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남쪽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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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남쪽에서 온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3.3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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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호구산 용문사–백련암–염불암

매화 꽃잎 떨어지는 봄 바다에는, 나고 또 죽는 시간의 가루들이 수억만 개의 물비늘로 반짝이며 명멸했다. 사람의 생명 속을 흐르는 시간의 풍경도 저러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봄 바다 위의 그 순결한 시간의 빛들은 사람의 손가락 사이를 다 빠져나가서 사람이 그것을 움켜쥘 수 없을 듯싶었고, 그 손댈 수 없는 시간의 바다 위에 꽃잎은 막무가내로 쏟아져 내렸다.
- 김훈, 『자전거 여행』 중

| 원효 스님이 세운 천년고찰
새가 날았다. 물비늘 반짝이는 바다 위를 지나갈 때, 새가 저 멀리서 날아오르고 있었다. 자유로워 보였다. 메마른 뱃구레에 못 이겨 밥 한 술을 갈구하듯,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던 일상의 팍팍함은 도시사람으로 하여금 자유로움을 갈구하게 만드는 법이다. 기왕이면 저 멀리 바다를 건너는 게 좋겠다. 그곳에서 소설가 김훈이 이야기 하는 물비늘의 반짝임과 봄이 오는 소리를 찾아보는 것도 이 시기의 즐거움일 터. 그렇게 겨울이 지나온 흔적을 거슬러 내려가며 봄을 찾아 남쪽으로 내달렸다. 

목적지는 남해다. 몸을 웅크리고 누운 섬의 복판쯤에 용문사가 있다. 남해로 들어오는 길은 두 갈래다. 하동을 거쳐 남해대교를 건너는 방법과 사천을 지나 삼천포대교와 창선대교를 차례로 지나는 방법이 있다. 어느 길을 택하든 용문사로 가는 길은 차로 30분 남짓이다. 

기록을 들춰보면 남해 용문사의 역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건주가 원효 스님이다. 본래 보광산에 ‘보광사(혹은 봉암사)’라는 이름으로 세웠다고 한다. 기록에 전하는 보광산은 지금의 금산이다. 국내 3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인 보리암이 있는 그 산이다. 원효 스님이 이곳에서 선교의 문을 열어 명성을 떨쳤으나 조선 현종 원년(1660년) 백월 스님이 사운寺運이 다했음을 읽고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가 현재의 용소리 호구산이다.

평일의 산사는 조용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인적이 드물었다. 자유로움이 고픈 객에게는 고요한 산사의 여백이 그저 고맙다. 다만 기대했던 동백과 매화는 아직 화사함을 감추고 있었다. 남쪽의 봄은 동백이 열고 매화가 단장하는 법이다. 그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하는 건 두고두고 아쉬울 허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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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병들의 함성소리를 그려보다
용문사는 이미 꽤나 알려져 있다. 보리암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온 불자들은 으레 20~30분 거리에 있는 용문사까지 들렀다 간다. 바다 저 편으로 보이는 금산 보리암의 절경과 이쪽 용문사의 운치는 사뭇 다르다. 같은 바다지만 지중해와 태평양만큼이나 다른 느낌이다. 

사람들이 용문사를 찾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용문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기거하며 근처 바다를 지나는 왜구들을 막아내던 사찰이다. 역사 속에 한 자락 굵은 이야기를 남긴 곳에는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이야기의 흔적을 좇아 역사의 현장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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