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이름으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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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이름으로 무슨 일이...
  • 김천
  • 승인 2017.04.1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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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중심도시 라싸에는 데붕(Drepung)이라는 거대한 수도원이 있다. 데붕의 뜻은 아마도 ‘낟가리’ 정도 될 터인데 봉우리의 모양이 거대한 짚단을 쌓아 둔 것과 같아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이 수도원엔 한 때 수 만 명의 승려들이 불교학을 배우고 명상하던 티베트 불교의 중심이었다. 그런 과거의 영화를 반증하듯 수많은 법당과 아름다운 불상들이 있다. 그런데 그 불상들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근래에 들어서 다시 만들어졌다.

불교사원이 관광자원이 되면서, 특히 청장철도가 뚫리면서 중국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한때 폐쇄되고 부서졌던 사원들은 다시 복원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고 보는 관광의 대상일 뿐 그곳에서 지난날의 격한 논쟁과 수행의 자취들은 찾아볼 수 없다.

한동안 개방정책의 덕택으로 중국 공산당의 티베트 불교에 대한 관용은 2000년대 승려들의 대규모 시위로 다시 한 번 싸늘히 식어버렸다. 절은 남겨두되 정신의 싹은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데붕 사원에는 1958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라싸침공과 1960년대 문화대혁명의 흔적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망령으로 남아있다. 이 불벽 또한 그 흔적이다.

봉건의 탈이란 오욕을 뒤집어쓰고 이 불벽은 검은 먹칠로 가려져야했다. 그리고 ‘인민해방 만세’라는 붉은 글씨를 덧칠했다. 승려들이 쫓겨난 한참 뒤에도 만세의 글귀는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인민을 수탈하는 무지로 비난 받으며 스승들은 끌려나 광장에 무릎 꿇었다. 경전은 불살라졌다.

문화대혁명이란 광기는 인민의 무엇을 해방하였을까. 같은 불벽을 바라보는 믿음과 시대와 해석과 권력의 동상이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붓다의 가르침은 정신의 혁명과 상통한다고 이야기한다. 인민의 혁명과 정신의 혁명은 무엇이 같고 다를까 궁금하다.

세월이 흘러 공산당은 다시 이 불벽을 벗겨내라고 명령했다. 검게 칠한 뒤로 화려한 장엄의 흔적은 남아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칠은 벗겨낼 수 없었다. 인민의 문화유산을 복원하라는 당의 명령은 그렇게 완전히 살아나지는 못했다. 검은 칠을 벗겨내고 벗겨냈지만 불벽의 본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부처의 상이 있는 곳만 겨우 벗겨 본디 있던 대로 금색 몸체를 드러낼 뿐이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검은 덧칠. 벗기고 벗겨도 심성의 본래 모습을 찾아 마주 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혁명을 이어가도, 마음을 하루에 열 두 번씩 뒤집어엎어도 빛 속에 드러낼 청정한 마음이란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권력과 돈과 혁명의 끝엔 결국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고 그림자처럼 물거품처럼 풀잎 위의 이슬처럼 사라져갈 시간의 허상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붓다는 말한다. “무릇 형상으로 진리를 보려는 자는 허망할 뿐이리라. (금강반야바라밀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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