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스님의 <너는 이미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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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의 <너는 이미 기적이다>
  • 허진석
  • 승인 2017.04.1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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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책과 저자]"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다. 행복이 곧 길이다"

베트남의 스님들 중에는 '틱'씨가 많다. 속가(俗家)를 버리고 석가모니, 곧 부처의 문중에 든다는 뜻으로 '석(釋)'을 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석을 베트남 발음으로 읽으면 틱이 된다. 이 사실을 잘 몰랐기에, 나는 틱낫한(91ㆍ釋一行) 스님이 틱광둑(釋廣德ㆍ1897~1963) 스님의 제자라는 몇몇 보도와 온라인 정보를 믿었다.
 
불광출판사에 근무하는 유권준 기획실장(48)이 나의 무지를 깨우쳤다. 나는 그에게 "인터넷에 보니 두 스님이 스승과 제자로 나오던데…"하고 애매하게 물었다. 유 실장은 "나도 처음에 그렇게 알았다. 그러나 베트남 쪽 기록을 보니 틱낫한 스님의 스승이 따로 계신다. 두 스님은 출가한 절도 다르다"고 했다. 출가한 절이 다르면 가족도 사제도 아니기 쉽다. 

틱낫한 스님의 새 책 <너는 이미 기적이다>를 받아 들고 상상의 나래를 펴던 나는 쓴 입맛을 다셨다. 유 실장은 나의 아쉬움을 눈치 챘는지 달래듯이 말했다. "사제지간은 아니어도 비슷한 시기에 베트남의 스님으로서 불교적 저항을 했던 두 분의 삶에는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그렇다. 기자들은 뭔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를 꿰어 기사를 만들려는 습관(악습)이 있다.

털어놓자면, 나는 틱광둑 스님의 '소신공양'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다. 스님은 1963년 6월 11일 응오딘지엠 정권의 인권탄압과 불교 차별정책에 항거해 호치민시(전 사이공시) 도심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당겼다. 끔찍한 불길 속에 미동조차 없이 결가부좌 그대로 열반한 스님을 AP통신 기자 말콤 브라운이 촬영해 세상에 알렸다.

서양인들이 어찌 스님의 열반을 이해했겠는가.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도 스님의 열반을 '자살'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때에 틱낫한 스님이 서신을 보낸다. '소신공양은 불교적 생사관에 따른 것이요, 기독교의 도덕관념과 전혀 다르다. 무도한 정권에 경종을 울리고 전쟁의 참화로 신음하는 베트남 중생의 고통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행동이다.'

어느 곳 어느 시대든 무도한 축생(畜生)이 있으니 슬픈 일이다. 스님들의 소신공양이 이어지자 응오딘지엠 동생의 부인이 '바비큐파티'라고 조롱했다. 악행에는 하늘도 분노하는 법. 1963년 11월 1일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응오딘지엠의 목숨을 거두었다. 반전여론이 들끓고 베트남 민중의 저항이 거세지자 응오딘지엠 정권을 조종하던 미국이 '패'를 바꿨다는 주장이 있다.

저 남방의 황량한 시대를 건너온 틱낫한 스님의 만행(卍行)이 어찌 순탄했겠는가. 스님의 속명은 응엔 쑤언 바오이다. 1926년 후에 시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투 히에우라는 사찰로 출가, 탄 쿠이 찬탓 스님을 은사로 받들었다. 베트남 중부의 바오 쿠옥 수도원에서 불법을 배운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스님으로 참여불교의 성격이 강한 접현종을 창시했다. 

스님은 베트남 전쟁 당시 세계를 누비며 조국의 참상을 알리고 반전 평화운동을 했다. 1967년에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추천으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스님의 활동을 경계한 남ㆍ북 베트남 정부가 모두 그의 귀국을 불허하여 1967년부터 39년에 걸쳐 망명 생활을 했다. 지금은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자두마을'에 머무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누고 있다.

틱낫한 스님이 달라이 라마, 프란치스코 교황과 더불어 현대인의 영적 지도자임을 우리는 잘 안다. 틱낫한 스님의 언어는 저 소신공양의 불길과 시대의 질곡 속에 정화되어 각별한 힘으로 감동과 위로를 선물한다.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지며 내면 깊숙이 파고든 상처를 치유한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이번에 번역 발간된 <너는 이미 기적이다>는 이제 속수(俗壽) 91세에 이른 스님이 그 동안 남긴 책과 글에서 가려 뽑은 말씀을 모은 책이다. 표제를 빌려온 글은 쉰다섯 번째에 나온다. "사람들은 물 위를 걷거나 공중에 뜨는 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기적은 물 위를 걷거나 공중에 뜨는 것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다. 날마다 우리는 온갖 기적들 속에 파묻혀 살면서 그것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파란 하늘, 흰 구름, 초록색 나뭇잎,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 그리고 그것들을 보는 우리의 두 눈, 이 모두가 진짜 기적이다."
 
몇 줄 더 읽자.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다. 행복이 곧 길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없다. 깨달음이 곧 길이다." "침묵은 말을 하지 않거나,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네 속에 어지러운 말이 없는 것이다." "당신의 그 슬픔을 향해 웃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슬픔보다 더 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강물 위에 떨어진 조약돌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러고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강바닥에 가서 닿는다." "우리가 붓다에게 꽃 한 송이를 드리면, 그분은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크게 고마워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의 원래 제목은 '너의 참 본향(Your True Home)'이다. 편집을 맡은 멜빈 맥러드는 '여는 글'에 이렇게 썼다. "이 책에 실린 간결하고 함축적인 가르침은 …(중략)… 통찰과 지침이다. 실재의 본성에 대한 분명하고 직접적인 통찰을 주는 가르침들은, 현상과 마음과 신경증과 고통과 깨달음의 참된 본성을 드러낸다. 그 가르침들은 상호내재, 비어 있음, 목적 없음, 깨달음, 열반을 포함하는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한 마디로 불교의 지혜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 과연 그러하다!  

틱낫한 스님은 한국에 세 번 왔다. 1995년, 2003년, 2013년. 마지막으로 왔을 때 기자들을 만나 나눈 말씀들은 대개 '벙벙'했다. 이해와 연민 그리고 치유. 부부 갈등, 청년실업, 심지어 남북한 갈등도 근본적인 처방은 같았다. "행복은 돈과 명성, 권력이 아니라 이해와 연민, 형제애에서 온다." 글쎄…. 자살에 대해 묻자 스님은 다시 입을 열었다. "자살하는 이유는 자신의 강렬한 감정을 다루지 못해서다. 우리는 감정보다 훨씬 더 큰 존재다. 왜 감정 때문에 우리 자신을 죽여야 하는가." -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 큰 지혜는 마치 어리석은 듯하나니! 

huhball@ 아시아경제 허진석 기자

<틱낫한 지음/이현주 옮김/불광출판사/1만6000원>

* 출처 : 아시아경제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2230611457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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