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힐소설경』 번역 토론회 참관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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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힐소설경』 번역 토론회 참관기②
  • 불광출판사
  • 승인 2016.12.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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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국의 고승 선화(宣化, 1918-1995) 스님이197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유카이아에 건립한 도량 ‘만불성성萬佛聖城’의 고등 교육기관이 주최한 <불교 경전 읽기 및 번역 토론회(Seminar on Reading & Translating Buddhist Texts)>에 참관한 한서경 씨(뉴욕주립대 박사과정 졸업)의 참관기입니다. 만불성성은 미국에서 국제역경원을 건립하고, 지금까지 1백여 종의 불경 영역본을 출간했으며, 수많은 미국인 출가자와 불자들을 배출해온 곳이기도 합니다. 국내에는 『능엄경 강설』, 『부처님 말씀 그대로 행하니』, 『허공을 타파하여 마음을 밝히다』 등 선화 상인의 법문이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이 참관기를 통해 경전이 어떤 과정을 통해 번역되는가를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로 알 수 있기에 독자의 일독을 권하며, 이 참관기를 2회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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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본이 한문본처럼 품별로 구분이 되어 있는지, 품별 제목이 각 품의 시작 부분에 달려 있는지 등을 확인해 볼 순 없었지만, 오슬로 대학 불교 문헌 전산 자료를 통해, 이 장이 여신devatā과 장소parivartah.로 이루어진 “여신이 머무는 장소Devatāparivartah.”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과 데바따devatā가 그 장 내에서 꾸준히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티베트본일 경우에도, 여신을 의미하는 일하 모lha mo라는 단어가 상응하는 장 내에서 계속 쓰이고 있다는 것도 조사해 볼 수 있었다. 데바따나 일하 모 등은 전산화 과정에서 로마자로 쓰인 부분을 비교해 보다가 알게 된 것이고,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의 경우 낱낱 글자들이 너무 비슷하고 데바따와 일하 모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옳은지 확인할 길이 없어, 그냥 로마자로만 표기한다.

| ‘관觀’을 어떻게 번역할까
현존하는 한문본은 산스크리트본이나 티베트본보다 인터넷 검색이 훨씬 용이하다. 구마라습본의 「관중생품觀衆生品」은 지겸의 『불설유마힐경(佛說維摩詰經, T474)』에서는 「관인물품觀人物品」으로 현장의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T476)』에서는 「관유정품觀有情品」으로 나타나고, 둘 다 일곱 번째 장을 이루고 있다. 즉, 3세기 초 지겸본, 5세기 초 구마라습본, 7세기 중반 현장본에서 사용한 제목들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모든 제목이 ‘관觀’으로 시작하고 있고, ‘관’이라는 동사의 목적어, 즉 ‘관’이 되고 있는 대상을 언급하고 있다. 장 제목들을 간단하게 해석해 보면, “사람과 물건을 보는 품”, “중생을 보는 품”, “(중생의) 마음을 보는 품 ” 정도가 되는데, ‘관’을 행하는 주체가 언급되지 않는 것도 동일하다. 구마라습의 한문본을 바탕으로 한 영어본들의 경우, 룩본(“Looking At Living Beings”), 왓슨본(“Regarding Living Beings”), 맥래본(“Viewing Sentient Beings”) 등은 모두 ‘관觀’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세 한문본 각 품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지겸본은 “하늘天”이 언급되고, 구마라습본과 현장본에서는 “천녀天女”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경의 문맥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살펴본다면, “관”을 행하는 주체는 하늘이나 천녀보다는, 보살(菩薩, bodhisattva)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머지 품과 비슷하게, 「관중생품」에서도 보살이 “관”을 어떻게 행하는가에 대해 유마힐, 문수사리, 사리불이 묻고 답한다. 하지만, 이 품에서는 천녀가 등장해서 그 대화를 이끈다. 즉, 스스로(화자)의 몸이나 대화 상대(청자)의 몸 혹은 대화가 일어나는 상태 등을 적절히 변화시켜가며, “관”(하는) 자체의 얽히고설킨 정도를 보여준다. 동시에 그 복잡함 속에서도 “관”을 행하는 보살 능력과 본분을 보여줌으로써, 재가 신자가 어떤 식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조사를 계속하고 있는 중인데, 털만본이 “관”하는 주체를 이 장의 제목으로 내세운 점, 그리고 여신(goddess, devatā)을 직접 언급한 점 등이 티베트본과 한문본 자체의 차이인지, 단지 번역에 따른 표현의 차이인지 그 연유를 꼭 알아보고 싶다. 이는 대승불교 이론의 발달과 불경 전파와의 관계를 추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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