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행각雲水行脚,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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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행각雲水行脚, 멋지다
  • 윤구병
  • 승인 2016.07.1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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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운수행각이라 한다. 구름처럼 떠다니다 물처럼 흐르는 발걸음, 얼마나 멋진가. 구름은 떠다니다 빗방울로 후득거려 가뭄에 목 타는 곡식이나 남새에 생기를 북돋아 주기도 하고, 바람 타고 재를 넘어 눈발로 흩날리기도 한다. 물은 땅에 몸 붙이고 아래로 아래로 흐르면서 흙을 적셔 온갖 풀과 나무 살리기도 하고, 사람 목을 타고 흘러들어 몸 안 구석구석을 씻어내기도 하고, 실핏줄 끝까지 핏톨을 나르기도 한다. 그러니 운수행각은 그 자체로 보살행이다.

운수행각을 하는 스님들은 한자리에 이틀 머물지 말라는 말을 되새기며 낯선 길을 걷는다. 길들지 않으려는 뜻이다. 길든다. 길에 든다. 남이 닦아 놓은 길을 힘들이지 않고 걷는다. 그러는 사이에 의식은 잠이 들고 손놀림, 발놀림은 자동화된다. 낯익은 길은 새 길이 아니다. 그 길을 걷다보면 허수아비가 된다. 득도得道, 길을 얻는다. 이것이 목적인 이들은 수도修道, 길을 닦아야 한다. 제 발로 새 길을 내야 한다. 그 길은 눈 덮인 설산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드디어 바다에 아로새겨진 달맞이 하산 길에 이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한 길인데, 살 길 찾아 죽을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그 길은 혜초가 걸었던 왕오천축,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빛바랜 낙타와 사람 뼈가 하얗게 흩어진 사막 길이기도 하고, 독재의 어둠을 제 몸 불살라 밝힌 베트남 승려들의 소신공양 빛길이기도 하다.

머리 깎은 이들만 발길 닿는 대로 낯선 길 걷는 게 아니다. 머리 검은 어중이떠중이들도 이리저리 떠돌기는 마찬가지. 내 나이 서른 가까울 무렵 울진 불영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같은 학교 종교학과를 나온 선배 한 분이 나한테 연락해 불영사로 오라고 해서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그 먼 길을 걷고 걸어 찾았던 기억이 난다. 함께 대불련 활동도 하고, 조그마한 몸집으로 자기보다 덩치가 두 배도 넘는 씨름꾼을 뒷배지기로 보기 좋게 넘기는 솜씨에 반하기도 해서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선배였다. 가보니 불영사는 조그맣지만 깨끗한 절이었다. 불영계곡을 감돌아 흐르는 물빛도 고왔다. 쭈뼛쭈뼛 절집 마당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어느 비구니스님이 맞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휴 스님이었다. 선배는 그 절에서 몸 추스르며 여러 달 머물고 있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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