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목 보리수
스승은 깨달음을 얻은 후에 왜 여러 나무 밑을 전전했을까. 단지 깨달음의 법열이 스승을 나무 밑으로 인도한 것일까. 아니면 그 나무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는 말일까. 그늘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 나무의 다른 상징성을 경전은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마하박가 Mahāvagga』에 묘사한 대로, 스승은 보리수 아래서 처음 정각을 얻은 후 처음 몇 주간을 이 나무에서 저 나무 밑으로 옮겨 다녔다. 처음엔 보리수, 그 다음은 니야그로다, 그리고 무찰린다, 라자야타나 등의 나무였다. 이렇게 일주일씩 차례로 머물고는 다시 니야그로다 나무로 돌아온다. 뒤의 두 나무인 무찰린다와 라자야타나가 어떤 나무였는가는 현재로서 알 수 없다. 경전은 다만 이 나무들 밑에서 스승이 처음 만나게 되는 몇 가지 중요한 인연들 - 예를 들면 최초의 공양 같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들 가운데 흥미로운 한 가지 묘사를 지나칠 수 없었다. 후대의 몇몇 경전들은 당시 나무 밑을 전전했던 일을 약간 달리 서술하고 있다. 깨달음을 얻은 스승 앞에 마라를 등장시켜 그를 시험하고 위협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 사건의 장소는 아마도 처음 깨달음을 얻은 그 보리수 밑이었을 것이다. 마라Māra가 나타나 스승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빨리 그 보리수 밑의 자리를 떠나라고 협박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마라는 그냥 스승을 위협했던 것이 아니라 그 나무 밑을 떠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자리인냥 스승이 앉아 있는 보리수 밑의 자리를 탐내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경전은 그 자리를 금강좌(金剛座, vajrāsana), 또는 불사(不死, amṛta)의 자리라고 불렀다. 도대체 왜 보리수 나무 밑이 불사의 감로수를 얻는 자리, 영생의 자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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