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스님의 선담禪談] 자아가 사라져야 보살행이 나온다
상태바
[금강 스님의 선담禪談] 자아가 사라져야 보살행이 나온다
  • 금강
  • 승인 2015.09.03 1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아가 사라져야 보살행이 나온다

 

 
 
팔월 하순의 산중은 더 없이 고요하다. 별빛도 또렷하고 저녁 노을빛도 차분하다. 여름에 많은 것을 쉼 없이 진행한 덕인지 일과 사람을 살피는 눈이 그만큼 커졌는가 보다. 무얼 봐도 더 깊게 보는 것 같다.
 
 
| 멀리에서 부처님을 뵙기 위해 찾아온 이들
욕심도 많아졌다. 이번 여름동안 연거푸 네 번의 참선 집중수행을 꼬박 이십 명씩 채워서 진행했다. 체력이 떨어져 몇 번이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고는 했다. 삼년 전 틱낫한 스님께서 일주일에 하루는 게으른 날을 만들어서 절도 쉬고, 스님도 쉬어야한다고 충고해주시던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막상 그리되지 않는다. 
 
이번의 만남이 그들에게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면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나 마음을 쓰게 되고 그러다보면 하루가 금세 간다. 그들은 벼르고 벼르다 이 여름에 시간을 내어 땅끝까지 찾아왔을 터이니 그들을 맞이하는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무겁게’ 만날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면 내 공부의 덕화가 그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땅끝마을이라는 지역과 천년 역사의 도량이 주는 덕이 수행을 돕는다 하겠다. 거기에 비단위에 꽃그림 하나 얹듯. 친절한 말 한마디와 웃는 얼굴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터이다. 몸이 조금 피곤하면 모른 척하고 쉴까 하다가도 밥 얻어먹으며 좋은 곳에 살면서, 그것도 못 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싶으면 벌떡 일어나게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육십 세가 될 때까지 대중 스님들과 똑같이 생활하시다가 제자들의 권유로 시봉을 받게 되었다. 대중들이 추천한 아난 존자는 부처님께 원하지 않는 것 네 가지와 원하는 것 네 가지에 대해 허락을 받고서 시봉을 하게 되었다.   
그 내용 중에 ‘멀리에서 부처님을 뵙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먼저 만나기를 원하면 언제든지 만나주십시오’라는 대목이 있다. 가까이 함께하는 수행자들은 복이 많아 늘 깨달음의 모습을 보고, 법문을 들으며 수행할 수 있지만 멀리서 찾아온 이들은 자칫 가까운 사람들에 둘러싸여 뵙지도 못하는 때가 있다. 아난 존자의 보살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사람들이 사는 곳과는 먼 곳에 살기에 항상 이 구절을 마음속에 되새김한다. 
 
 
| ‘나’라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번 여름에는 같은 직종에 있으면서 같은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서로 인연이 없는 은행 지점장들 세 명이서 약속이라도 한듯 수행하러 온 것이다. 한 직장에 오랫동안 다닌 노력의 결과로 이제 지점장이 되었는데 오히려 걱정이 생겨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잠시 내 자리를 비우면 다른 사람이 차지하여 앉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했다. 오 년만 지나면 퇴직해야하는 데 한창 일할 오십대 후반에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대비책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걱정이 많아 혼자서 궁리를 하다가 수행하러 왔다는 것이다.
 
은행 지점장이라는 자리는 그동안 원하고 원해서 된 자리인데 막상 되고 보니 어떻게 이 소임을 지혜롭게 살 것인지 고민하기보다 또 다른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시점을 잃어버리니 불안과 걱정뿐이다.
 
좀 더 살펴보면 우리가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도 원하고 원해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는 있지만 나쁜 감정보다는 좋은 느낌이 많은 것이 사람의 삶이다. 현재의 삶이나 자리를 연기적 관계성으로 보는 관점을 길러야 한다. 연기적 관점은 다른 말로 통찰이라 하고, 통찰은 지혜이고, 이 지혜의 실천이 자비행이고 보살행이다. 자신의 삶을 많은 관계 속에서 찾아야 감사와 행복한 마음 생기며 지금 이 순간이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귀하고 귀한 나의 삶을 온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연기적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연기적 관계를 몸으로 체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라는 생각을 뛰어넘거나 내려놓아야 한다.   
 
삼 년 전 틱낫한 스님을 모시고 제자들 40여 명과 함께 서울의 국제선센터에 머물며 중앙승가대학교 학인스님들을 위한 강연을 위해 길을 나선 아침이었다. 출근하며 바삐 움직이는 서울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도 버스에 올랐다. 출발하려는데 두 명의 외국인 스님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 차창 밖을 보니 횡단보도 중간에서 캐나다 스님은 승합차에 충돌하여 쓰러진 오십대 중반의 남자의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고, 이탈리아 스님은 지나가는 차량을 통제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신호등이 바뀌자 출근하는 사람들은 사고 현장을 힐끗힐끗 보면서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도 보였다. 
 
스승과 동료들이 버스에 올라타 기다리고 있는데 맨 뒤에서 차를 타려던 두 스님이 사고를 목격한 것이다. 곧바로 뛰어가 그 순간 최선의 조치를 하는 장면이다.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면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가 작동을 하면 방관자가 되고 만다. 힐끔거리며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들도 돕고 싶은 마음은 있었을 것이나 아침밥도 굶고 나선 길, 회사에 가면 처리해야할 일들이 쌓여있었을 것이다. 거들고 나섰다 자칫 사고 수습으로 복잡한 증언과 조사에 얽히고 싶지 않은 ‘나’가 작동을 하니 슬며시 지나쳐가는 행인이 되고 만 것이다. 
 
스님 두 분도 목숨 다해 받드는 스승이 먼 나라 한국이라는 곳에서 강연을 한다하여 도우러 나선 길이었으니 제 갈 길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스승과 도반들이 버스에서 기다리고 있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이었으니 그 순간 ‘나’라는 생각이 작동했다면 방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생각이 작동하기 이전의 지혜의 마음이 보살행으로 나타나 자연스럽게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게 했던 것이다. 
 
 
| ‘누구’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만의 성엄 스님은 선 지도의 스승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셨던 분이다. 성엄 스님은 간화선을 지도하기 전에 먼저 자아감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자아감(sense of self)은 몸, 마음 및 외부 환경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방법 면에서는 외부환경에서 일어나는 자아감에 초연해지고, 우리의 몸에서 일어나는 자아감에 초연해지고, 마음활동에서 일어나는 감각・느낌・관념・사고는 집착에서 오는 것이므로 그 자아감에 초연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자아감을 분리하고, 고립시키고, 좁혀나가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화두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초심자들은 우리의 신체적 감각에서 일어나는 자아감을 포착하면 화두에 들어가기 쉽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앉아있는 체중을 자각하거나, 콧구멍에 들어가는 숨을 자각하며 즐겁다거나 즐겁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이 자아감의 한 측면이다. 이런 것들을 ‘누가’ 경험하고 있는가? 대답은 ‘나’다. ‘제가’ 하는 것이 자아감이다. 
 
즉 자각하는 그 ‘누구’ 경험하고 있는 그 ‘누구’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자아감을 포착하고 그것을 유지해서 마음이 딴 곳으로 흐르지 않게 묶어두면 마음이 집중되고 그 집중된 마음과 강한 자아감이 없다면 화두를 들어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자기 행동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자아감을 포착하는 단초가 되어준다.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가 바라보고 있는 나를 확연히 알아가는 의심을 품을 때 공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이 화두를 들면서도 화두를 드는 나를 보고 있다면 아직은 자아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단계이다. 육조단경에서의 신수의 게송처럼 거울과 거울을 닦는 나가 있다면 홍인 대사의 표현처럼 아직 문 밖에 있는 것이다.
 
“일체의 번뇌 망념이 없어지고 자연히 나와 경계도 없어져 하나(一片)가 된다.”
 
종색 선사의 표현처럼 화두 의심으로 한 덩어리가 될 때 비로소 의단이 독로해지고 안과 밖이 밝아지는 지혜가 열리게 된다.
 
선 수행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함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나’라는 상을 떠날 때 비로소 진정한 나를 만나고, 지혜의 길이 열리고, 활발발 대자유인의 보살행이 나온다는 옛 스님들의 말씀을 새긴다. 
 
 
금강 스님
미황사 주지. 조계종 교육아사리. 서옹 스님을 모시고 ‘참사람 결사운동’, 무차선회를 진행하였고, 고우 스님을 모시고 한국문화연수원의 간화선 입문과 심화과정을 진행하였다. 홍천 무문관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참선집중수행 ‘참사람의 향기’를 80회 넘게 진행하며 일반인들과 학인스님들의 참선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이 있다.
 
 
ⓒ월간 불광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