993년 공군 군종장교, 1996년 전북불교회관 원감, 대한불교조계종 17교구 본사 금산사 포교국장을 역임했다. 2000년 참좋은우리절을 창건해 전북 불교에 새로운 포교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 사단법인 착한벗들 이사장, 전북 겨례하나 공동대표, 전북 녹색연합 공동대표, 전라북도 문화재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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