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선생님, 무지無知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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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선생님, 무지無知의 선생님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6.1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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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 『스승은 있다』

| 스승을 찾아내는 첫 걸음
책의 결론을 미리 말하면 이러하다. 우리가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찾게 되면 스승의 의미 역시 재정립될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훌륭한 스승을 찾기 이전에 교육의 참된 의미를 꼼꼼하게 되짚어 보자고. 저자 우치다가 보기에 무엇보다 교육은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양자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를 파악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또 교육이라는 현상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학생’이 어떤 존재인지가 분명해져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른다. 팔정도八正道에서 그 첫 덕목 역시 ‘올바르게 볼 것(正見)’이 아니던가. 

배우는 자, 즉 학생이란 누구인가. 우치다는 인간의 발전 가능성을 믿는 낙관주의자이다. 그는 “아이는 반드시 성장한다. 모든 아이의 내면에는 잠재된 풍부한 가능성이 지긋이 개화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라는 확고한 입장을 취한다. 우리 모두는 그야말로 배움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은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것, 배우고 싶다고 바라는 것만” 배우게 된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즉, 학생의 배우려는 욕망이 가장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저자는 “인간은 배울 수 있는 것”만 학습하며, “배우는 것을 욕망하는 것밖에 배울 수 없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배우려는 욕망이 학습에서 으뜸가는 요소라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일어나는 배움이라는 사건에서 학생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견해를 반영한 것이다. 학생에게 무한한 배움의 가능성이 갖추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배우려는 욕망으로 발현시키지 않는다면 배움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점이 또 있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전제로 한 배움”이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이란 교사와의 만남을 통해 학생들이 저마다 품은 배움의 욕망을 실현시켜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체의 과정을 뜻한다. 이처럼 학생의 입장에서 “배움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스승을 찾아내는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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