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인터뷰] 박노자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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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터뷰] 박노자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불교
  • 김성동
  • 승인 2015.09.0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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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불교와 자본주의, 그리고 불자의 삶

무척 예의바른 그의 목소리는 좀 낯설었다. 큰 키에 ‘솔’ 음계의 톤으로 비교적 전문적 용어도 막힘없이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약간 고민스런 답변을 하면 머리를 쓰다듬고 틈을 두고 이야기했다. 그는 묵조선과 지관수행을 말했고, 한국불교의 자본성을 걱정했다. 그는 지눌 스님을 언급하며 성철 스님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달라이라마 스님보다 틱낫한 스님을 출가수행자의 전형으로 보았다.

불자이면서 사회주의자인 그의 불교관은 초기불교 승단이 추구했던 불교를 향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불교에서 그의 존재는 매우 불편할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교수(43). 지난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그의 이력은 독특한 것을 넘어 특별하다. 러시아 태생으로 고대 한국의 가야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인 아내를 두었으며, 한국사회 문제에 부단한 진보적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특히 그는 청소년기에 불교사상에 심취해 불교경전을 탐독했으며, 한국사회에 던지는 문제의식이 한국불교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이방인의 이력과 진보의 눈을 가진 그가 한국불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들어보았다.

| 성철 스님은 귀족적, 달라이라마보다 틱낫한을 주목

불광

반갑습니다. 교수님은 한국사회에서 진보적 지식인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고, 또 한국불교계에 적지 않은 문제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인으로 개인적 신행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요. 혹 불자로서 특별히 관심 있게 하고 계신 수행이 있습니까?

박노자 교수 저는 묵조선과 지관계통의 수행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의 흐름을 관조하는 방식이죠. 묵조선처럼 생각을 가다듬고, 자신의 몰입, 욕망의 세계 등을 조감하고, 객관화하면 자아의 상대성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자아란 것은 잡념의 흐름입니다. 그 흐름이 변화무쌍하고, 일정하지는 않고, 계속 새로운 자아가 생겨나가고, 그런 것을 느끼면 자신을 상대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첫 스승이 『법구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스승이 『숫타니파타』입니다. 이후에 여러 경전을 탐독했습니다.

불광

경전이 교수님의 스승이었군요.

박노자 교수 예. 그렇습니다. 소련 공산주의 말기에는 경전 외에는 없었습니다. 또 한국에 와서 봉선사 월운 스님 밑에서 1년 정도 경전을 배웠습니다.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 중에도 저는 ‘좋은 책을 쓰신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거룩한 스님은 현세에 모습을 나투시다가 입적하신 분들이죠. 현세에 계신 곳은 잠시이지만,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시죠. 그런 스님들이 남기신 어록이 있으니까요. 인간의 식識의 내용이 책에 있잖아요. 그 내용을 보면 그 분을 보게 됩니다.

불광

한국불교에서 그런 스승이라고 할 만한 분이 계신가요?

박노자 교수 지눌 스님을 좋아합니다. 성철 스님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입장 자체가 지금 중생의 교화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돈오돈수頓悟頓修입니다. 귀족적이죠. 지눌 스님에 대해서도 난타하시죠.(웃음) 저는 지눌 스님의 입장입니다. 돈오와 점수 사이의 중도中道가 부처님의 길인 것 같습니다.

불광

왜 성철 스님이 귀족적이죠?

박노자 교수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의존한다는 것에 귀족성이 느껴집니다. 화두참구만 일관하는 것이…. 돈오돈수의 입장이 중생을 교화할 수 있나요? 우리가 ‘상구보리 하화중생’합니다. 하화중생이라면 중생의 근기에 맞는 것을 찾고, 중생의 아픔을 공유하고, 중생의 별업別業과 공업共業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화중생에 참여를 거부하고, 귀족적인 스타일을 호소한다는 것은 중생교화의 입장이 아니죠. 이런 말 하면 국내 불자들이 싫어하는데요.(웃음) 그런데 백년이 지나면 또 (국내 불자들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불광

​​​​​​​해외에서는 어떤 스님을 주목하고 계신가요?

박노자 교수 석일행釋一行 스님, 한국에서는 틱낫한 스님으로 알려졌죠. 참여불교를 하신 분으로 중생교화에 훨씬 더 맞추어진 분이죠.

불광

​​​​​​​교수님께서는 하화중생을 더 중요하게 보시는군요.

박노자 교수 진리의 시금석은 실천입니다. 불교의 진실성도 실천 속에서 입증됩니다. 또한 타자他者들이 불교를 볼 때 교리만 갖고 판단하지 않고 교단의 실천을 보고 판단하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 한국불교는 반성할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달라이라마 스님도 마치 청나라 시대 황제를 대하듯이 미국 대통령을 대하고 있어요. 티베트 불교는 오래 전부터 세속 권력과의 유착이 전통이었습니다. 초기 달라이라마는 모택동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불광

​​​​​​​달라이라마 스님이 보여준 참여불교적 시각이나 사회개혁 노력은 국내에서 높이 평가하는데요?

박노자 교수 그분께서 하신 말씀은 상당 부분 옳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출가자로서의 입장과 정치지도자로서의 입장을 분리시키기 힘든 것 같습니다. 그는 책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실제로는 티베트 민족투쟁을 구상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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