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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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부처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6.1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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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다
선생님께서 조계사에 오신다며 시간 되면 보자는 연락이 왔다.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시다. 주위에선 “아직도 그렇게 연락하고 만나는 사제지간이 있느냐.”며 몹시 부러워하는 눈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목을 높이 쳐들고 “나 이런 사람이야.” 하면서 의기양양해하곤 한다. 마치 의리 빼면 시체인 것처럼.

선생님은 내게 초등학교 은사님 그 이상의 존재이시다. 어릴 적, 도시락을 싸오기 힘들 땐 선생님께서 도시락 반쪽을 나눠주셨다. 부모님도 돌보기 힘들 정도로 아픈 나를 데리고 이절 저절, 이 스님 저 스님 찾아 헤맨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은사스님을 만나 절로 들어가기까지 선생님께서 나를 보살펴준 셈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게만 그렇게 하셨던 것이 아니다. 정말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서는 매주 그 집을 방문해서 가끔이나마 그들의 끼니를 해결해주곤 하셨다. 

중학생이 되어 찾아뵈었을 땐, 배고픈 내게 『금강경』과 함께 돼지저금통을 건네주셨다. 그 일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살면서 누군가가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린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이런 분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고등학교 다닐 때, 산골짜기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을 찾아뵌 적이 있었다. 여전히 돼지저금통이 방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여쭈어보니 “우리 학교에 귀가 잘 안 들리는 아이가 있거든. 저 저금통은 그 아이를 위해 보청기를 사주려고 모으고 있는 중이야.” 하셨다. 여전하신 모습에 코끝이 찡했다. 여기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님이 계시다. 

선생님에 관한 일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내가 운문사에서 공부하던 학인시절엔 이런 일도 있었다. 『능엄경』을 공부하던 때로 기억한다. 어느 가을날, 은사님께서 『법화경』 한 권을 정성스레 사경해 가지런히 쓴 엽서와 함께 보내오셨다. 내용인즉, 매일매일 한 페이지씩 원영 스님이 중노릇 잘하기를 기원하면서 썼다는 것, 그리고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것은 역경逆境을 이겨냈기 때문이 아니라, 순경順境을 벗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선생님의 그 말씀은 지금까지도 나의 가슴속 깊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그때도 옆자리에 앉은 도반스님이 몹시 부러워했다. “저런 분이 계시니 스님은 정말 중노릇 잘해야겠다.” “당근이지~” 나는 답례로 막 떨어진 샛노란 은행잎을 한 상자 가득 담아 선생님께 보내드렸다. 그 낙엽상자를 받으시곤 배꼽 빠지게 웃으셨다는 후문이다.

내 영혼이 의지할 곳 없어
항간을 떠돌고 있을 때
당신께서는 산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생사를 넘나드는 
미친 바람 속을 질주하며 울부짖었을 때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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