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책] 작자미상의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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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책] 작자미상의 『논어』
  • 김태완
  • 승인 2015.10.0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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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오리지널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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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을 만든 책을 들라 하면 흔히 ‘국가’라고 번역되는 플라톤의 『폴리테이아』와 『신약성서』를 꼽는다. 우리가 두루뭉술하게 서양 문화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두 기둥으로 삼아서 형성되었다고 하거니와, 두 문명을 대변하는 책이 이 두 책이다. 인문주의적 이념의 근원인 플라톤의 『폴리테이아』와 현실세계를 초극하는 신의 의지를 지향하는 『신약성서』가 착종해서 조화하고 모순과 갈등을 일으키고 변증법적으로 지양해서 서양 문화를 이루어왔다. 그렇다면 동양(동아시아)을 만든 책을 들라 하면 아무래도 『논어』를 들어야 하리라.
 
 
동아시아 사회는 『논어』로 형성되어 왔다
『논어』는 참 특이한 책이다. 우선 저자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로는 공자가 제자들과 나눈 담론을 제자들이 저마다 따로 기록해두었다가 나중에 편집한 것이라 한다. 책의 제호인 논어라는 말도 말씀(語)을 편집했다(論)는 뜻이다. 공자의 말씀을 제자나 제자의 제자들이 나중에 편집한 글이기 때문에 자연 원전의 출처와 내용의 갈래가 여럿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대부분 화자이며, 공자가 말을 하거나 대화의 상대자로 등장할 때는 ‘자子’ 또는 ‘부자夫子’로 나온다. 그리고 제후와 대화할 때는 ‘공자孔子’로 언급된다. 제자들은 공자가 친근하게 부를 때는 이름으로, 대부분의 경우는 자字로 불린다. 그런데 『논어』에서 가끔 유약有若이라는 제자는 유자有子로, 증삼曾參이라는 제자는 증자曾子로 불리는데, 이런 구절은 이들의 제자들이 편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공자나 제자를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는 점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논어』라는 책이 실은, 출처가 다양한 여러 갈래의 말들이 어느 시기에 어떤 계기로 인해 편집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곧 공자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저마다 연고에 따라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고 학생을 모아 공자의 가르침을 전수하다가, 공자의 가르침, 오리지널 말씀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서 책자의 형태로(당시로는 죽간 두루마리의 형태로) 편집했던 것이다. 
 
우리가 보는 『논어』는 모두 중국사회가 한漢 제국으로 있던 시기, 서력기원 초에 장우張禹라는 사람이 재편집한 판본에 연유한 것이라 한다. 그는 당시까지 유통되던 공자의 어록집인 『논어』의 세 판본을 하나로 정리했다. 당시 『논어』라는 이름으로 전해진 어록집은 최소한 석 종이 있었는데, 전국시대에 노나라 땅이었던 지역에서 전승된 『노론어魯論語』, 제나라 땅이었던 지역에서 전승된 『제론어齊論語』, 허물어진 공자의 옛 집을 정리할 때 벽 속에서 여러 문서와 함께 나왔다는, 아주 옛날 글자로 쓴 『고론어古論語』이다. 장우는 『노론어』를 중심으로 『고론어』와 『제론어』를 아울러서 참조하여 통합했을 것이다. 
 
이밖에도 『논어』와 직간접으로 연관이 있는 자료가 많은데, 일부는 고대부터 전승된, 공자의 언행을 별도로 기록한 『공자가어孔子家語』, 『공총자孔叢子』 같은 텍스트이며, 일부는 현대에 고고학과 문헌학의 발달로 쏟아져 나온 죽간본 『논어』와 『어총語叢』 같은, 이른바 ‘출토문헌’ 자료들이다. 여러 갈래로 전승된 『논어』 또는 『논어』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이들 수많은 자료는 모두 공자라는 한 ‘인물’(성인이나 신격화한 위인이 아니라)의 말과 활동과 행위를 수천 년 뒤 오늘날의 우리에게 저마다 나름대로 증언해주고 있다. 이들 텍스트는 저마다 공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어떤 텍스트라도 일면성을 지닐 뿐이다. 『논어』의 공자와 『장자』의 공자, 『공자가어』의 공자와 『맹자』의 공자는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저마다 자기 눈으로 본 ‘어쨌든 공자’이다. 그러나 『논어』는 공자에 관한 가장 기본이 되는 텍스트이며, 공자의 오리지널한 말씀으로서 가장 오랫동안 권위를 누려왔다. 앞으로 공자나 『논어』에 관한 어떤 자료가 발굴된다 하더라도 한 대에 꼴을 갖추어서 지금까지 전승된 『논어』가 동아시아 사회에서 누려온 공자 텍스트의 지위를 훼손시키지는 못하리라. 왜냐하면 동아시아 사회는 이 『논어』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 인간적인 공자의 면모
『논어』라는 말을 들으면 ‘공자왈, 맹자왈’ 하는 고리타분한 도덕설교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논어』를 읽어보면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실사회에 대한 공자의 무한한 근심과 애정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논어』는 대부분 사회를 주도하는 주체인 군자君子의 도덕적 자각을 고취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공자의 인간적 면모, 또는 단순히 특이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기록도 들어 있다. 『논어』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 눅이고 재미와 흥미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공자가 이상적인 정치를 펼치기 위한 꿈을 찾아서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위衛나라에 이르렀다. 이 때 위나라 군주는 영공靈公이었는데 그는 매우 늙었고, 권력의 실세는 남자南子라는 영공의 젊은 후취였다. 남자는 간접 자료로 추측하건대, 매우 정치적 수완과 감각이 뛰어났던 사람으로 보이며, 실제로 영공의 아들인 괴외와 권력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공자가 위나라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남자가 공자를 초빙하였다. 남자는 부도덕하고 음란하다는 평이 있었던 터라 공자가 남자의 초빙에 응했다는 말을 들은 제자 자로가 아주 싫은 내색을 했다. 그러자 공자가 자로에게 맹세코 말했다. “내가 만일 무슨 잘못을 했다면 하늘이 나를 미워하리라, 하늘이 나를 미워하리라.” 그때의 상황은 공자가 아주 맹세를 하지 않고서는 자로의 의심을 풀어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스승의 명예를 아끼는 제자와 제자의 의혹을 풀어주고자 하는 스승의 충정衷情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스승의 사적인 일에까지 끼어든 제자에 대한 스승의 노여움도 조금 엿보인다고나 할까.   
 
『논어』에는 후대 학자들이 도덕적 관점에서 붙인 주석을 걷어내고 보면 인간적인 공자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구절이 꽤 많다. 이 기록도 공자와 옛 친구 사이의 에피소드를 전하는 내용이다. 어느 날 공자가 원양原壤이라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원양은 친구가 오는데도 일어나서 맞이하지 않고 다리를 쭉 뻗고 앉아있었다. 공자가 가까이 다가가서 “어려서는 버르장머리 없고 시건방지며, 커서는 내세울 것도 없고, 늙어서는 죽지도 않는 것은 도적놈이다.” 하면서 지팡이로 정강이를 때렸다. 이 에피소드는 도학자들의 예법 운운하는 주석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그야말로 흉허물 없는 옛 친구 사이에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장난삼아 주고받는 가학적 해학이라 하겠다. 
 
아주 특이한 기록도 있다. “주나라에는 여덟 선비가 있었다. 백달伯達과 백괄伯适, 중돌仲突과 중홀仲忽, 숙야叔夜와 숙하叔夏, 계수季隨와 계왜季騧이다.” 앞뒤 맥락도 없이 달랑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기록을 해석할 수 있는 몇 가지 실마리는 있다. 우선 백·중·숙·계로 되어 있는 것은 아들의 항렬을 가리킨다. 첫째를 백, 둘째를 중, 셋째를 숙, 막내를 계라고 한다. 다음으로 여덟 사람의 이름이 둘씩 서로 압운되어 있다. 달과 괄, 돌과 홀, 야와 하, 수와 왜로 말이다. 또한 둘씩 짝지어져 있으며 모두 네 항이다. 그래서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어떤 여자가 네 차례 임신하여서 매번 쌍둥이를 낳았다. 그래서 쌍둥이 여덟 형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논어』의 다른 기록들과 달리 아무런 교훈도 역사적 맥락도 전해주지 않는다. 아마 견문이 넓고 정보를 많이 갖고 있던 공자가 주워들은 특이한 정보를 제자들에게 언급한 것일까? 마치 “얘들아! 주나라에 갔더니 글쎄 이런 이야기도 있지 뭐냐?” 하는 듯이.
 
고전은 누구나 이름은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역설적 금언이 있다. 그만큼 고전은 어쩌면 고전으로 지목됨으로 인해 도리어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왠지 고전은 또한 읽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찝찝한 마음을 갖게 한다. 아예 이참에 까짓것, 『논어』라는 것 한 번 읽어나 보기로 하자. 막상 읽어보면 별것 아니다.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남의 말 백 마디 듣는 것보다 내 눈으로 한 번 보는 게 천만 배 낫다.                                                  
 
 
 
김태완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소장. 숭실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 율곡 이이의 책문을 텍스트로 삼아 실리사상을 연구하여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경원대 등에서 동양철학, 한국철학 등을 강의했다. 저서로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율곡문답』, 『우화로 떠나는 고전산책』, 『경연, 왕의 공부』, 『시냇가로 물러나 사는 즐거움』 외 다수가 있고, 역서로 『성학집요』, 『상수역학』, 『도교』,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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