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서 듣다] 흔들리는 정오
상태바
[히말라야에서 듣다] 흔들리는 정오
  • 만우 스님
  • 승인 2015.08.31 12: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히말라야, 지진 속을 걷다 - 둘

1.png

| 산이 높아질수록 생각은 한없이 낮아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함께 일어난다. 지나는 구름만이 그늘을 던져주는 이 불모의 땅에서 잠을 잘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터 잡고 사는 사람들, 짐을 운반하는 사람들, 함께 걷는 사람들, 낯설은 풍경에 낯설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있어 내가 여기 있다는 생각에 언제나 산이 높아질수록 생각은 한없이 낮아진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우리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 산과 물이 다르고 돌과 나무가 다르고 너와 내가 다르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다. 저절로 몸이 일어난다. 모든 생명들이여 ‘좋은 하루 되소서’ 아침 예불을 마친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간밤에 투명한 하늘을 지나가는 초이레 달을 보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진눈깨비가 내려 벌써 길이 하얗다. 히말라야에서 사월은 날씨가 좋아 정상을 오르려는 원정대들뿐만 아니라 트레킹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계절이다. 히말라야가 가장 안정적인 시기가 사월 무렵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을 때는 숙소 구하기도 만만치 않다. 때로는 침상이 아닌 맨 바닥에서 잠을 자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정상적인 잠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사월에 이렇게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은 처음입니다.” 가이드를 맡은 빠상이 한마디 한다. “그런가? 그럴 수도 있지.” 기후학자들이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생태계의 이변을 경고하지만 지구가 생성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대단한 생태적 변화를 겪었는가는 상식적으로 대충 알고 있기 때문에 평소에 웬만한 이론은 마음에 걸어두지 않는다. 온 지구가 얼어붙어 모든 생명체가 거의 사라진 빙하기는 차치하고서라도 히말라야도 바다가 융기해서 형성된 지형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과정이 서서히 진행됐다고 하더라도 바다가 산이 되는 지리적 생태적 전도현상을 지구는 겪어왔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속쓰림과 더부룩함이다. 어제 여기 감자가 맛있어서 과식을 했는지 체한 느낌이 있어 손을 따고 했는데도 속이 영 불편하다. 속쓰림과 트림의 연속이다. 사유는 우주적이라도 감각은 철저하게 단세포적이다. 객관세계가 비록 비본질적이고 비상식적으로 전개되더라도 현재 나의 감각이 불균형 상태라면, 특히 고통의 감각이 지배적이라면 감각주관은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흐른다. 나의 고통감각이 최우선 작업 대상이다. 상대방의 고는 그 다음이다. 지금 이상기후로 인해 지구가 병들어가도 현재 나의 감각의 최대 관심사는 이 통증의 사라짐이다. ‘괜찮아지겠지.’ 우비를 단단히 걸치고 오늘의 목적지 로부체로 향한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