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기행] 이 봄의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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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기행] 이 봄의 미나리
  • 박찬일
  • 승인 2015.05.0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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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문 스님과 함께 미나리 찾아 떠난 여행길

좋구만요. 이런 미나리, 대처에선 볼 수가 없어요. 봄에 이렇게 좋은 미나리 드시는 보살님들이 부럽구만요.”

“미나리라카는 기 환경이 좋아야 합니다. 보현산에서 계곡으로 물이 내려오고, 그게 지하수가 되어 미나리가 먹고 자랍니다. 맛이 없을 수도 없는기라.”

“미나리는 원래 밭둑이나 물가에 자라곤 했어요. 그거 꺾어다가 쓰기도 하고, 어렸을 때는 동네 미나리꽝 생각이 나는구만.”

스님의 기억이다. 미나리를 벼 추수하고 논에 씨를 뿌렸다가 봄에 수확하는 경우가 많았다. 논에 물을 대고 키우는 현장을 보통 ‘미나리꽝’이라고 부른다. 무논에서 키우면 훨씬 잘 자라기 때문이다. 

“청도 한재 미나리가 물미나리꽝 대신 주로 밭에서 기르면서 품질이 좋다는 걸 알았어요. 물에서 기르면 성장이 빠른 대신 향이나 맛은 밭보다 못했거든요, 우리 별빛마을 미나리작목반에서도 그 재배법으로 기릅니다. 그래야 향이 좋고 아삭아삭합니다.”

 

이곳 영천 미나리 재배는 특이한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밤에는 지하수를 끌어 밭에 대고는 낮에는 뺀다. 섭씨 13도인 지하수 온도가 밤의 추위로부터 미나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낮에 물을 빼는 건 과다 생육을 막아 맛을 좋게 하려는 의도다. 비료라든가 퇴비 같은 별다른 인공적인 조치 없이, 그저 물을 빼고 넣는 것만으로도 맛있어진다는 미나리는 얼마나 청정한 것이냐. 

청도와 영천 같은 경상도 내륙이 미나리가 잘 되는 이유가 있다. 물도 물이지만 일교차가 중요하다. 거개의 작물은 큰 일교차가 있으면 스스로 맛있는 성분을 몸 안에 응축한다. 시련이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처럼. 용맹정진이 득도에 이르게 하는 것처럼. 결핍과 부족이 오히려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건, 인간사의 이치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든다. 단련되고 깎인 인생에 복이 있으라. 

“절밥에 미나리가 귀하게 쓰이지요. 맛이 좋은데 값도 싸니까. 삶고 날로 쓰고 끓이고.”

미나리 손질하는 스님의 손이 넉넉하다. 호방한 모습을 뵙고, 필자는 승병장을 떠올렸다. 아마 난리가 나면 승병장이 딱 저런 풍모이겠거니 싶었다. 그 큰 손으로 요리를 주무르는 손길은 뜻밖에도 섬세하다. 미나리를 데치고 유부주머니에 두부와 숙주 넣어 지진다. 미나리 한 점을 씹어본다. 은은하고 알싸한 향이 정수리까지 치고 올라간다. 식욕이 돋고 입안이 정갈해진다. 미나리의 덕성은 자못 꼿꼿하고 은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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