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주치의] 삶에 무기력이 찾아 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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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주치의] 삶에 무기력이 찾아 왔을 때
  • 박경숙
  • 승인 2015.11.06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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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지 않는다면 삶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기 싫을 때가 종종 있다. 단순히 피로하고 기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 전혀 행동할 수 없거나 조금 시도하다가 멈춰버리기를 반복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태와 게으름, 냉소, 절망, 포기, 저항, 무기력. 인도의 베다철학에서는 이와 같은 부정 심리를 타마스tamas라는 어둠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타마스는 ‘할 수 없음’, ‘하지 않음’, ‘하기 싫음’ 등으로 나타난다. 이 중 무기력helplessness은 가장 은밀한 ‘마음의 독소’다.

인생의 발목 잡는 은밀한 적, 무기력 무기력이란 어떤 것을 할 마음의 힘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기력 없음’이라기보다 ‘의욕 없음’이다. 뭔가를 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건강이 나빠지거나 탈진되어 무기력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더 치명적인 무기력이 있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이란 ‘피하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사람이, 실제로 극복할 능력이 있는 다른 상황에서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현상’을 말한다. 즉 자기 힘으로 통제할 수 없거나 예측하지 못한 일을 무방비상태로 당하는 사이에 무기력을 배운다는 것이다. 기획서 제출날짜가 다가오는데 아직 시작도 못한 직장인, 수업시간에 멍하게 앉아 시간만 때우는 학생, 남편의 폭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매 맞는 사람 증후군의 여성, 만사가 귀찮아 매일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하면서도 끌려 다니듯 출퇴근을 반복하는 직장인 등 의욕을 잃은 많은 사람에게서 우리는 학습된 무기력을 볼 수 있다.

어떻게 무기력에서 벗어나 삶을 의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무기력 연구의 대가,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무기력이란 인간이나 동물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를 경험하며 겪는, 동기, 인지, 정서장애를 나타내는 현상이다.”라고 했다.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 동기, 인지, 정서에 장애가 나타나면, 이로 인해 행동하지 않거나 시도하던 행동을 멈춰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세 요소인 동기, 인지, 정서를 변화시킴으로써, 행동을 시작하여 지속성을 유지하게 할 수 있다.

 

|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게 하는 것은

동기motivation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나는 장소이자 어떤 일을 끌고 가는 마음의 연료가 들어 있는 곳이다. 따라서 동기가 약화되거나 사라지면 의욕을 잃고 하고 싶지 않게 되어 “무엇을 해야 할지, 왜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갖는다. 무엇을 할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 의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유대인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삶의 의미를 가진 포로들이 극한 환경에서도 끝까지 살아남는 현상을 체험했고, 전쟁 후 석방되어 ‘의미치료’라는 심리치료 기법을 심리학사에 내놓았다. 그 핵심은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삶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살아갈 이유가 있는 사람은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지cognition는 살면서 배우고 경험하며 만들어진 인간 사고의 틀이다.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틀인 인지방식이 잘못되어 있을 때 ‘해봤자 안될 것 같아. 또 실패할 거야.’라는 잘못된 믿음에 지배되고 그 왜곡된 믿음 때문에 점점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불안해진다. 인지 방식은 양육방식, 교육환경, 생활양식 등을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 우리 모습과 다른 경우가 많다. 아론 벡Aaron Beck 같은 인지치료자들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왜곡된 인지방식을 전환하라고 말한다.

무기력한 사람의 경우는 ‘나는, 해봤자 안 된다.’라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패배의식은 자존감을 통해 줄일 수 있다. 자신감이 아니라 자존감이다. 자신감은 열등감으로 변할 수 있으므로 강한 힘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매우 강력한 마음의 힘이 만들어지는 근원이 될 수 있다. 자존감이 굳건하다면, 적은 자원을 가졌다 하더라도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

정서emotion는 감정이다. 정서는 인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지방식을 바꾸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용서할 때 정서의 회복이 시작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이나 실수, 불합리한 모든 것에 반박하지 않는 수용으로부터 긍정 정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동기, 인지, 정서가 변하면 무기력하던 사람도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행동을 더 잘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냥 시작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 숙달되면서 유능감이 생기고 그 일에 대한 정교한 스키마(schema, 네트워크 모양의 인식구조)가 만들어진다. 유능감은 매우 중요한 마음의 자산이다. 유능감을 일으키기 위해 행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이다. 한두 번 해서는 위력이 없다. 반복적인 행위만이 강력한 결과를 낳는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없는 힘이 축적된다. 같은 행위를 반복하여 숙달되어 갈수록 스키마가 발달하고, 발달된 스키마를 기준으로 자기를 평가하므로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된다. 또한 스키마가 발달될수록 유능감이 점점 강화된다. 따라서 행동의 반복이 매우 중요하다. 매일 반복하는 사람은 그것만으로 벌써 한 분야의 대가가 되는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런데 반복이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동기, 인지, 정서라는 마음의 요소를 통제하여 행동을 일으키려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 훈련하고 숙련이 되면 어제의 나는 흘러간 물이 된다. 어제와 다른 사람으로 진화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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