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한국불교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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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한국불교를 떠올리다
  • 허정스님
  • 승인 2017.04.2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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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탁발 정신에 담긴 불교적 가치

 꼬위다 스님!
우연히 들른 스님의 절에서 편안하게 자고 먹으며 수행할 수 있게 배려하여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공부하겠다고 찾아오는 외국의 출가자들을 아무런 차별 없이 따듯하게 받아주는 사방승가(四方僧伽)의 전통을 확인하게 되니 무척 감격스럽습니다. 현재 대승불교를 표방하는 한국불교는 절에 객실을 마련해놓지 않아서 스님들이 사찰에 방문해서 하룻밤 머무는 것도 어렵습니다. 정진(精進)은 오전에 4시간 오후에 4시간 좌선(坐禪)과 행선(行禪)을 번갈아가며 하고 오전 정진이 끝나면 스승과 제자들이 질문과 대답이 이루어지는 인터뷰가 인상적입니다. 이곳 선방에서 수백명이 넘는 수행자가 신도님들의 후원으로 정진하고 있고 외국인도 백명이 넘는다고 하니 부처님 당시 영산회상을 보는 듯합니다. 선방에는 하얀 개인용 모기장이 줄 맞추어 놓여있고 그 안에 보일 듯 말 듯 수행자들이 정진하는 모습은 환희심을 자아냅니다.

꼬위다스님!
이 곳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이 탁발공양입니다. 공양을 끝내면 하루가 다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발공양은 하루의 중심입니다. 비구들이 가슴 앞에 바루를 들고 백미터 가까이 줄 지어 서있는 모습은 아름답고 장엄합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탁발의식은 마을까지 가서 음식을 얻어오는 것이지만, 여기는 마을과 멀리 떨어진 산중에 위치하고 있는데다가 상주대중이 많아서, 마을신도회에서 밥과 반찬을 사찰로 가져와서 스님들께 공양 올리고 있습니다. 마을에 다녀오는데만 2시간 이상 걸리는 옛날 스님들의 탁발에 비하면 요즘의 약식탁발은 편안한 탁발입니다. 탁발시간은 산중의 스님들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만남의 시간이자 시간에 맞추어 참석하지 않으면 오후 내내 굶어야 하므로 생존의 시간입니다. 정성스런 탁발공양을 받아서 그런지 이 곳에 오고부터 하루 한 끼만 먹는데도 마치 오래전부터 해오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적응이 됩니다. 이곳에서 탁발공양을 체험하고 보니 한국에서 배웠던 바루공양은  반찬과 밥을 바루에 담아 먹는다는 것 뿐이지 바루공양의 정신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으로 한국불교가 탁발정신을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불교를 변질시켜 놓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기후조건과 경제성장등의 변화로 우리가 맨발로 거리로 나가 탁발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더라도 탁발정신 만큼은 이어 갔어야 하는데 우리는 탁발정신을 포기하였습니다. 탁발정신에는 밥 한 끼를 소중히 여김,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무소유정신, 신도님들과의 지속적인 관계유지, 오후불식, 음식에 대해 탐착하지 않음, 중생에 대한 연민등많은 수행의 가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만을 보시 받는 것이 아니라 임야, 사원, 의복, 약품등 수행자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체를 보시 받는 것이 탁발정신입니다. 임야와 사원등은 항상 승가의 이름 아래 보시 받아서 수행자를 외호하는 공적자산으로 몇천년을 유지되어 왔습니다. 이곳 수행처에서 외국인 수행자들에게도 탁발의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져서 똑같이 탁발하고, 마하야나 수행자에게도 무료로 꾸띠(처소)가 분배되고, 기타 필요한 모든 물품이 무료로 지급되는 것은 승가의 시설물은 누구에게나 공유되어야 하는 전통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몇 년째 살고 있는 한국스님과 재가불자는 머무는 동안 개인적인 생활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수행자들이 사유재산이 없어도 승가의 시설물을 평등하게 공유하고 사용되어 수행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어야 합니다. "부유한 승가, 가난한 스님"이라는 이 간단한 말속에는 승려노후복지, 승가교육, 포교, 대중생활, 계율, 평등, 화합등 우리가 추구하는 승가공동체의 모든 가치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조계종단은 탁발정신을 팽개치고 이제 직접 돈을 벌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수행정신과 물질과 바꾸는 어리석고 불행한 일입니다. 

스님! 어느 승가나 마찬가지로 승가의 타락은 승려가 금은을 받는 문제로 개최된 2차결집에서도 드러나듯이 사유재산을 인정하는데 있습니다. 저는 이곳 테라와다스님이 보시를 받아서 절을 세우거나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절을 세워도 그것은 상가의 재산이지 개인재산이 아니다라는 말을듣고 정신이 번쩍 뜨였습니다. 우리는 사설사암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이 지은 사찰을 개인 재산으로 여기고, 심지어 절을 사고팔기도 합니다. 우리가 진작부터 출가자가 건립한 모든 절은 승가의 공동재산이라고 하는 인식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빈부의 차이가 나는 승가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사찰운영은 대부분 대학입시기도 조상천도기도 같은 기복적인 신앙과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사찰들이 걷어 들이는 문화재관람료, 주차장임대료, 각종임대료등 부동산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스님들이 사찰을 관리하는 자본가의 입장에서 관람료징수, 방범, 청소등 사찰운영에 필요한 재가자를 고용하다 보니 어떤 절은 스님들보다 재가자가 더 많은 사찰도 생겼고, 스님과 스님의 관계가 사업주와 노동자의 관계로 변질되기도 하였습니다. 청빈해야 할 스님이 고급스런 꾸띠(토굴)를 짓고 고급 외제차를 타는 것에 대해서도 당당합니다. “스님이 사치스런 고급차를 타면 됩니까?”라는 물음에 “고급차는 튼튼해서 교통사고를 당해도 다칠 확률이 적고, 스님들이 오래 살아야 중생제도를 오래도록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중생제도 할 실력과 수준을 갖춘 수행자라면 차마 부끄러워서 하지 못할 말입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다 갖추고 어른노릇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무소유와 청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어른들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슬프게도 공부문제와 소유문제는 묻지 않는 것이 한국불교의 전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불교인구가 2015년 불교인구가 10년전보다 300만명이 줄어 760만명이라는 소식을 들립니다. 자업자득입니다. 관람료든 주차료든 모두 받지 말고 스님들은 다시 가난해져야 합니다. 절에 오는데 관람료 주차료를 받는 것은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런 돈을 받아서 포교할 생각하지 말고 아예 처음부터 관람료 주차료를 받지 않는 것이 제일 적극적인 포교입니다. 템플스테이도 돈 받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받으면 사찰은 숙박업소가 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발적인 보시를 받으면 수행처가 됩니다. 사찰은 여기 미얀마처럼 누구나 와서 무료로 수행하고 쉬어가도록 개방해야 합니다.

스님!
그러나 탁발정신을 되살리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위와같은 주장에 귀 귀울이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가진 것을 내려놓기가 그리 쉬울까요? 저는 우리의 승가공동체에 마지막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대중스님들이 깨어나는 일이라고 봅니다. "부유한 승가, 가난한 스님"이라는 승가정신을 강력하게 구현할 정직하고 청빈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지도자는 지금 같이 기득권끼리 거래하고 밀약하는 간선제로는 나올 수 없고 설사 그런 사람이 나와도  추진해 나갈 힘이 없습니다. 대중스님들이 각자의 손으로 지도자를 뽑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이미 스님들 대부분이 원한다(80%)는 것이 드러난 직선제를 실현시키는 일은 한국승가의 마지막 희망이 될 것입니다.  

스님! 소유의 문제는 비단 한국불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티벳불교든 남방불교든 세계의 모든 승가가 이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번 미얀마 여행을 통해서 저는 실제로 자가용을 운전하는 스님과 오토바이를 타는 스님, 대합실에서 담배 피우는 스님, 지갑을 열어 음식을 사먹는 스님을 보았습니다. 스님들이 탁발을 할 때 신도님들이 돈을 보시하고 스님들이 돈을 받는 것도 자주 보았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 되다보면 이제 테라와다 스님들도 개인 통장을 갖게 되고 개인차와 개인 토굴을 갖게 되어 승려들사이에 빈부의 차이가 커지게 될 것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 대승불교권의 타락의 과정을 테라와다는 주의깊게 관찰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꼬위다 스님!
스님이 계신 사찰은 아직까지 스님들이 신도님들이 돈을 보시해도 받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그러한 전통을 이어나가는 스님들의 승가정신을 저희들과 이곳을 방문하는 세계인들이 배워갈 것입니다.  자본에 먹혀버린 한국불교의 전철을 밟지 마시라는 뜻에서 한국불교의 허물을 스님께 드러내 보였습니다.

지난 세월 40년 넘게 미얀마 군부독재로 미얀마 국민들이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정의를 외치는 젊은 스님들이 붙잡혀 들어가서 고문을 당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독재자들이 미얀마를 세계경제로부터 고립시킴으로서 빈민국가로 남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불교가 자본의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거세게 불고 있는 자유화 개방화 바람에 미얀마의 승가도 자본의 유혹에 노출되게 되었습니다. 이곳 승가가 그 자본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나갈지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지켜보겠습니다. 불멸후 26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렇게 부처님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미얀마승가는 경이롭습니다. 이런 승가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도 혼란스런 다른 나라의 승가에 등불이 될 것입니다. 승가공동체는 인류와 세계불자가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오래된 미래입니다.

 

* 출처 : 블로그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http://blog.daum.net/whoami555/1374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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