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하게 고통을 캐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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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게 고통을 캐묻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8.0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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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의 풍경, 아름다움과 고달픔
“아름답다.” 유년의 눈에 비친 세상 풍경입니다. 저는 1962년에 호남의 어느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궁핍한 일상 속에서도 소년의 가슴은 날마다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이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푸른 모싯잎 색깔을 한 시린 하늘에 느릿하게 기어가고, 때로는 물 흐르듯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을 작은 도랑에 흐르는 물소리는 더없이 정겨웠습니다. 처녀 누나들과 아줌마들이 두들기는 빨래 방망이 소리와 간간 정겨운 전라도 사투리가 오월 햇살에 튕겨 나와 반짝거렸습니다. 너른 들판에 씨 뿌리면 새싹이 돋고 자라서 벼와 보리가 일렁이는 모습은 늘 신비였습니다.

그런데 유년의 가슴에 맺힌 삶의 또 하나의 풍경이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가는 일이 참으로 ‘고달프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분들이 가정의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극심한 가뭄을 원망하며 논밭에서 뙤약볕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 시절, 마을 사람들에게 늙음과 죽음은 그리 불안과 공포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저 자연스런 순리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당면한 고통은 열심히 일해도 식량을 걱정해야 하는 경제적인 궁핍이었습니다. 자녀들을 중학교에도 진학시킬 수 없는 형편을 숙명으로 여겨야 했습니다. 앞날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은 체념과 자책이며 원망과 방황입니다. 마을 사람들 더러는 노름과 술에 빠져 그나마 있는 적은 가산을 탕진하고 부인과 가족을 더 심한 절망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욕하고 다투었습니다. 

소년은 의아했습니다. 산은 아름답고 들녘은 평화로운데, 태양은 찬란하고 바람은 시원한데, 사람들은 왜 절망 가득한 한숨을 쉬고 하늘을 원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해 뜨기 전에 일어나 일하고 해가 한참 저물어서 일을 끝내는 농부들은 왜 의식주에 늘 불안해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한 결실을 얻어야 하는데 왜 그리 안 되는 것일까, 하고 의심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 공장으로 돈 벌러 간 마을의 형들과 누나들의 고생하는 소식이 들려오고, 때로는 나쁜 길로 빠졌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훗날 유년을 기억해 보니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는 고통을 소년은 먼저 알았던 것 같습니다. 소년이 목격한 고통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생의 여덟 가지 고통에서 후반부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구부득고求不得苦, 간절히 희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원증회고怨憎會苦와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과 미움이 교차하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상황을 감내해야 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가까이 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오음성고五陰盛苦, 이성과 감각이 헛된 꿈을 꾸고 멈출 줄 모르는 욕구가 주는 고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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