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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남긴 마지막 선물암 선고 후 달라이라마 친견하고 다람살람의 미디어 장비 일체 기증

얼마 전 인도 보드가야에서 달라이라마가 집전한 칼라차크라(Kālacakra) 법회가 열렸다. 현생의 달라이라마가 1954년 티베트 라싸, 여름궁전인 노부링카에서 첫 번째 칼라차크라 법회를 연 후 34번째로 열린 의식이었다. 법회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기도 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멀리 인도까지 찾아가서 보드가야의 먼지 길을 헤매지 않고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과 육신과 마음이 정화되기를 바라는 의식에 동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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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일의 이면에는 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겠지만, 한 사람 스티브 잡스의 공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그렇다. 바로 그 스티브 잡스. “다르게 생각하라. Think Diffent.”를 외쳤던 컴퓨터 구루, 스티브 잡스가 전 세계에 칼라차크라 법회가 중계되는 데 벽돌 한 장을 더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지 다람살라는 여러 면에서 어려움으로 뒤덮인 곳이다. 늘 돌봐야 할 난민들과 가르쳐야 할 학생으로 넘쳐난다. 승려들을 위한 강원을 유지해야 하고 먼 훗날 독립을 기약하기 위해 티베트가 잊혀 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 한다. 망명정부의 살림은 겉보기에도 팍팍하다.

달라이 라마가 주석하는 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간이 국경선을 넘어야 한다. 인도 관리들에게 여권을 맡겨 기록하고, 검색대를 지나면 다시 망명정부의 관리가 여권을 맡아두고 출입증을 건네준다. 국경 역할을 하는 작은 사무실 쪽문을 지나면 달라이 라마가 머무는 공간이 있다. 상징적으로나마 티베트의 영역이다.

세칭 달라이 라마 오피스라 불리는 집무실과 관련 사무실, 접견실이 줄지어 있고 위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면 언덕 위에 달라이 라마가 머무는 숙소가 보인다. 오피스에는 비서실과 행정관련 일을 하는 사무공간들이 있다. 1층 비서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각종 기기들이 가득 찬 작업실이 있다. 그곳이 법회를 녹화하여 중계하고 각국 언어로 통역하며 오디오 중계 업무를 하는 미디어 사무실이다.

미디어 사무실에는 두 명이 근무하는 데 한 명은 달라이 라마의 전속 사진사인 텐진 최죄르, 우리가 인터넷이나 각종 미디어를 통해 보는 대부분의 사진은 그의 작품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은 미국 출신의 미스터 돈. 컴퓨터 엔지니어링이 전공인 그는 불교학연구소에서 십 년 넘게 티베트 불교학을 배운 실력 있는 불교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대부분의 영상 녹화와 송출 작업을 한다. 그 두 사람 덕에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달라이 라마의 생생한 모습과 법문을 접할 수 있다.

이 작업실은 대단히 열악하다. 몇 해 전 어떤 인연으로 그 작업실에 두 달 남짓 출퇴근 하며 작업할 일이 있었는데, 장비의 열기 때문에 늘 켜두는 에어컨으로 한 여름에도 감기와 비염을 달고 살았다. 컴퓨터와 녹화장비는 돌아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구형이었고 백업장비는 중구난방으로 통일성이 없었다. 그나마 미스터 돈의 실력과 열정으로 근근이 버텨가는 형국이었다.

돈이 들어올 곳은 적고 나갈 곳은 많은 오피스의 살림살이 덕분에 미디어 관련 일은 늘 뒷전으로 밀렸다. 당장 장비가 필요하고, 수리를 해야 할 것들이 쌓여 있었지만 형편은 나아질 길이 없었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미스터 돈은 정말 필요한 장비들의 목록을 적어 주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마음을 내서 기증해줄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여기저기 알아 봤지만 덕이 부족한 탓에 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지금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달라이 라마 오피스의 영상들이 고품질로 바뀌었다.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근근이 임대해 쓰던 인터넷 중계라인도 좋아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했지만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저간의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암을 선고받고 일체의 화학적 치료를 거부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인도 다람살라를 방문하여 달라이 라마를 만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 계획을 실행했다.

미디어 사무실 관계자들을 통해 들은 소식은 접견이 이루어지던 중 달라이 라마의 비서 한 명이 급히 찾아왔다고 했다. 불쑥 미디어 사무실에서 필요한 장비 리스트를 적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미스터 돈은 이미 오래 전 부터 부족한 장비의 보충 리스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곧 바로 비서에게 전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달라이 라마 면담이 끝난 후 얼마가 지나 그 리스트의 장비들은 미디어 사무실로 전달됐다. 그의 마지막 선물인 셈이다. 전 세계에 깨끗한 화질로 달라이 라마의 법문 영상이 전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런 공덕이 숨어 있다.

칼라차크라 탄트라는 무한한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 우리의 유한한 삶의 기원을 던지는 의식이다. 칼라차크라의 의미가 시간의 수레바퀴이니, 이 생의 삶을 마치고 시간의 수레바퀴에 이루고 싶은 바람을 싣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필멸은 생명의 숙명이며 시간 앞에서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이다. 모든 종교와 철학은 이 죽음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곧 닥쳐오리라는 사실을 잊기에 오늘을 탐닉한다. 내일 죽음이 닥친다 해도 놀랍지 않지만, 내일 죽음이 닥친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오래 전에 먹었던 짜장면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셔야 할까?

인간은 그렇지가 않아서 자신의 불완전한 삶을 완성하려거나 죽음 너머에 있는 미지의 시간을 향해 한 발 더 내딛을 수 있다. 아니라면 절망 하거나 저항 하며 운명을 저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선물로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이 세상에 전해지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지금이 삶이 마지막이라 단언하지 말 것을.

내가 살아 온 삶이란 내가 지나쳐 온 시간이다. 죽음으로 단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거대한 시간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우주는 그야말로 시간 자체이기 때문이다.

굿바이 앤 댕큐 스티브.

 

* 이 글은 2017년 2월 쓰여졌습니다. 원문의 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prowriter.kr/wp/?p=2689

김천  작가, 다큐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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