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재마 스님(조계종 노동위원, 중앙승가대학교 박사과정), 이지성(김도언 학생 어머님), 강정훈(안산온마음센터 정신과 전문의)
세월호 1년을 맞는다. 1년의 시간은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기억의 저편으로 흘려보낸다. 세월호를 수많은 사건의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과 함께 시간으로 지나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보길 사회적으로 강제했는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치부를 감추고 싶은 욕구가 작동된 것이다. 사회적 회피인 셈이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무지와 무명이 얽히고 압축된 곳이다. 세월호 참사는 이런 얽힘을 화두처럼 우리 눈앞에 던져주었다.
불교는 세계를 관계의 존재로 본다. 상의상관相依相關이다. 서로 의지하고 관계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핵심이 이것이다. 세월호가 그들의 사건이 아닌, 나의 사건, 우리의 사건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오늘 기획좌담을 연 것은 이를 말하고자 함이다. 세월호는 지금 여기에서 나와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세월호를 불교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답을 위해 3월 10일 좌담을 마련했다. - 편집자 주
사회자 불교계에서 세월호를 주제로 좌담을 연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곧 세월호 1년을 맞이하는데요.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가장 먼저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갔던 종교가 불교이고 많은 스님들이 참여하기도 했지만, 지속적인 참여와 관심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재마 스님 저는 16일날 몰랐어요. 그 다음날 알았어요. 제가 그때 연구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일이 손에 안 잡혔어요. 빨리 팽목항에 가봐야겠다, 우리가 안 가면 누가 가겠나, 그랬어요.(스님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팽목항에 간 호스피스 스님들은 시신안치소에서 부모님하고 만나고, 저희는 유가족 분들과 만나는 것을 자중하고 법당에 주로 있었어요. 그때 정말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는 게 이런 마음이겠구나, 싶었습니다. 팽목항 법당이 그때 생겼어요. 저희들이 기도를 하면 아이들이 살아서 나올 거 같은 거예요. 그때 전국에 있는 비구니스님들이 거의 다 와서 며칠씩 돌아가면서 기도하고 했거든요.
어머님 광화문에 가면 종교인 천막이 있는데, 스님도 계시고 목사님도 계시고 신부님도 계세요. 종교하고 상관없이 한 마음으로 움직였죠. 학부모들 얘기 들어보면 4월 16일 사고 이후로 ‘신神이란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내가 믿는 종교가 나를 배신하고 내 아이를 버렸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유가족들이 광화문에 왔을 때 각 종교계가 우리와 함께 움직여주셨어요. 그때 유가족들이 개인적으로 신앙을 다시 찾은 경우도 많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