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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경영] 보시와 수행, 행복하게 먹고사는 법

근래에 불교와 경영은 자주 언급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하지만 그 방향이 아직 모호하거나 개론적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불교와 경영의 만남이 실제 사람의 삶과 생활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그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불교는 마음 밭을 갈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종교입니다. 이언오 소장은 불교의 프리즘으로 세속의 경제생활에 어떻게 관계할 것인지를 알려주며, 궁극적으로 세속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볼 것입니다.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_ 편집자 주

 
 
먹고사는 것이 고통 
요즘 먹는 방송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대박 맛집, 유명 쉐프가 등장해서 사람들의 식탐을 부추긴다. 대리 만족, 헛된 충족감에 빠질 뿐 먹고사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황지 연못 깊은 물은 낙동강의 근원이요. 깊은 막장 검은 탄은 먹고사는 근본일세.” 
 
광부들의 삶을 노래한 현대판 정선아리랑의 가사이다. 힘들지만 버티겠다는 의지가 살아있다. 먹는 방송과는 달리 엄숙하고 진지하다. 먹고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먹어야 육신이 유지되고 살아야 정신이 깨어있다.
 
먹고사는 것이 고통스럽다고들 한다. 먹고살기가 괴롭다고 해서 굶어죽을 수는 없다.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언젠가는 먹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숨을 쉬며 한동안 연명하다 종국에는 굶어죽는다. 언제인지 불확실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죽음의 공포는 유전자 속에 각인돼있어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먹고사는 고통은 굶어죽음 앞에서 사치스러워 보인다.  
 
고통은 괴롭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엄연히 현실이다. 새끼를 뱀으로 착각해도 그 순간은 뱀인 이치이다.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데 막상 일을 하면서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경쟁이 심해 웬만큼 먹고사는 것조차 힘들다. 물질은 풍족해졌는데 정신은 피폐하고 행복하질 않다. 어렵게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고통스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원효元曉가 사복蛇福에게 “태어나지 말 것이니 죽음이 괴롭다. 죽지 말 것이니 태어남이 괴롭다.”라고 했다. 사복이 번거롭다고 하자 원효가 고쳐 말했다. “죽음도 태어남도 모두 괴롭다.” 이를 먹고사는 문제로 풀어보자. 원효라면 “먹고살지 않으려니 굶어죽음이 괴롭다. 굶어죽지 않으려니 먹고삶이 괴롭다.” 사복 스타일로는 “먹고삶도 굶어죽음도 모두 괴롭다.” 퇴로가 막혔으니 이제 어찌할 것인가. 고통을 직시하고 정면돌파해야 한다. 백척간두에서 한 발 내딛는 일이다.  
 
 
| 재가자는 먹고살고 출가자는 수행하는 것이 각자 본분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먹고사는 데 집착한다. 고통임을 알면서도 집착을 해야 목숨을 부지한다. 불법의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귀에서 맴돌 뿐 마음에 사무치지 않는다. 가진 걸 비우지 않고 나눔에 소극적이다. 그래서 고통의 바다에서 헤맨다. 수행은 먹고사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깨달음은 고통에서 완전히 해탈하는 길이다. 
 
부처님은 중생의 먹고사는 고통을 보고서 출가를 하셨다. 새는 벌레를 잡아먹고, 농부는 소 등짝을 후려치며, 귀족은 평민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사람, 동물, 미물이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아무도 궁극의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굶어죽음을 각오하고 고행을 했지만 바른 길이 아니었다. 수자타의 우유죽을 받아먹고 기운을 차렸고 얼마 후 깨달음에 이르렀다. 먹고삶과 굶어죽음을 아우르는 중도의 경계를 보여준다. 무이이불수일無二而不守一. 둘로 나뉘지 않고 하나에 집착하지도 않는 것. 이 이치를 체득해야 먹고사는 고통에서 벗어난다.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장면이다. 밭 가는 사람 바라드바자가 부처님에게 질문을 했다. 자신은 농사지어 먹고사는데 사문은 왜 무위도식하느냐고. 부처님은 “수행자는 마음의 밭을 간다. 믿음은 씨앗, 고행은 비, 지혜는 쟁기, 소는 정진 그리고 해탈이 수확물이다.”고 답했다. 농부는 감동 받아 우유를 바쳤다. 부처님은 시를 읊고 음식을 받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땅에 버린 우유에서는 거품이 일었다. 부처님이 깨닫기 전이어서 보시를 거부한 듯하다. 수행자가 깨달음의 지혜를 갖고 재가자의 먹고사는 고통을 해결해주어야 보시 받을 자격이 있다는 은유이다.  
 
절간의 공양 게송은 다음 세 가지를 다짐한다. “음식을 받을 만한지 돌아보고, 몸을 유지하는 양약으로 삼으며, 기필코 도를 이루겠다.” 재가자가 먹고살 거리를 제공해서 출가자가 생활을 한다. 수자타의 우유죽처럼 드물게는 깨달음의 계기를 마련한다. 출가자가 시주의 은혜에 보답하려면 수행에 매진해야 한다. 선가의 ‘일일부작 일일불식’은 출가자가 돈 벌라는 것이 아니다. 육체노동도 수행의 일환이라는 의미이다. 재가자는 열심히 먹고살고 출가자는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 각자 본분이라 하겠다. 
 
최근 노조 위원장의 조계사 농성은 먹고사는 고통이 극한으로 치달아 발생한 사건이다. 노사갈등이 광장에서 폭력시위로 표출되었고 진영 간 대립이 사찰 안으로 이어졌다. 부처님은 살인마 앙굴라마라까지 교화시켰다. 지금 수행자들은 한 중생의 증오를 풀어주지 못했다. 화쟁위원회는 세속 갈등 앞에서 너무 무력했다. 화쟁은 화이부동 쟁이불이和而不同 諍而不二, ‘같지 않아 화합하고, 다르지 않아 다투는 것.’ 세속은 하나의 먹고사는 문제를 놓고 다툰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각자 다른 본분에 충실해야 고통의 화쟁이 가능하다. 
 
 
| 보시와 수행으로 행복하게 먹고살기
재가자는 먹고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생명체로 태어난 중생의 운명이다. 힘이 들지만 굶어죽는 고통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고통스러워서 분심이 생기고 극복을 하면 기쁨이 따른다. 경제적 자립은 세속에서 주인공으로 사는 길이다. 스스로 먹고사는 귀한 존재라는 의미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새겨야겠다. 스스로 먹고살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취업·창업에 도전해서 성공할 확률은 극히 낮다. 작은 가게로 생계를 꾸려갈 정도로 벌 가능성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계속 노력하고 도전해야 한다. 실패와 적자를 내 탓으로 돌리고, 결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돈 안 되고 힘든 분야에는 아직 일자리가 있다. 열심히는 당연하고 지혜로워야 웬만큼 돈을 번다. 똑같이 먹고살면서도 더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보시와 수행을 하면 된다. 보시는 타인, 수행은 자신의 고통을 줄여준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보시가 가능하다. 가난한 사람의 보시는 자신의 고통을 감수하는 일이어서 공덕이 더 크다. 재물이 없으면 몸과 마음으로 타인을 도우면 된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삶이 수행에 유리하다. 탐욕할 대상이 눈에 띄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덜 벌고 덜 먹으면서 보시와 수행을 하면 삶이 많이 행복해진다. 
 
먹으려는 의지만 있으면 세상이 굶어죽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정부는 실업자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복지단체는 노숙자에게 밥을 나눠준다. 먹고살기 힘든 것은 생각과 말이 앞서기 때문이다. 제대로 마음먹고 집요하게 행동하지 않아서다. 배고픈 중생의 먹고살려는 몸부림은 자신에 대한 보시이며 고통을 줄이기 위한 수행이다. 
 
먹고사는 데 여유가 있으면 본인 노력은 조금, 주위 은혜가 더 크다고 보자. 거의 다 부모, 타인, 자연으로부터 받거나 바꾸거나 빼앗은 것들이다. 남에게 고통을 주고 부당하게 모은 것도 포함돼 있다. 호의호식하며 살면 마음이 괴롭고 주변 눈총이 불편하며 나쁜 업보가 다음 생에 쫓아간다. 먹고사는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자신이 해야 할 수행을 대신하고 있는 출가자도 지원해야겠다. 
 
출가자는 물질적으로는 스스로 먹고살지 않는다. 재가자는 자신이 단행하지 못하는 출가수행에 감화 받아 보시를 한다. 출가자는 세속에 어설프게 끼어들기보다는 청빈하게 살면서 수행에 매진해야 한다. 재가자에게 출세간의 지혜를 제시하고 수행의 맛을 느끼도록 해야겠다. 재가자와 출가자가 서로를 경책하면서 은혜의 관계로 맺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먹고살기 힘든 근본 원인은 마음 때문이며 사회구조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다. 빈부격차, 갑을 관계, 정규직 - 비정규직 차별 등은 마음이 구조로 굳어진 것이다. 구조를 바꾸려면 갈등이 유발되고 새로운 부작용이 생겨난다. 어떤 구조도 탐진치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약자를 배려하고 양보해야 다수의 삶이 나아진다. 보시와 수행이 기업, 교육, 복지, 정치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먹고사는 것이 고통이 아닌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마음과 사회구조 양 쪽에서 치유가 시작되어야겠다. 마음이 근본임을 알아 스스로 먹고살고 함께 나누어야 한다. 마음먹기와 솔선 행동이 출발점이다. 작은 떨림들이 서로 공명을 일으켜야 구조 변화가 촉발된다. 신심과 행원이 방향을 제시하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줄 것이다.
 
이 겨울 산사에서는 출가자들이 살고죽음의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 중이다. 재가자들은 저자 거리에서 먹고사는 일상에 매달리고 있다. 출가자는 살고죽음, 재가자는 먹고살기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 둘은 ‘살기’에서 서로 만난다. 동안거 해제일에 출가자는 지혜를 내놓고 재가자는 음식을 차리도록 하자. 출가수행, 세속 생활 모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이언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전무와 부산발전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바른경영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대학 때부터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불교와 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불교와 경영의 접목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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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오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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