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아스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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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아스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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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2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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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폴 우드러프 | 역자 이은진 | 정가 15,000원
아이아스 딜레마

저명한 고전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폴 우드러프 교수가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현대 경영학의 난제를 해결할 지혜를 제시하는 책. 폴 우드러프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놓고 벌어진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의 갈등을 소재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적 문제를 탐구한다.

조직을 와해시키지 않으면서 공로를 인정하고 보상을 분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사원들을 희생시켜서 슈퍼스타에게 후한 보상을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참으로 정의로운 것과 형평성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우드러프는 모든 공동체 안에서 정의를 회복하려면 지혜와 동정심, 온화한 성품,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아주 중요하며, 이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어떤 공동체든 보상을 많이 받는 사람과 적게 받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차별이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해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바로 아이아스 딜레마가 제기하는 문제이다. 결국 아이아스 딜레마란 공동체 안에서 보상과 분배의 문제를 말한다. 이 책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결국 보상을 의미한다. 

직장에서는 개인적인 상여금 또는 능률제 승급, 실적에 따른 승진에 해당한다. 또 정계에서 고위직에 선발되는 것 또한 보상이다. 개인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룬 성과를 인정하는 의미로 공동체가 개인에게 주는 모든 것이 보상이다.

이런 보상은 승자와 패자를 구분한다. 보상은 사람들 앞에서 공로를 인정받는 것이다. 보상을 받는 사람은 명예를 얻는다. 그러나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은 분노와 모멸감을 느낀다. 우리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에게 보상이 돌아갈 때 우리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아스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속았다고 느낀다. 정의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규칙과 원칙만으로는 이 딜레마를 풀 수 없다. 이 딜레마를 풀 수 있는 것은 오직 리더십뿐이다.

‘형평성’은 조직과 기업을 망치는 덫이다!
성과주의 사회의 치명적 허점을 해결하는 ‘정의의 리더십’


저명한 고전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폴 우드러프 교수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현대 경영학의 난제를 해결할 지혜를 제시한다!


폴 우드러프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놓고 벌어진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의 갈등을 소재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도덕적 문제를 탐구한다. 조직을 와해시키지 않으면서 공로를 인정하고 보상을 분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사원들을 희생시켜서 슈퍼스타에게 후한 보상을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참으로 정의로운 것과 형평성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우드러프는 모든 공동체 안에서 정의를 회복하려면 지혜와 동정심, 온화한 성품,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아주 중요하며, 이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아이아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전쟁 때의 영웅. 전사한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오디세우스가 독차지하는 것을 보고 미쳐 날뛰다 자결하였다.)

아이아스 딜레마, 성과주의 사회의 치명적 약점

‘어떤 공동체든 보상을 많이 받는 사람과 적게 받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차별이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해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바로 아이아스 딜레마가 제기하는 문제이다. 결국 아이아스 딜레마란 공동체 안에서 보상과 분배의 문제를 말한다.

신간 『아이아스 딜레마』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은 결국 보상을 의미한다. 직장에서는 개인적인 상여금 또는 능률제 승급, 실적에 따른 승진에 해당한다. 또 정계에서 고위직에 선발되는 것 또한 보상이다. 개인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룬 성과를 인정하는 의미로 공동체가 개인에게 주는 모든 것이 보상이다.

이런 보상은 승자와 패자를 구분한다. 보상은 사람들 앞에서 공로를 인정받는 것이다. 보상을 받는 사람은 명예를 얻는다. 그러나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보상을 받지 못한 사람은 분노와 모멸감을 느낀다. 우리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에게 보상이 돌아갈 때 우리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아스라고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속았다고 느낀다. 정의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규칙과 원칙만으로는 이 딜레마를 풀 수 없다. 이 딜레마를 풀 수 있는 것은 오직 리더십뿐이다.

직장 내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아스는 팀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의다. 나아가 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감수하면서 조직을 단결시켜야 한다. 정의란 그런 것이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단순히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다. 분쟁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최소한 팀이 계속해서 함께 일할 수 있을 정도로 분쟁의 씨앗을 멀리 날려 버려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를 파괴하는 갈등을 미리 예방하는 데 필요한 것이 정의다. 공동체 안에서 의사 결정을 하려면 정의가 꼭 필요하다. 의사 결정이 이뤄졌을 때 우리가 그 결정을 받아들이려면 우리 마음속에 정의가 있어야 한다. 마음에 안 드는 결정이 내려졌을수록 우리 마음속에 정의가 있어야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지 않는다.
정의를 일련의 규칙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정의는 공평함과도 다르다. 정의는 성품과 리더십의 문제다. 정의는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정신 안에 있다.

형평성은 조직과 기업을 망치는 함정이다

형평성은 덫이고 함정이다. 일단 형평성을 확립하겠다고 약속하면 형평성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리를 포기했으니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형평성은 사실을 투입하는 기계와 같다. 당신이 사실을 투입하면 기계는 모든 관계자가 예측할 수 있는 결과를 산출한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당신이 결과를 뒤집으려고 하면 사람들은 공평하지 않다고 항의할 것이다.

공평한 절차에 따라 상여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면 당신은 상황을 통제하는 능력을 잃는다. 당신이 내세운 형평성은 객관성이라는 그럴싸한 옷을 입는다. 그러나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은 절차를 선택할 때나 절차를 선택할 사람을 선택할 때 슬그머니 주관적 요소를 투입한다. 당신은 정의를 구현할 왕도에 서 있는 체하지만 이 세상에 그런 길은 없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그들이 내뿜는 열의를 전부 수용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정의와 형평성은 다르다

‘정의’와 ‘형평성’이라는 개념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형평성은 동정심을 갖지 못하게 금하지만 정의는 동정심을 금하지 않는다. 때론 동정심의 이름으로 형평성을 무시해야 할 때가 있다. 동정심과 전혀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양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의를 이해해야 한다. 정의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면 우리의 감정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정의가 성품과 관련이 있다면 감정과도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성품이 거하는 곳이 감정이고, 감정은 우리가 행실을 바르게 하도록 돕기도 하고 비뚤어지도록 충동질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의와 동정심은 똑같이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다.

따라서 정의와 형평성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형평성은 현명한 것이 아니다. 형평성은 사람들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그저 원칙대로, 원칙만을 따른다. 형평성은 정의와 동정심을 말려 죽이는 함정이다. 이 함정에 빠지면 구성원들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종 형평성이 정의의 핵심이라 여기곤 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정의의 핵심은 지혜다.

인간 지혜로서의 정의

정의는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인간의 지혜다. 정의가 존재할 때 그 사회는 분노를 사라지게 하거나 최소한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일할 수 있을 만큼 분노를 누그러뜨림으로써 분쟁을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 이는 분쟁에 연루된 개개인의 영혼 안에 정의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심리적 정의(psychological justice)’이다.
정의라는 이름의 지혜가 존재하는 영혼 안에는 동정심과 존중심도 존재한다. 동정심과 존중심에는 폭발하는 분노, 명예에 대한 사랑, 수치에 대한 두려움을 가라앉히는 힘이 있다. 그렇게 온화한 마음속에서는 욕망과 분노가 생기더라도 사납게 날뛰지 않는다. 온화한 마음속에는 사리사욕을 위해 공동체를 파괴하도록 충동질하는 요소가 없다.

진정한 리더십만이 정의를 바로 세운다

딜레마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딜레마를 해결할 규칙 따위는 없다. 애초에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딜레마를 해결할 규칙이 있었다면, 그리스군에는 리더십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칙이 아니라 머릿속 기억에 의지해 이항 확장을 계산하는 학생처럼 규칙을 이해하고 적용할 우두머리다. 알고리즘에는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정의에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리더십이 없는 공동체에 정의란 있을 수 없다.

리더십은 윤리적인 개념이다. 성품의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리더십과 관리(경영)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한다. 관리는 훌륭한 관리, 형편없는 관리가 있을 수 있고, 윤리적 관리와 비윤리적 관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리더십은 ‘좋다’ 혹은 ‘나쁘다’로 평가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정의와 비슷하다. 우리는 좋은 정의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형편없는 정의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의가 훌륭하지 않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리더가 훌륭하다고 말하는 건 불필요한 일이다. 당연히 리더는 훌륭한 사람이다. 리더로서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들이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리더가 형편없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그 사람은 리더가 되는 데 실패했다고 말하는 게 옳다.

해피엔딩을 꿈꾸며

아이아스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지혜롭고 따라서 정의로웠다면 다음과 같은 행복한 장면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가멤논 왕은 아이아스가 보여 준 충성심과 오디세우스가 보여 준 영리함의 진가를 알아본다. 그리고 본인만 두 사람의 진가를 인정할 뿐 아니라 그리스군 전체와 이를 공유한다. 아이아스도 오디세우스의 가치를 인정한다. 자기가 상을 받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오디세우스가 상을 받은 이유를 충분히 헤아린다. 결과가 발표되자 아이아스는 오디세우스의 막사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해서 오디세우스를 축하해 준다. 아이아스는 친구가 보상을 받게 되어 진정으로 기뻐한다.’

우리 모두 이런 행복한 장면,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론사 서평

[ 연합뉴스 ] 신간 단신 <아이아스 딜레마> 2013-01-03
[ 한국경제 ] [책마을] 성과주의·인센티브는 과연 공정한가? <아이아스 딜레마> 2013-01-03
[ 문화일보 ] <300자 책읽기>조직내 보상·분배 문제 리더들에게 최선책은? <아이아스 딜레마> 2013-01-04
[ 서울경제 ] [책과세상] 보상·분배의 불만, 리더십으로 풀어야 <아이아스 딜레마> 2013-01-04
[ 동아일보 ] [300자 다이제스트]조직에 악영향없게 보상을 분배할 방법은 <아이아스 딜레마> 2013-01-05
[ 부산일보 ] 신간 단신 <아이아스 딜레마> 2013-01-05
[ 경향신문 ] 신간 단신 <아이아스 딜레마> 2013-01-11
[ 머니위크 ] 신간 단신 <아이아스 딜레마> 2013-01-21
[ 독서신문 ] 신간 단신 <아이아스 딜레마> 2013-01-21
[ 주간동아 ] 신간 단신 <아이아스 딜레마> 2013-01-21
[ 머니위크 ] '성과·보상의 덫' 탈출구는 '정의' <아이아스 딜레마> 2013-01-28
[ 불교신문 ] 신간 단신 <아이아스 딜레마> 2013-02-21
[ 경향신문 ] 신간 단신 <아이아스 딜레마> 201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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