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를 들어 달을 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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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를 들어 달을 건지다
  • 만우 스님
  • 승인 2015.06.1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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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린포체(수미산) 가는 길 – 여섯

땀이 흐른다. 눈물도 흐르고 콧물도 난다. 걷는다는 것은 나를 흐르게 하는 것이다. 탁한 호수 비워내고 맑은 물 고이는 호수 하나 만드는 일이다. 끝 모를 깊이로 투명해져 상처 난 모든 흐름 다 받아들여도 더 이상 흐려지지 않고 오랜 저 달의 그림자를 안고도 출렁거리지 않는 호수처럼 되는 것, 욕欲하지 않고, 노怒하지 않고, 명明이 되고 공空이 되고 마침내 어떤 세상에 그 무엇이 되어도 그 무엇으로 가장 환하다가 어두워지는 것, 이렇게 살아 내는 것.

 

| 그대 마음 나와 같다면

코라는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올 때 코라다. 탑이든 절이든 산이든 그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돌아 동선이 원의 형태가 이루어져야 코라의 완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강 린포체 순례는 코라의 관점에서는 쉼표하나 찍은 것이다. ‘다시 돌아와 마침표를 찍으리라.’ 하는 원을 남겨 놓고 강 린포체를 떠난다.

신장공로를 따라 구게 왕국을 가는 길에서 강 린포체는 더 우아하게 보인다. 주위의 산들을 굽어보며 우뚝 솟은 신비한 자태는 대지의 생명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무릎 꿇고 우러르는 경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겠다. 특히 모든 존재를 신과 결부시키는 힌두의 인식론과 결합하여 이 세상의 운행을 좌지우지 하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시바신의 거처로 강 린포체를 지목한 인도 사람들, 그들의 존재론은 정당성을 확보할 만하다. 이 세계에 존재하되 신들의 거처이기 때문에 이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공간으로 인식해서 오늘도 강 린포체를 향한 순례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히말라야의 조종이면서 우주의 중심축이 되는 이 산을 멀리서 바라본다. 눈을 감아도 어느덧 내 안에 와 있다.

코라의 일정은 3박 4일이었는데 눈 때문에 중단되어 2박 3일로 줄어들었다. 하루가 비어 구게 왕국을 돌아보고 일정에 없었던 마나사로바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인간의 탐욕과 오만함이 빚어낸 폐허 구게 왕국의 성터에서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가늠해 본다.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어 크게 풍요롭지 않은 이 작은 왕국을 침략한 욕망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옛날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보다 순박하고 무위의 삶에 가깝게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더 잔인하게 살육하고 더 철저하게 파괴했다. 지금처럼 도구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파괴의 흔적과 살육의 상처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기원전 200년 이전 통일 왕조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중국의 역사는 현대의 어떤 잔혹사보다도 진한 핏물이 배어있다. 여기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은 물에 의지해서 농경과 목축으로 소박하게 살고 있었던 변방 소국에 탐욕을 부르는 무엇이 있어서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를 넘어와 이렇게 완벽하게 파괴를 했는가, 그들이 가져간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욕망은 채워졌을까?

자리에서 일어나 허물어진 벽에서 이 왕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을 작은 돌을 두 개 주워 배낭에 넣고 마나사로바로 향한다.

되돌아가는 길, 다시 강 린포체와 마주 한다. 다시 보아도 보석 같은 산이다. 린포체 그 자체다. 다른 차량들도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한참을 바라보다 간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한산의 싯귀가 생각난다.

 

“그대 마음 나와 같다면

문득 한산에 이르리라.”

 

| 이보다 경이로운 호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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