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밝히는 등불들] 구도의 길을 가는 시인 천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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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밝히는 등불들] 구도의 길을 가는 시인 천양회
  • 김명환
  • 승인 2007.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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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수수밭

지난 밤 시를 꿈꾼 사람은 알 것이다. 신 새벽이거나 너무 늦어버린 아침 눈떠 보면 풀리지 않은 채 남겨진 고단한 하루와 그 하루의 질문들에 대해, 그리고 그 하루 하루의 삶을 더한 긴 해의 질문들에 대해.

30여 년 간 그 긴 꿈을 꾸어온 이가 있다. 그리고 지금 그 길고도 녹진한 삶의 질문들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 들려주는 이가 있어 여간 반갑지 않다.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래 30여 년 간 시작(詩作)활동을 해온 천양희 씨(53세)가 바로 그이다. 지난해 말 그의 네 번째 시집 『마음의 수수밭』을 비롯 최근 10년 남짓 기간에 그의 시집 3권(『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사람 그리운 都市』, 『하루치의 희망』)을 모두 상재(上梓)함으로써 그 오랜 기다림만큼이나 왕성한 성과를 보여주는 그 연배의 흔치 않은 시인이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淨土! 나는 늘 꿈꾸어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水宮을.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박수소리 같은-----바위들이 몰래 흔들 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絶唱의 한 대목, 그 완창을.

「직소포에 들다」전문

"가끔 여행을 가게 됩니다. 이 도시에서 혼돈에 빠진다든가 살아갈 힘이 떨어진다든가 하는 절망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면 여행은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시집의 시들도 그 여행에서 느껴 메모해 두었던 것들을 시로 써본 것입니다.

산다는 것, 물론 제 삶이 오랜 세월 힘들게 살아온 축에 든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든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으니 특히 내 삶이 더 어렵다고 하기에는 아직 살 부분이 더 많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첫 번째 두 번째 시집이 지난했던 제 삶에 천착해 있었다면 이번 시집 『마음의 수수밭』은 상당부분 갇혀 있던 의식에서 벗어나 세계와 친화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간행된 시집 『마음의 수수밭』에 그 역시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의 말 그대로 지난했던 삶의 고통을 불교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로써 승화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 쓰는 것은 구도자의 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의 시 곳곳에서 보이듯 그는 이제 불교를 통해 어느 정도 삶의 고통, 생의 의문에 길을 찾았는지 모른다. 아니 그는 이제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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