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도깨비와 선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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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마음을 사르는 칼] 도깨비와 선禪
  • 박재현
  • 승인 2017.04.1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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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와 선禪 

도깨비가 끝났다. 도깨비는 한국형 판타지의 고전적인 소재다. 16부작으로 제작된 도깨비는 고전 판타지의 현대적 진화라는 호평을 받았다. 훤칠한 키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도깨비는, 머리에 뿔 달린 옛날이야기 속의 그 도깨비가 아니었다. 드라마 속의 도깨비는 비루하지 않았다. 도깨비방망이는 끝내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차림새나 행색을 보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고관대작일 뿐만 아니라, 왕의 시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걸출했다.

도깨비 신부는 비루한 운명을 타고났다. 그녀의 어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는 용케도 살아남았다. 그녀는 예뻤다. 예쁘지 않은 신데렐라나 착하지 않은 백설 공주를 상상하기 어렵듯이, 도깨비 신부 역시 착하고 게다가 예쁘기까지 했다. 그녀 역시 어미와 함께 죽을 운명이었지만, 도깨비가 그 운명에 맞서서 구해냈다. 저승사자와 도깨비는 함께 나온다. 저승사자가 정해진 운명을 상징한다면, 도깨비는 운명을 거스르는 지고지순을 상징한다.

 

판타지는 허구의 이야기다. 그러니 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흔히 ‘소설 쓰고 있네’라고 비아냥대는 말을 할 때의 그 의미가 바로 사실이 아닌 픽션, 즉 허구라는 뜻이다. 판타지는 소설로 보이고 또 그렇게 읽힌다. 픽션이든 판타지든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닌 ‘허구로 구성된 이야기’다. 하지만 소설로서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있을 법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이를 ‘개연성蓋然性’이라고 부른다. 판타지는 개연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도깨비나 요정처럼 판타지는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초자연적이다. 

박상륭(朴常隆, 1940~)은 불교를 비롯한 종교적 소재를 소설에 차용한 대표적 작가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대표작 『죽음의 한 연구』를 통해 종교적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그가 2005년에 발표한 『소설법』은 ‘글쓰기’ 혹은 ‘이야기’ 그 자체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소설법』은 지난 세월 동안 작가가 세상에 뱉어내온 소설들이 단순히 실험 정신의 발로이거나 지적 유희의 결과물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소설법』은 소설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판타지에 견주어 말한 작품이다. 작가는 마치 유언처럼, “소설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하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판타지는 소설의 부정적인 면모가 집중적으로 드러난 이야기다. 그것은 현실의 초토화를 조장한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만약 소설이 여흥이나 재미 혹은 쓸 만한 정보의 전달 기능에 그쳐도 좋다면, 판타지는 더할 나위 없는 소설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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