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병의 평화모니] 아름다운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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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의 평화모니] 아름다운 부처
  • 윤구병
  • 승인 2017.04.20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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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부처

석가모니는 임금의 아들이었다. 나라는 작았다. 하지만 아비는 임금이었고, 그가 사는 곳은 튼튼한 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성문은 동서남북 네 쪽으로 나 있었다. 일반 백성들을 부려먹고 그이들이 지은 것을 빼앗는 데 길이 든 궁궐에서 자랐다. 이웃나라 임금의 살붙이를 아낙으로 맞아 아들까지 두었다. 석가는 자라고 자식까지 낳는 동안 사는 게 얼마나 고달픈지, 힘센 놈에게 빼앗기고 부림당하는 사람들의 삶이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어떻게 망가지는지 알 턱이 없었다. 한마디로 철없는 자식이었고, 철없는 지아비에 철없는 아비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네 문 밖에 고개를 내미는 순간 삶의 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바로 ‘사문유관四門遊觀’이다. 헐벗고 굶주리는 힘없는 사람들에게 태어나 등 구부러지고 허리 휘게 일하다가 늘그막에 속절없이 앓아눕다 마침내는 숨을 거둔다(生老病死)는 게 무얼 뜻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성 안에서만 사는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려진 참 모습, 유식한 말로 ‘은폐된 진실’이다.) 이것을 본 석가는 내가 누리는 행복은 저들이 겪는 불행과 뗄 수 없고 내 기쁨이 저들의 슬픔으로 빚어진다는 것, 저들의 삶과 죽음이 나와는 동떨어진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석가는 집을 나선다.(出家 또는 家出) 처자식도 버리고 아비 어미 뜻도 저버리고. 먼 곳으로 달아나 한 해 줄곧 흰 눈이 쌓인 봉우리가 보이는 나무 아래 또아리를 틀고 앉아 여섯 해를 버틴다. 그 사이에 남의 피와 땀으로 오른 살과 기름기가 조금씩 조금씩 몸에서 빠져나간다. 마음에 켜켜이 쌓여 있던 앗는 버릇(약탈자 근성)도 부리는 버릇(지배 논리)도 함께 떨어져 나간다. ‘설산수행雪山修行’은 새로운 몸 만들기와 마음 빚기로 이어진다. 굶주림과 헐벗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스스로 겪어 보는 사이 그동안 성벽 안에서 배불리 먹고 따뜻한 비단 옷으로 몸을 감싸고 지냈던 허물을 벗는다.

석가는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온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짐승이 아니다. 그러나 그 석가는 살아오는 동안 몸 놀리고 손발 놀려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는 ‘법’을 한 번도 익혀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갖다 바치는 것으로 살아왔다. 스스로 살 길을 찾지 못하면 누군가에, 무엇인가에 기대 살 수밖에 없다. 왕실에 머무는 동안은 그 기댐은 부림과 앗음으로 드러났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이 하늘이고, 하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음(慈 - 玄玄心)을 깨닫고, 빼앗고 부리는 데 길든 사람들에게 그것은 살 길도 아니고 살릴 길도 아니라고 마음으로 도리질한다(悲 - 非心). 해서, 이 ‘자비심’만으로는 목구멍에 풀칠할 수 없다. 먹고살아야 한다. 사람은 사는 동안 크기는 다를지언정 먹고 마셔 똥을 산만큼 쌓고, 오줌을 그 산 뒤집어 놓을 것 두세 배쯤 누어야 목숨을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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