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함 - 중집경(衆集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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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함 - 중집경(衆集經)
  • 실론섬
  • 승인 2017.03.2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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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중집경(衆集經)

(경의 이역본으로는 송 시대 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대집법문경(佛說大集法門經)』이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말라(末羅)를 유행하시면서 1,250명의 비구들과 함께 파바성(波婆城)에 있는 사두(?頭)의 암파(菴婆) 동산에 다다르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보름날 달이 가득 찬 밤에 맨땅에 앉아 계셨고 모든 비구들도 앞뒤를 둘러싸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밤에 많은 설법을 마치시고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사방에서 많은 비구들이 모여와서 다 함께 정근하며 잠을 자지 않고 있구나. 나는 등병을 앓아 잠깐 쉬고 싶다. 네가 이제 모든 비구들을 위해 설법하라.”

그는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땅히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곧 승가리(僧伽梨)를 네 겹으로 접어 오른쪽 옆구리에 깔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그때 사리불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했다.

“지금 이 파바성에는 니건자(尼乾子)가 있다. 그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뒤에 제자들은 두 파로 갈라져 늘 서로의 잘잘못을 캐고 서로 꾸짖으며 시비하고 있다.

'나는 이 법을 알지만 당신은 모른다. 당신은 사견(邪見)을 가졌지만 나는 바른 법을 가졌다.'

이렇게 말이 서로 얽혀 앞뒤가 없다. 모두 자기 말을 참되고 바르다고 여기고 있다.

'내가 이길 것이고, 당신 논리는 질 것이다. 나는 이제 담론(談論)의 주인이 될 것이니, 당신들은 물을 것이 있으면 내게 와서 물으라.'

  

모든 비구들이여, 지금 이 나라 백성으로서 니건자를 받드는 자는 다 저 무리들의 다투는 소리를 싫어하고 괴로워하나니, 그것은 그 법이 참되거나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이 참되거나 바르지 못하면 번뇌를 벗어날 길이 없다. 비유하면 썩은 탑은 다시 흙을 바를 수 없는 것과 같아서 이것은 삼야삼불(三耶三佛)4)의 말씀이 아니다. 모든 비구들이여, 다만 우리 석가(釋迦) 무상존(無上尊)의 법만이 가장 참되고 바르기 때문에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새 탑은 장엄하게 꾸미기가 쉬운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삼야삼불의 말씀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우리들은 이제 마땅히 법과 율(律)을 모아 저 다툼을 막고 범행(梵行)을 오래 세우고 이익됨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삼야삼불이란 samyaksa?buddha의 음역. 부처님 10호(號)의 하나로 삼먁삼불타(三?三佛陀)ㆍ삼야삼불단(三耶三佛檀)이라고도 한다. 정변지(正遍知)ㆍ등정각(等正覺)ㆍ정등각(正等覺)은 이에 대한 번역이다. 외도(外道)ㆍ아라한(阿羅漢)ㆍ보살(菩薩)의 깨달음을 각각 사각(邪覺)ㆍ정각(正覺)ㆍ등각(等覺)이라 하는데 대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정등각(正等覺)이라 한다.)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바른 법을 설하셨다.

'일체 중생은 다 음식을 우러르며러 살아간다.'

여래의 설법 중에 또 한 가지 법이 있다.

'일체 중생은 다 행(行)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住]5).'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한 가지 법이다. 우리는 지금 함께 이 법과 율을 모아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두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다. 

첫째는 명(名)이요, 둘째는 색(色)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치(癡)요, 둘째는 애(愛)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유견(有見)이고, 둘째는 무견(無見)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무참(無?)이요, 둘째는 무괴(無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유참(有?)이요, 둘째는 유괴(有愧)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진지(盡智)요, 둘째는 무생지(無生智)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욕애(欲愛)를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정묘색(淨妙色)이요, 둘째는 부사유(不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진에(瞋?)를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원증(怨憎)이요, 둘째는 부사유(不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사견(邪見)을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종타문(從他聞)이요, 둘째는 사사유(邪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어 정견(正見)을 내는 것으로서 첫째는 종타문(從他聞)이요, 둘째는 정사유(正思惟)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는 것으로서 첫째는 학해탈(學解脫)이요, 둘째는 무학해탈(無學解脫)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으니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이 있는 것으로서 첫째는 유위계(有爲界)요, 둘째는 무위계(無爲界)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마땅히 함께 이것을 모아 그것으로써 싸움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바가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세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3불선근(不善根)으로서 첫째는 탐욕(貪欲)이요, 둘째는 진에(瞋?)이며, 셋째는 우치(愚癡)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근으로서 첫째는 불탐(不貪)이요, 둘째는 불에(不?)이며, 셋째는 불치(不癡)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행(不善行)으로서 첫째는 불선신행(不善身行)이요, 둘째는 불선구행(不善口行)이며, 셋째는 불선의행(不善意行)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행으로서 첫째는 신(身)불선행이요, 둘째는 구(口)불선행이며, 셋째는 의(意)불선행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악행(惡行)으로서 첫째는 신(身)악행이요, 둘째는 구(口)악행이며, 셋째는 의(意)악행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행으로서 신선행과 구선행과 의선행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상(不善想)으로서 욕상(欲想)ㆍ진상(瞋想)ㆍ해상(害想)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상(善想)으로서 무욕상(無欲想)ㆍ무진상(無瞋想)ㆍ무해상(無害想)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불선사(不善思)로서 욕사(欲思)ㆍ에사(?思)ㆍ해사(害思)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선사(善思)로서 무욕사(無欲思)ㆍ무에사(無?思)ㆍ무해사(無害思)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복업(福業)으로서 시업(施業)ㆍ평등업(平等業)ㆍ사유업(思惟業)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수(受)로서 낙수(樂受)ㆍ고수(苦受)ㆍ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애(愛)로서 욕애(欲愛)ㆍ유애(有愛)ㆍ무유애(無有愛)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유루(有漏)로서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무명루(無明漏)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화(火)로서 욕화(欲火)ㆍ에화(?火)ㆍ우치화(愚癡火)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구(求)로서 욕구(欲求)ㆍ유구(有求)ㆍ범행구(梵行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증성(增盛)으로서 아증성(我增盛)ㆍ세증성(世增盛)ㆍ법증성(法增盛)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界)로서 욕계(欲界)ㆍ에계(?界)ㆍ해계(害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界)로서 출리계(出離界)ㆍ무에계(無?界)ㆍ무해계(無害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界)로서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ㆍ진계(盡界)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취(聚)로서 계취(界聚)ㆍ정취(定聚)ㆍ혜취(慧聚)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계(戒)로서 증성계(增盛戒)ㆍ증성의(增盛意)ㆍ증성혜(增盛慧)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삼매(三昧)로서 공삼매(空三昧)ㆍ무원삼매(無願三昧)ㆍ무상삼매(無相三昧)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상(相)으로서 지식상(止息相)ㆍ정근상(精勤相)ㆍ사상(捨相)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명(明)으로서 자식숙명지명(自識宿命智明)ㆍ천안지명(天眼智明)ㆍ누진지명(漏盡智明)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변화(變化)로서 첫째는 신족변화(神足變化)요, 둘째는 지타심수의설법(知他心隨意說法)이며, 셋째는 교계(敎誡)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욕생본(欲生本)으로서 첫째는 현욕(現欲)으로 말미암아 인간이나 천상에 나는 것이며, 둘째는 화욕(化欲)으로 말미암아 화자재천(化自在天)에 나는 것이며, 셋째는 타화욕(他化欲)으로 말미암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나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낙생(樂生)으로서 첫째는 중생이 저절로 성취하여[自然成辦] 환락심(歡樂心)을 내는 것이 마치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처음 태어났을 때와 같은 것이요, 둘째는 중생이 생각[念]을 낙(樂)으로 삼아 스스로 착하다고 외치는 것이 광음천(光音天)과 같은 것이며, 셋째는 지식락(止息樂)을 얻은 것이 변정천(遍淨天)과 같은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고(苦)로서 행고(行苦)ㆍ고고(苦苦)ㆍ변역고(變易苦)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근(根)으로서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ㆍ지근(知根)ㆍ지이근(知已根)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당(堂)으로서 현성당(賢聖堂)ㆍ천당(天堂)ㆍ범당(梵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발(發)로서 견발(見發)ㆍ문발(聞發)ㆍ의발(疑發)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론(論)으로서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고 이런 논(論)이 있었으며, 미래에 이런 일이 있을 것이요 이런 논이 있을 것이며, 현재에 이런 일이 있고 이런 논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취(聚)로서 정정취(正定聚)ㆍ사정취(邪定聚)ㆍ부정취(不定聚)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우(憂)로서 신우(身憂)ㆍ구우(口憂)ㆍ의우(意憂)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장로(長老)로서 연기장로(年耆長老)ㆍ법장로(法長老)ㆍ작장로(作長老)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3안(眼)으로서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을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正法]이라고 한다.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싸움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바가 많게 하고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네 가지 바른 법을 설명하셨으니 이른바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악업(惡業)으로서 첫째는 거짓말[妄語]이요, 둘째는 이간하는 말[兩舌]이며, 셋째는 욕설[惡口]이요, 넷째는 꾸밈말[綺語]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선행(善行)으로서 첫째는 진실한 말[實語]이요, 둘째는 부드러운 말[軟語]이며 셋째는 꾸밈이 없는 말[不綺語]이요, 넷째는 이간하지 않는 말[不兩舌]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럽지 않은 말로서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不見言見]이요, 듣지 않은 것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不聞言聞]이며, 깨닫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不覺言覺]이요, 모르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不知言知]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성어(聖語)로서 본 것은 보았다고 말하는 것[見則言見]이요, 들은 것은 들었다고 말하는 것[聞則言聞]이며, 깨달은 것은 깨달았다 말하는 것[覺則言覺]이요,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는 것[知則言知]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종류의 음식으로서 단(?食)ㆍ촉식(觸食)ㆍ염식(念食)ㆍ식식(識食)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受)로서 현재에 고행을 지어 뒤에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요, 현재에 고행을 지어 뒤에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며, 현재에 즐거운 행을 지어 뒤에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요, 현재에 즐거운 행을 지어 뒤에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受)로서 욕수(欲受)ㆍ아수(我受)ㆍ계수(戒受)ㆍ견수(見受)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박(縛)으로서 탐욕신박(貪欲身縛)ㆍ진에신박(瞋?身縛)ㆍ계도신박(戒盜身縛)ㆍ아견신박(我見身縛)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자(刺)로서 욕자(欲刺)ㆍ에자(?刺)ㆍ견자(見刺)ㆍ만자(慢刺)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생(生)으로서 난생(卵生)ㆍ태생(胎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념처(念處)이다. 여기서 비구는 내신신관(內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요, 외신신관(外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해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며, 내외신신관(內外身身觀)을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서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버리는 것이다. 수관(受觀)ㆍ의관(意觀)ㆍ법관(法觀)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의단(意斷)으로 여기서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법(惡法)은 방편으로써 일어나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난 악법은 방편으로써 멸하게 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善法)은 방편으로써 일어나게 하고, 이미 일어난 선법은 방편으로써 깊이 생각하여 그것을 더하고 넓히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신족(神足)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사유욕정멸행(思惟欲定滅行)을 성취한다. 정진정(精進定)ㆍ의정(意定)ㆍ사유정(思惟定)도 또한 그러하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선(禪)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악(惡)과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고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가는 것이요, 각(覺)과 관(觀)이 그쳐 안으로[內信] 한마음[一心]이 되어 각(覺)도 없고 관(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선에 들어가는 것이며, 기쁨을 떠나 평정을 닦아 생각이 나아가 스스로 몸의 즐거움[身樂]을 알고 모든 성인이 구하는 기억[憶念]ㆍ평정[捨]ㆍ즐거움[樂]이 있는 제3선에 들어가는 것이요, 괴로움도 멸하고 즐거움의 행도 여의는데, 걱정과 기쁨은 이미 다 멸했으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범당(梵堂)으로서 첫째는 자애로움[慈]이요, 둘째는 불쌍히 여김[悲]이며, 셋째는 기뻐함[喜]이요, 넷째는 평정[捨]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무색정(無色定)으로서 여기서 비구는 일체의 색(色)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고, 먼저 성냄의 생각[瞋?想]을 없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무량한 공처(空處)를 생각하는 것이요, 공처를 버리고 식처(識處)에 들어가는 것이며, 식처를 버리고 이미 불용처(不用處)에 들어가는 것이요, 불용처를 버리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들어가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법족(法足)으로서 탐하지 않는 법족[不貪法足]이요, 성내지 않는 법족이며, 바른 생각의 법족[正念法足]이요, 바른 선정의 법족[正定法足]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현성족(賢聖族)으로서 여기서 비구들은 의복에 만족할 줄 알아 좋은 것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나쁜 것을 만나도 걱정하지 않으며,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 금기(禁忌)할 바를 알고 번뇌를 벗어나는 길을 알아 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그 일을 성취하여 빠짐도 없고 줄어듦도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을 성취할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을 첫 번째 만족할 줄 아는 데에 머무는 현성족[第一知足住賢聖族]이라고 한다. 본래부터 지금까지 아직 항상 고뇌하여 산란하지 않고, 모든 하늘과 악마ㆍ제석ㆍ사문 바라문과 하늘 및 세간 사람들을 헐거나 꾸짖지 않으며, 음식ㆍ평상ㆍ와구(臥具)ㆍ병들고 허약할 때의 의약 등 모두 다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또한 이와 같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섭법(攝法)으로서 혜시(惠施)ㆍ애어(愛語)ㆍ이인(利人)ㆍ등리(等利)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다원지(須陀洹支)로서 비구들이 부처님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법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스님에 대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 계율에 있어서 무너짐이 없는 믿음을 얻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수증(受證)으로서 견색수증(見色受證)ㆍ신수멸증(身受滅證)ㆍ염숙명증(念宿命證)ㆍ지루진증(知漏盡證)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도(道)로서 고지득(苦遲得)ㆍ고속득(苦速得)ㆍ낙지득(樂遲得)ㆍ낙속득(樂速得)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성제(聖諦)로서 고성제(苦聖諦)ㆍ고집성제(苦集聖諦)ㆍ고멸성제(苦滅聖諦)ㆍ고출요성제(苦出要聖諦)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사문과(沙門果)로서 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斯陀含果)ㆍ아나함과(阿那含果)ㆍ아라한과(阿羅漢果)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처(處)로서 실처(實處)ㆍ시처(施處)ㆍ지처(智處)ㆍ지식처(止息處)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지(智)로서법지(法智)ㆍ미지지(未知智)ㆍ등지(等智)ㆍ지타인심지(知他人心智)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변재(辯才)로서 법변(法辯)ㆍ의변(義辯)ㆍ사변(詞辯)ㆍ응변(應辯)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식주처(識住處)로서 색식주(色識住)는 색을 연(緣)으로 하여 색(色)에 머물며 애(愛)와 더불어 더하고 자라난다[增長]. 수(受)ㆍ상(想)ㆍ행(行)도 또한 그와 같이 머문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액(扼)으로서 욕액(欲扼)ㆍ유액(有扼)ㆍ견액(見扼)ㆍ무명액(無明扼)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무액(無扼)으로서 무욕액(無欲扼)ㆍ무유액(無有扼)ㆍ무견액(無見扼)ㆍ무무명액(無無明扼)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정(淨)으로서 계정(戒淨)ㆍ심정(心淨)ㆍ견정(見淨)ㆍ도의정(度疑淨)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지(知)로서 받아야 할 것을 받을 줄 알고, 행해야 할 것을 행할 줄 알며, 즐겨야 할 것을 즐길 줄 알고,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위의(威儀)로서 가야 할 때에 갈 줄 알고, 머물러야 할 때에 머물 줄 알며, 앉아야 할 때에 앉을 줄 알고, 누워야 할 때에 누울 줄 아는 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사유(思惟)로서 소사유(少思惟)ㆍ광사유(廣思惟)ㆍ무소유사유(無所有思惟)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4기론(記論)으로서 결정기론(決定記論)ㆍ분별기론(分別記論)ㆍ힐문기론(詰問記論)ㆍ지주기론(止住記論)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의 4불호법(不護法)으로서 여래는 신행(身行)이 청정하고 모자라거나[闕] 샘[漏]이 없어 저절로 방호(防護)된다. 구행(口行)의 청정ㆍ의행(意行)의 청정ㆍ명행(命行)의 청정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다.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이익되는 일이 많게 하여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다섯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5입(入)으로서 눈의 빛깔[眼色]ㆍ귀의 소리[耳聲]ㆍ코의 냄새[鼻香]ㆍ혀의 맛[舌味]ㆍ몸의 닿임[身觸]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수음(受陰)으로서 색수음(色受陰)ㆍ수수음(受受陰)ㆍ상수음(想受陰)ㆍ행수음(行受陰)ㆍ식수음(識受陰)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개(盖)로서 탐욕개(貪欲盖)ㆍ진에개(瞋?盖)ㆍ수면개(睡眠盖)ㆍ도희개(掉戱盖)ㆍ의개(疑盖)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하결(下結)로서 신견결(身見結)ㆍ계도결(戒盜結)ㆍ의결(疑結)ㆍ탐욕결(貪欲結)ㆍ진에결(瞋?結)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상결(上結)로서 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ㆍ무명(無明)ㆍ만(慢)ㆍ도(掉)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근(根)으로서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定根)ㆍ혜근(慧根)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력(力)으로서 신력(信力)ㆍ정진력(精進力)ㆍ염력(念力)ㆍ정력(定力)ㆍ혜력(慧力)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멸진지(滅盡枝)로서 첫째 비구는 불여래(佛如來)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의 10호(號)를 구족한 이를 믿는 것이요, 둘째 비구는 병이 없어 몸이 항상 안온한 것이며, 셋째는 순박하고 곧아 아첨이 없는 것이니 능히 이러한 자에게 여래께서는 곧 열반으로 가는 길을 보이신다. 넷째는 스스로 그 마음을 오로지 하여 착란(錯亂)하지 않게 하여 전에 외운 것을 기억해 잊지 않는 것이요, 다섯째는 법이 생겨나고 멸하는 것을 잘 관찰하여 현성(賢聖)의 행으로써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는 것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발(發)로서 비시발(非時發)ㆍ허발(虛發)ㆍ비의발(非義發)ㆍ허언발(虛言發)ㆍ무자발(無慈發)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선발(善發)로서 시발(時發)ㆍ실발(實發)ㆍ의발(義發)ㆍ화언발(和言發)ㆍ자심발(慈心發)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5증질(憎嫉)로서 주처증질(住處憎嫉)ㆍ단월증질(檀越憎嫉)ㆍ이양증질(利養憎嫉)ㆍ색증질(色憎嫉)ㆍ법증질(法憎嫉)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취해탈(趣解脫)로서 첫째는 몸의 부정상(不淨想)이요, 둘째는 음식의 부정상이며, 셋째는 일체행의 무상상(無常想)이요, 넷째는 일체 세간의 불가락상(不可樂想)이며, 다섯째는 죽음의 상[死想]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출요계(出要界)로서 첫째는 비구는 욕심에 대해서 즐거워하지도 않고 동요되지도 않으며 또 친근하지도 않는다. 다만 출요(出要)를 생각하여 멀리 여의기를 즐기고 친근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다루어 부드럽게 하고 출요로 욕심을 여의며 저 욕심에 의지해 일어나는 모든 번뇌[漏]의 얽매임도 또한 다 버리고 멸하여 해탈을 얻는다. 이것을 욕출요(欲出要)라 한다. 진에출요(瞋?出要)ㆍ질투출요(嫉妬出要)ㆍ색출요(色出要)ㆍ신견출요(身見出要)도 또한 그와 같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희해탈입(喜解脫入)이다. 만일 비구가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한적한 곳을 즐겨 마음을 오로지 하면 알지 못하던 것을 알 수 있고, 다하지 못한 것을 다할 수 있으며, 편안하지 못하던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나니, 어떤 것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여기서 비구는

여래의 설법을 듣거나 혹은 범행자(梵行者)의 말을 듣거나 혹은 스승[師長]의 설법을 듣고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여 법의 뜻을 분별하면 마음의 환희를 얻고, 마음의 환희를 얻고 나면 법애(法愛)를 얻으며, 법애를 얻고 나면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고, 몸과 마음이 안온해지면 곧 선정(禪定)을 얻으며, 선정을 얻고 나면 진실한 지견(知見)을 얻는다. 이것을 처음의 해탈입(解脫入)이라 한다. 여기서 비구는 법을 듣고 기뻐한 뒤에는 그것을 받아 지녀 외우고, 또한 기뻐하여 남을 위해 설명하며, 또한 기뻐하여 사유(思惟)하고 분별하고 또한 기뻐하여 법에 대해 선정[定]을 얻는 것이니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5인(人)으로서 중반열반(中般涅槃)ㆍ생반열반(生般涅槃). 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ㆍ유행반열반(有行般涅槃)ㆍ상류아가니타(上流阿迦尼?)이다. 

(5인이란 다섯 종류의 아나함(阿那含), 다섯 종류의 불환과(不還果)라고 쓰기도 한다. 즉 불환과의 지위에 오른 성자(聖者)로서, 근기에 영리함과 둔함이 있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는데 선후(先後)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섯 종류로 나눈 것이다.

중반열반이란 지위에 오른 성자가 욕계(欲界)에서 죽어 색계(色界)에 태어나는 중유(中有)의 지위로 아라한과를 증득하면 반열반(般涅槃)에 들게 된다.

생반열반이란 성자가 욕계로부터 색계에 태어나서 오래지 않아 성도(聖道)를 일으켜서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무행반열반이란 성자가 색계에 태어났으나 수행을 게을리하여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유행반열반이란 태어나서 거기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하여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상류아가니타란 초선(初禪)에 태어난 불환과의 성자가 다시 위의 하늘인 색구경천(色究竟天)에 태어나 반열반에 드는 것을 말한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우리는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여섯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내육입(內六入)으로서 안입(眼入)ㆍ이입(耳入)ㆍ비입(鼻入)ㆍ설입(舌入)ㆍ신입(身入)ㆍ의입(意入)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외육입(外六入)으로서 색입(色入)ㆍ성입(聲入)ㆍ향입(香入)ㆍ미입(味入)ㆍ촉입(觸入)ㆍ법입(法入)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식신(識身)으로서 안식신(眼識身)ㆍ이식신(耳識身)ㆍ비식신(鼻識身)ㆍ설식신(舌識身)ㆍ신식신(身識身)ㆍ의식신(意識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촉신(觸身)으로서 안촉신(眼觸身)ㆍ이촉신(耳觸身)ㆍ비촉신(鼻觸身)ㆍ설촉신(舌觸身)ㆍ신촉신(身觸身)ㆍ의촉신(意觸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6수신(受身)으로서 안수신(眼受身)ㆍ이수신(耳受身)ㆍ비수신(鼻受身)ㆍ설수신(舌受身)ㆍ신수신(身受身)ㆍ의수신(意受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상신(想身)으로서 색상(色想)ㆍ성상(聲想)ㆍ향상(香想)ㆍ미상(味想)ㆍ촉상(觸想)ㆍ법상(法想)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사신(思身)으로서 색사(色思)ㆍ성사(聲思)ㆍ향사(香思)ㆍ미사(味思)ㆍ촉사(觸思)ㆍ법사(法思)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애신(愛身)으로서 색애신(色愛身)ㆍ성애신(聲愛身)ㆍ향애신(香愛身)ㆍ미애신(味愛身)ㆍ촉애신(觸愛身)ㆍ법애신(法愛身)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쟁본(諍本)이다. 만일 비구가 성내기를 좋아해 버리지 못하고 여래를 공경하지 않으며, 또한 법을 공경하지 않고 또한 스님 대중을 공경하지 않으며, 계(戒)에 있어서 샘[漏]이 있고 물들고 더러워 깨끗하지 못하며,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다투기를 좋아해 남의 미움을 사고 깨끗한 대중을 어지럽게 하며 하늘과 사람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스스로 안을 관찰[內觀]하라. 만일 성냄과 원한을 가지고 저렇게 대중을 어지럽히는 것이 있거든 마땅히 화합(和合)한 대중을 모아 널리 방편을 베풀어 이 다툼의 근본을 뽑아라. 너희들은 또 마땅히 생각을 오로지 하여 스스로 관찰하라. 만일 맺힌 원한이 이미 다했거든 마땅히 다시 방편으로써 그 마음을 막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라. 

 

모든 비구들이여, 성내고 뒤틀어져 자상하지 못하고 인색하고 질투하며 교활하고 허망하여 스스로 자기 견해로 인해 잘못된 것을 받아들이고도 버리지 못하고 사견(邪見)에서 헤매고 변견(邊見)과 함께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계(界)로서 지계(地界)ㆍ화계(火界)ㆍ수계(水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찰행(察行)으로서 눈은 빛깔을 살피고 귀는 소리를 살피며, 코는 냄새를 살피고, 혀는 맛을 살피며, 몸은 촉감을 살피고, 뜻은 법을 살피는 것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출요계(出要界)이다. 만일 비구가 '나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아도 다시 진에(瞋?)가 생긴다'고 한다면, 다른 비구들은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를 비방하지 말라. 여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 자애로움의 해탈[慈解脫]을 닦고자 하면서 다시 성내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성내는 마음을 다 없앤 뒤에 비로소 자애로움을 증득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나는 불쌍히 여기는 해탈[悲解脫]을 행해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기쁨의 해탈[喜解脫]을 행해도 걱정하고 번민하는 마음이 생기며, 버림의 해탈[捨解脫]을 행해도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며, 무아(無我)의 행을 행해도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며, 무상(無想)의 행을 행해도 숱한 어지러운 생각이 생긴다'고 한다면 또한 그와 같이 할 것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무상(無上)으로서 견무상(見無上)ㆍ문무상(聞無上)ㆍ이양무상(利養無上)ㆍ계무상(戒無上)ㆍ공경무상(恭敬無上)ㆍ억념무상(憶念無上)이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6사념(思念)으로서 불념(佛念)ㆍ법념(法念)ㆍ승념(僧念)ㆍ계념(戒念)ㆍ시념(施念)ㆍ천념(天念)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고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는 일곱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7비법(非法)으로서 믿음이 없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으며,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끄러움[愧]이 없고, 들은 것이 적고, 게으르며, 잊음이 많고, 지혜가 없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정법(正法)으로서 믿음이 있고,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있고, 들은 것이 많으며, 꾸준히 힘쓰고, 모두 기억하며, 지혜가 많은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식주(識住)로서 혹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하늘과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초식주(初識住)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범광음천(梵光音天)에 최초로 태어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각 다른데 광음천(光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식주이다. 어떤 중생은 공처(空處)에 머물고 식처(識處)에 머물며 불용처(不用處)에 머문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근법(勤法)이다. 첫째는 비구가 계행(戒行)에 힘쓰는 것이고, 둘째는 탐욕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며, 셋째는 삿된 소견을 깨뜨리려고 애쓰는 것이요, 넷째는 많이 듣기[多聞]를 힘쓰는 것이며, 다섯째는 정진(精進)에 힘쓰는 것이요, 여섯째는 바른 생각[正念]에 힘쓰는 것이며 일곱째는 선정에 힘쓰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상(想)으로서,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 음식이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된다는 생각, 죽음의 생각[死想], 무상(無常)하다는 생각, 무상은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 괴로움은 나[我]가 없다는 생각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삼매구(三昧具)로서 바른 견해[正見]ㆍ바른 생각[正思]ㆍ바른 말[正言]ㆍ바른 행동[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기억[正念]이다.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7각의(覺意)로서 염각의(念覺意)ㆍ법각의(法覺意)ㆍ정진각의(精進覺意)ㆍ희각의(喜覺意)ㆍ의각의(?覺意)ㆍ정각의(定覺意)ㆍ호각의(護覺意)이다.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여덟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세간의 여덟 가지 법으로서 이로움[利]과 쇠함[衰]과 헐뜯음[毁]ㆍ기림[譽]ㆍ칭찬ㆍ비방ㆍ괴로움ㆍ즐거움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해탈로써 색(色)을 대하여 색이라고 관찰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요, 마음 속으로 색(色)에 대한 생각을 없애고 바깥 색을 관찰하는 것이 두 번째 해탈이며, 깨끗한 해탈이 세 번째 해탈이요, 색(色)이라는 생각을 초월하여 성내는 생각[瞋?想]을 없애고 공처(空處)해탈에 머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공처를 초월하여 식처(識處)에 머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요, 식처를 초월하여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 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며, 불용처를 초월하여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요, 유상무상처를 초월하여 상지멸(想知滅)에 머무는 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성도(聖道)로서 바른 견해ㆍ바른 생각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방편ㆍ바른 기억ㆍ바른 선정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8인(人)으로서 수다원향(須陀洹向)ㆍ수다원ㆍ사다함향(斯陀含向)ㆍ사다함ㆍ아나함향(阿那含向)ㆍ아나함ㆍ아라한향(阿羅漢向)ㆍ아라한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아홉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9중생거(衆生居)로서 어떤 중생은 몸도 각각 다르고 생각도 각각 다른데 하늘과 사람이 그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중생거(衆生居)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은 각각 다르나 생각은 한가지인데 범광음천에 최초로 태어날 때가 그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은 같으나 생각은 각각 다르니 광음천이 그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몸도 같고 생각도 같은데 변정천(遍淨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생각도 없고 깨달아 아는 것도 없는데 무상천(無想天)이 그것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공처에 머무는데 이것이 일곱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식처(識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여섯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여덟 번째 중생거이다. 

다시 어떤 중생은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는데 이것이 아홉 번째 중생거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이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모든 비구들이여, 여래께서는 열 가지 바른 법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10무학법(無學法)으로서 무학의 바른 견해ㆍ바른 생각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기억ㆍ바른 방편ㆍ바른 선정ㆍ바른 지혜ㆍ바른 해탈이다. 이것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이니, 마땅히 함께 모아 그것으로써 다툼을 막고 범행을 오래 서게 하며 많은 이익을 주어 하늘과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자.”

  

그때 세존께서는 사리불의 말을 인가(印可)하셨고, 모든 비구들은 사리불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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