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만 불광산사 서울법당 의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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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대만 불광산사 서울법당 의은 스님
  • 김정현
  • 승인 2016.07.1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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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도움을 주고 희망을 나누고 환희심을 베풀겠습니다”

 

이 스님은 동국대 앞 작은 빌딩에 ‘서울 불광산사’를 세우고 전법의 원력을 실천으로 이었다. 이후 17년이 흘렀지만 불법을 홍포하려는 스님의 원력은 변함이 없다. 서울 불광산사 주지 의은 스님이다. 6월 6일 현충일 오후, 절에서 스님을 만났다.

 

| 선방, 도서실, 사경실, 그리고 다실

“올해로 대만 불광산사가 50주년이 됐습니다. 다양한 행사와 일정이 있어서 그간 쭉 대만에 있었어요. 한국 진각종과 대만 불광대학교가 함께 진행한 국제 세미나를 끝으로 대만 일정을 마치고 엊그제 귀국했어요.”

바쁜 일정을 소화한 뒤 한국에 돌아와 여독을 풀기도 전에 기자를 맞이한 비구니 의은 스님이 따뜻한 차 한 잔 건네며 눈웃음을 지었다. 노 스님의 첫인상은 수수했다.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님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말끝마다 깍듯이 존대했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도 잘 모르던 스님이 처음 한반도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은, 대만 불광산사 개산종장이자 자신의 은사인 성운 스님의 제안 때문이었다. 국제포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내다본 성운 스님은 1980년대부터 세계 각국으로 제자들을 내보냈다. 스승 하나 믿고 출가의 길에 오른 지 10년쯤 될 무렵, “한국으로 가보라.”는 스승의 지시에 의은 스님은 두말하지 않고 바랑을 꾸렸다.

동국대에서 학업을 마친 후 국제불광회, 청년회 등의 모임을 만들어 대만불교를 한국에 알리고 포교를 이어가던 스님에게 당시 목정배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는 “도량이 있어야 포교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목 교수에게 추천을 받아 1998년 동국대학교 인근의 작은 건물을 구매한 뒤 리모델링을 거쳐 1999년 개원한 곳이 바로 지금의 서울 불광산사다.

당시는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단체를 설립하고 종교활동을 펼치는 것이 생경했기에, 종교활동을 할 수 있는 온전한 법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만 근 1년이 걸렸다.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외국인 종교단체 등록증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던 시절도 아니고, 어떤 자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누가 알려주면 따라 하기라도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으니…. 발품을 팔아 반 년 간 준비해서 제출했는데 서류가 맞지 않다고 다시 해오라고 하기도 하고…. 여하튼 고생 많았죠.”

우여곡절을 거쳐 대만불교의 한국 포교 거점으로 자리한 서울 불광산사는 지상 4층, 지하 1층의 규모로 법당과 기본 사무공간을 비롯해 선방과 소규모 도서실, 사경실, 강의실 및 다실 등을 갖추고 있다. 전 세계의 모든 불광산사 분원은 선방과 도서실, 사경실, 그리고 다실이 있어야만 창립을 할 수 있는데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창립 원칙에 스며 있는 포교의 원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4층 선방에서는 참선과 명상, 체조를 하는 수선반 프로그램과 태극권 강좌가, 3층 강의실에서는 중국어 회화교습이 열린다. 절을 찾는 신도들이 공양간이자 다실로 애용하는 지하 ‘적수방’은 때때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역할을 겸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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